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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개 키워드로 읽는 과학책 ⑥ 물질과 영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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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1.3㎏ 남짓한 인간의 뇌에는 대략 1000억 개의 신경세포가 있다. 자아를 인식하는 로봇의 출현은 많은 SF영화의 소재가 됐지만, 정작 우리는 마음과 영혼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2004년 개봉한 영화 ‘아이, 로봇’의 한 장면. [중앙포토]

갈릴레이 망원경 발명 400년, 다윈 탄생 200년, 과학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이 남다른 2009년입니다. 근대 과학혁명은 우리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았습니다. 중앙일보와 ‘문지문화원 사이’는 과학 교양의 대중화를 위해 ‘10개 키워드로 읽는 과학책’ 시리즈를 매달 연재합니다.

마음(mind)은 어디에 있는가. 고대 그리스 철학자는 마음이 심장에 있다고 주장했다. 판타지 모험소설 『오즈의 마법사』(1900)도 그 유산 중 하나다. 양철나무꾼은 마음을 찾기 위해 심장을 원했다. 프랑스 근대 철학자 데카르트(1596~1650)는 ‘영혼의 자리(seat of the soul)’에 집착했다. 그는 몸과 마음이 별개로 떨어져 있고, 당시의 해부학적 지식에 기반해 뇌의 송과선(pineal gland·좌우 대뇌 사이에 있는 내분비 조직)에서 마음과 몸이 만난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송과선은 밤낮의 생체리듬에 관여하는 조직이다.

뇌와 마음이 관계가 있다고 어렴풋이 알던 시절, 사람들은 뇌의 모양과 마음 사이에 깊은 관계가 있다고도 생각했다. 19세기에 크게 유행했던 골상학(phrenology)이 대표적이다. 두개골이 뇌의 모양을 따라 형성되기 때문에 두개골의 형태로 마음의 성향을 유추할 수 있다고 믿었다. 호전성은 귀 뒷부분에, 기억력은 앞통수에, 자녀에 대한 사랑은 뒤통수에 있다고 봤다. 이후 해부학이 발전하면서 두개골의 모양과 뇌와 형태가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이 밝혀져 골상학은 과학적 지위를 잃어버렸다. 하지만 마음의 성향이 뇌의 일부에 있다는 생각은 현대 신경과학에도 계속되고 있다.

◆뇌-컴퓨터 인터페이스=보고, 듣고, 생각하고, 기억하는 모든 일이 뇌의 활동에 의존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보이는 사물의 정체와 위치는 색채·형태·움직임·깊이감 등을 다루는 신경회로에 의해 동시에 처리된다. 이 신경회로가 손상되면 세상이 하룻밤 사이에 무채색으로 변할 수 있다. 또 물을 따르거나 자동차가 다가올 때 그 움직임을 인지하지 못할 수 있다.

뇌와 마음의 관계를 거꾸로 생체실험에 이용할 수도 있다. 예컨대 살아있는 바퀴벌레의 운동피질을 전기적으로 자극해보자. 바퀴벌레를 우리가 원하는 곳으로 이동시킬 수 있다. 척추 손상으로 사지가 마비된 환자가 자신의 운동피질에서 생성되는 뇌 신호로 컴퓨터 커서를 움직이고 TV나 로보트 팔을 작동시키는 ‘뇌-컴퓨터 인터페이스(brain-computer interface)’도 공상과학 소설에서만 가능한 이야기가 아니다.

하지만 뇌가 관여하는 것은 감각과 운동뿐이 아니다. 좀더 고차원적인 정신활동도 뇌의 특정 부위에 있다. 뇌의 우측 후두정엽이 손상된 환자는 왼편에 무관심해진다. 이들은 옷을 입을 때 왼쪽 팔을 소매에 끼우지 않는다. 립스틱도 입술 오른쪽에만 바른다. 꽃을 그리라고 하면 반쪽만 그린다. 그러면서 뭐가 이상한지 알아차리지 못한다.

종교적 체험을 할 때 뇌의 측두엽에서 과격한 활동이 일어난다는 증거도 있다. 그러나 거기까지 뿐. 아직도 미스터리는 많다.

◆감추어진 ‘마음’을 찾아서=미스터리는 뇌의 특정 부위에 국한되기 힘든 복잡한 정신활동과 관계 있다. 대표적인 것이 의식이다. 사람들이 받아들이는 많은 감각 정보가 어떻게 통합돼 대상을 통일적으로 인식할 수 있을까. 프랑스 작가 마르셀 프루스트(1871~1922)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나오는 장면처럼 홍차에 적신 마들렌 과자의 냄새가 어떻게 잊혀진 기억을 순간적으로 떠오르게 만들까. 의식하고 있다는 자각, 과거와 현재를 통해 일관된 ‘이것이 나다’라는 의식은 어떻게 일어나는가.

신경과학은 이런 질문에 명확한 대답을 하지 못하고 있다. 만일 살아 있는 사람의 두개골을 절개해 뇌를 열고 수많은 전극을 꽂아 생활을 24시간 모니터하며 전체 뇌의 활동을 측정하는 것이 가능하다면 가까운 시일 내에 답이 나올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건 아직 윤리적으로, 그리고 기술적으로도 불가능하다.

놀라운 연구기법이 개발돼 과학자들이 신경활동을 완벽하게 알아낸다 하더라도 철학적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단지 신경활동에 불과한 것이 어떻게 맛·촉감·만족감과 같은 생생한 느낌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까. 시각·후각·촉각 등에 해당되는 외부 입력장치를 완벽하게 갖추면 로봇이 자연의 아름다움에 대한 생생한 느낌을 가질 수 있을까. 정신분열증 환자가 보고 듣는 환상은 현실적 토대가 전혀 없다. 정상인이 매일 꾸는 꿈도 마찬가지다. 이런 것은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이제 마음이 물질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이야기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연구결과만으론 마음의 물질적 토대를 온전히 증명할 수도 없다. 그러나 신경과학자들은 방법만 알아낸다면 가능하다고 믿으며, 오늘도 뇌에 전극을 꽂는다.

정수영 한국과학기술 연구원(KIST) 신경과학센터 선임연구원

◆필자가 직접 강연합니다=여섯 번째 과학 키워드 ‘물질과 영혼’을 주제로 필자 정수영 박사가 강연합니다. 강연은 29일(토) 오후 5시 서울 동교동 ‘문지문화원 사이’에서 열립니다. 홈페이지(www.saii.or.kr)에서 신청하시면 무료로 참가하실 수 있습니다. 선착순으로 마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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