ADVERTISEMENT

'최후의 만찬'80%가 덧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8면

'기술이 예술을 살린다 - .' 제작된지 오래돼 훼손.마모된 미술품을 정밀 과학기술로 복원한다는 것은 테크놀로지의 승리다.

우리나라의 경우 최초의 서양화가 고희동의 '자화상' 등 근대미술을 중심으로 국립현대미술관과 호암미술관 등의 보존과학실이 이제 걸음마를 떼기 시작한 단계. 미국이나 이태리 서구의 복원 기술은 부럽기 짝이 없다.

하지만 최근 영국 일간지들의 보도를 보면 '원 상태로 돌려놓는다' 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가를 알 수 있다.

78년부터 진행돼온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프레스코 걸작 '최후의 만찬' (1495~97) 복원 사업. 이태리 중앙복원연구소장 카를로 베르텔리는 지난해 12월27일 방영된 채널4 다큐멘터리에서 "결국 복원이 원작을 파괴하고 말았다" 고 지적해 충격을 던졌다. 그는 "원작의 20%만이 살아남았고, 나머지 부분은 복구자들이 그려 넣은 것" 이라고 밝혔다.

'더 타임스' 는 루브르 박물관 복원 컨설턴트이자 다빈치 전문가인 자크 프랑크의 말을 인용, "다빈치의 의도를 정확히 알지 못하면서 거의 대부분을 다시 그리는 것이 무슨 복원이냐" 고 비판했다.

특히 복원팀은 다빈치의 것인지 불확실한 드로잉을 참조해 예수의 얼굴에서 수염을 제거한 것으로 알려졌다. 데일리 텔리그래프는 이미 지난해 7월 복원 중이던 '최후의 만찬' 이 원작과 전혀 달라졌음을 비판한 바 있다.

식탁에 놓인 꽃, 빵, 유리잔, 칼, 접시 등은 원래 육안으로 확인할 수 없었던 것. 선명도가 높아져 식별할 수 있는 물체 수는 많아졌지만 어디까지나 "다빈치의 원작을 보지 못한 복구자들에 의해 덧칠된 것일 뿐" 이라는 얘기였다.

이러한 결과는 복구자들의 태도 때문이라고 한다. 복구자들은 흔히 전임자보다 자신이 훨씬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하므로 전임자가 해놓은 덧칠을 죄다 벗기고 다시 덧칠을 하게 마련. 이런 악순환이 20년간 되풀이된 끝에 결국 어떤 것이 '오리지날' 이고 어떤 것이 아닌지 구분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부분적으로는 훼손이 가려졌을지 몰라도 지나치게 밝고 지나치게 밋밋한 부분이 중구난방식으로 튀어나오면서 전체적 조화가 흐트러지는 것이다.

영국 내셔널 갤러리는 이런 점에서 비판을 받는 대표적 경우. 한 복원전문가는 "내셔널 갤러리에 있는 르네상스 시대 회화를 보면 복원이 예술품을 어떻게 망치는지 알 수 있다" 고 말하기도 했다.

이 미술관의 디렉터 닐 맥그리거는 '모나리자' 의 복원을 주장하는 '복구파' 다. 결국 데일리 텔리그래프의 결론은 "걸작을 그냥 내버려두라" 는 것. "운좋게도 다빈치의 다른 작품은 대부분 루브르에 있고, 루브르는 걸작을 내버려둘 만큼의 양식은 있다." 철저한 고증에 자신이 없을 때는 그냥 두는게 낫다는 얘기. 물론 '복원보다 보존이 우선' 이라는 것은 상식이다.

기선민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