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 연세대 입시논술 문제·해설-인문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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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연세대.가톨릭대.경희대.인천대.한성대 등 7개 대학이 7일 99학년도 정시모집 논술고사를 실시했다.

문제는 대부분 동서고전의 내용을 제시하고 수험생의 이해를 묻는 것이었다.연세대 인문계 문제 (발췌) 와 해설을 싣는다.문제의 전문은 중앙일보 인터넷신문 (www.joongang.co.kr)

◇ 문제

다음 세 이야기 속의 주인공에게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역할의 특징을 분석하고, 그 사회적 기능과 의미를 다양한 측면에서 1800자 안팎으로 논술하시오.

<제시문>

(가) 심청이 대답하되, "맹인 부친 해원 (解寃) 키로 이 몸을 팔거니와, 이 몸을 사 가시면 어디 쓰려 하십니까?" "우리는 선인이라, 인당수 용왕님은 인제수 (人祭需) 를 받는고로 낭자의 몸을 사서 제수 (祭需) 로 쓸 터이니 값을 결단하옵소서." "더 주면 쓸 데 없고 덜 주면 부족하니, 백미 삼백 석을 주옵소서. " <중략>

두 손을 합장하고 하느님 전 비는 말이, "도화동 심청이가 맹인 아비 해원 (解寃) 키로 생목숨이 죽사오니, 명천 (明天) 은 굽어 보사 캄캄한 아비 눈을 불일내 (不日內)에 밝게 떠서 세상 보게 하옵소서. " 빌기를 다한 후에 만경창파 (萬頃蒼波) 를 제 안방으로 알고 '풍' 빠지니, 사공들 하는 말이, "풍숙낭정 (風肅浪靜) 하기는 심낭자의 덕이로다.

" (신재효본 '심청가' )

(나) 아리스티데스가 처음에는 '정의로운 사람' 이란 별칭까지 들으며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았는데, 미움을 받게 된 까닭은 테미스토클레스가 민중에게 아리스티데스는 사사로이 모든 소송 사건을 심리 판결해 재판의 공식성을 없앴으며, 독재를 남모르게 행하려 한다는 소문을 퍼뜨렸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민중도 승전국의 국민으로 교만한 마음이 생겨 자기네들보다 높은 지위와 명예를 가진 사람에 반감을 갖고 있었다.

이리하여 그들은 아리스티데스가 왕이되려 한다는 미명 아래 패각 투표를 실시해서 그를 추방했다. <중략>

투표 당시, 사람들은 조개껍질에 추방할 사람의 이름을 적었는데, 한 문맹자는 아리스티데스에게 조개껍질을 내밀며 아리스티데스의 이름을 써 달라고 부탁을 했다.

아리스티데스는 짐짓 놀라며, 그가 당신에게 무슨 피해라도 입혔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아니오, 나는 그를 모릅니다.

하지만 곳곳에서 정의로운 사람이라고 떠드는 것이 듣기 싫어 그럼니다. " 라고 대답했다.

추방되어 아테네 시를 떠날 때, 아리스티데스는 이렇게 기도했다.

"이 땅의 민중이 아리스티데스를 다시 생각할 정도의 불행이 아테네에 생기지않게 해 주소서. " (플루타르크 '영웅전' ) (다) 마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두 수녀의 맞은 편에 한 쌍의 남녀가 모든 사람의 시선을 끌었다.

사나이는 유명한 민주주의자인 코르뉴데였고, 여자는 이른바 매춘부라고 불리우는 부류들 중의 하나로 '비계덩어리' 라는 별명을 얻었을 만큼 뚱뚱했다.

마차는 마을로 들어가서 코메르쓰 호텔 앞에 정거했다.

마차 바깥에 한 독일군 장교가 불빛을 정면으로 받고 서 있었다.

그는 알사스사투리의 프랑스어로 여행자들에게 내려오라고 무뚝뚝한 어조로 명령했다.

그 이튿날은 아침 여덟 시에 출발하기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모두들 식당으로 모여들었다.

그러나 마차만이 말도 마부도 없이 쓸쓸하게 마당 한 가운데에 서 있었다.

그래서 남자들은 그 근처를 뒤져 술집에서 마부를 발견했다.

백작이 그에게 물었다.

"여덟 시에 말을 매라는 명령을 받지 않았던가. " "그럼요. 그러나 그 후에 딴 명령을 받았습죠. " "무슨 명령이야?" "말을 매지 말라고요. " "누가 그랬나?" "보나마나 프러시아군 소령이겠죠. " 그날 오후는 비참했다.

폴링뷔씨가 나타나서, 말했다.

"프러시아 장교님이 엘리자베드 루세 (비계덩어리) 양에게 아직 생각을 바꾸지 않았느냐 물어 보랍니다. " '비계덩어리' 는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서 서 있었다. 그 여자가 소리쳤다.

"더러운 짐승놈한테 가서 말하세요. 절대로 나는 말을 안 듣겠다고, 알겠어요?" 그 여자가 계속해서 저항하면 그 무슨 난처한 일이냐! 저녁 식사를 알리는 종이 울렸다. 사람들은 그 여자를 기다렸다. 그때 폴링뷔씨가 들어와서 루세 양은 몸이 불편해서 저녁 식탁에 참석하지 못한다고 알렸다.

백작이 그 여인숙 주인에게 다가서며 물었다.

"잘 됐소?" "네. " 모든 사람들의 얼굴에는 희열이 넘쳤다. 그 이튿날, 역마차가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비계덩어리' 가 나타났다.

그 여자는 약간 거북하고, 부끄러운 듯이 보였다. 그래도 일행 쪽으로 멋적은 걸음걸이를 옮겼으나, 모두들 보지 못한 양 돌아서 버렸다.

백작은 자기 부인의 팔을 잡고, 그 여자와의 접촉을 피하도록 데려갔다.

사람들은 마치 그 여자가 치마 밑에 무슨 전염병이라고 가지고 오기나 한 것처럼 멀리하는 것이었다. (모파상, '비계덩어리' )

◇해설

연세대 인문계 논술은 '심청가' .플루타르크 '영웅전' .모파상의 '비계덩어리' 등 문학작품에서 출제됐다.

고전에 대한 특별한 지식없이도 쓸 수 있도록 출제했지만 상당한 정도의 사색과 논변이 필요한 논제였다.

세 주인공을 관통하는 공통적 역할은 '희생양' .이를 파악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그러나 문제는 이 희생양이 갖는 사회적 기능과 의미를 얼마나 풍부하게 논변할 수 있는가 하는 점. 우선 희생양을 통해 사회적 안정과 희망을 찾을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어떤 사회든 통일성을 갖기 위해 적절한 '희생양' 을 설정해 사회적 안정을 도모하기도 한다.

이와 함께 그 병폐를 지적해야 한다.

공동체 이익을 위해 개인의 권리와 인권이 훼손될 수 없다는 전제아래 자유와 다양성이 부정되는 획일화된 사회를 야기할 수 있다는 점과, 나아가서 사회구성원의 의사소통을 왜곡시켜 건강한 공동체 형성을 방해하고 사회전체의 존립 마저 위협할 가능성도 거론할 수 있다.

자연계 논제는 다소 어려운 고전이 포함됐다.

데카르트의 '방법서설' 과 미셸 푸코의 '감시와 처벌' , 다니엘 디포의 '로빈슨 크루소' 에서 출제한 이 논제의 핵심은 근대 이후 계산적 합리주의를 의미하는 이성과 합리주의에 대한 성찰을 요구한 논제. '방법서설' 에서 설명한 이성 개념을 바탕으로 사회가 합리화되면서 감시와 처벌 등 인간의 소외가 불가피하게 가속화될 수 밖에 없음을 지적해야 한다.

아울러 '로빈슨 크루소' 를 빌어 사회적 합리화.분업화가 불가피하다는 점과 함께 어떻게 그 속에서 인간이 소외되지 않을 수 있는지 성찰하는 것도 필수적이다.

김창호 학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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