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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직원이 백두대간 종주 7년 … 아시아 1위 ‘성공 DNA’ 만들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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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박종원 코리안리 사장(右)이 직원들과 함께 2박3일간의 설악산 종주를 마치고 21일 설악산 마산봉 지역에서 하산하고 있다. [코리안리 제공]


처음부터 마뜩지 않았다. 오후 10시에 지시해도 다음 날 아침이면 책상 위에 보고서가 올라와 있는 재무부 관료 생활을 25년간 한 그였다. 그런데 재보험사 코리안리에 와보니 분위기가 달랐다. 우선 느렸고, 지레 포기하기도 했다. 민영화된 지 20년이나 지났지만 공기업 체질은 여전했다. 아니나 다를까 사달이 났다. 취임 첫해인 1998년 말 이듬해 사업계획 보고를 받으면서다. 모든 부서가 성장 목표를 ‘0%’로 보고했다. 외환위기 직후라 현상 유지만 해도 다행이란 설명이었다. 박종원(65) 사장은 불같이 화를 냈다. “당신들이 한번 해보려고 하기는 했느냐.” 10% 성장 목표에 맞춘 실행계획을 요구했다.

11년이 흐른 지난 20일. 2박3일 설악산 34㎞ 종주에 나선 이 회사 직원 64명은 험하기로 유명한 공룡능선 앞에서 멈춰 섰다. 산장 지기는 쉬운 우회로를 권했다. 일반인은 무리라는 충고였다. 잠깐 망설이는 사이 “한번 해봅시다” 하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나왔다. 박 사장이 강요하지도 않았다. 몸 상태가 좋지 않은 4명을 제외한 60명은 그렇게 공룡능선 5.1㎞를 5시간 만에 주파했다. 해병대 출신인 박 사장은 “한계에 도전하는 정신, 한번 부딪혀 보자는 야성을 기르는 데 등산만 한 것이 없다”고 말했다.

박종원 사장. 금융계에서 가장 성공한 관료 출신 최고경영자(CEO)로 꼽힌다. 98년 7월 취임한 이후 11년째 사장이다. 취임 당시 회사는 3000억원대 적자가 날 판이었다. 위험이 큰 회사채 지급보증에 대한 재보험을 덥석 물었던 탓이다. 인원을 30% 줄이고, 채권을 팔아 현금을 만들었다. 공적자금을 전혀 받지 않고 회사는 정상화됐다.

하지만 부족했다. 기업 문화가 문제였다. “정부 울타리 속에 오래 머물러 있어 야성이 없었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극기캠프를 갈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산을 택했다. 한번 해서 고쳐질 일이 아니어서다. 새로운 도전을 꾸준히 할 수 있는 곳이 산이라 생각했다. 전 직원이 조를 짜서 매년 한 번씩 하는 등산은 반나절 북한산 등산 같은 가벼운 산행이 아니다. 2박3일간 능선을 타는 행군이자 고행이다. 처음엔 ‘회사가 군대냐’는 얘기도 나왔다. 빠질 궁리를 하기도 했다. 박 사장은 “의사 진단서가 있어야 열외 할 수 있다”고 못 박았다. 2003년 유명산 예비훈련을 시작으로 지리산, 덕유산, 속리산·소백산, 태백산, 오대산을 올랐다. 그리고 지난 19~21일 설악산 종주를 끝으로 백두대간 670㎞(북한 제외) 중 평균 높이가 1㎞ 이상 되는 구간은 사실상 다 훑었다. 거리만 300㎞에 육박한다.

처음이 어려웠지 한번 이룬 성취는 조직의 기억이 됐고, 기업의 문화가 됐다. 박 사장은 “이게 코리안리의 ‘성공 DNA(유전자)’”라고 규정했다. 98년 37억원(매출 기준)이었던 1인당 생산성은 지난해 161억원으로 불어났다. 보험료 규모에선 아시아 1위다. 국내 금융사 가운데 자기 분야에서 아시아 1위를 하는 금융사는 거의 없다.

코리안리가 올라야 할 봉우리는 여전히 많다. 한때 국내 재보험 계약은 대부분 코리안리 몫이었지만, 지금은 3분의 1이 외국 보험사로 나간다. 적극적인 해외 진출은 선택이 아니라 코리안리 생존의 조건이 됐다. 코리안리가 선택한 코스는 2020년까지 세계 5대 재보험사가 되는 길이다. 박 사장은 등산화 끈을 다시 묶는다.  

김영훈 기자

◆재보험=보험사를 위한 보험이다. 보험사도 대규모 보험금을 지급해야 할 때를 대비해 보험을 든다. 뮌헨 재보험(Munich Re), 스위스 재보험(Swiss Re), 버크셔 해서웨이가 세계 3대 재보험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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