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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아라리난장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7면

제7장 노래와 덫

산골 읍내의 조그만 장이겠거니 하였던 두 사람은 장터거리를 보고 놀랐다.

이른 아침부터 그렇게 많은 장꾼들이 모여드는 것은 포근한 날씨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장마당의 규모는 전혀 예상할 수 없었던 것이었다.

초등학교 건너편인 술전동 동쪽에서 서쪽인 폼내뽐내 미용실이 있는 학전동앞까지의 시장거리는 얼추잡아 2㎞는 될 것 같았다.

시장에서 볼 수 있는 창녕의 특산품은 맵쌀인 창녕 특미와 껍질을 벗기면 파란 속살이 드러나는 속청이라는 검은콩이었다.

이색적인 것은 부근의 영산읍 번개늪과 우포늪에서 잡아오는 잉어, 붕어,가물치, 메기같은 민물고기들이 대량으로 장바닥으로 쏟아져나와 팔리고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창녕에는 유명한 메기탕집이 있어 일년 내내 메기탕을 끓여내고 있었다.

주변에 우포늪과 같은 늪지대가 있어 준 혜택이었다.

두 사람은 서둘러 뱃자반 좌판을 펴기로 하였다.

승희는 학전동 장터 초입에 자리잡았고, 철규는 술전동 초등학교 초입에다 좌판을 폈다.

승희가 좌판을 펴는 중에 허리는 꼬부라졌지만 곱상스럽게 늙은 노파가 다가오며 물었다.

이거 간고등어라카는 거지예? 그럼요. 여기서는 간고등어가 귀하지요? 간고등어 중에서도 뱃자반이라는 기 있는데 석쇠에 구우면 노릿노릿한 기름이 자글자글 끓고 삼이웃에 고소한 비린내가 나는 뱃자반 엄서예? 어머나 할머니 뱃자반 진가를 알고 계시네요. 이게 바로 말씀하신 뱃자반이지요. 그러자 노파는 승희를 빤히 바라보다가 뒤통수를 치는 것이었다.

아까는 간고등어라카디 금방 말을 바꾸어서 뱃자반이라카네예. 젊은 새댁네가 말 바꾸기를 일삼아서 되겠어예. 와예? 내 말 틀렸어예? 틀리긴요. 할머니 말씀이 백번 옳습니다.

이 물건은 간고등어 중에서도 뱃자반이라는 뜻입니다.

뱃자반이라는 기 그리 흔한 물건이 아닌데, 거짓말 아니지예? 아직 마수걸이도 못한 처집니다만 할머니께 한 손 공짜로 드릴테니까 옛날 방식대로 석쇠에 올려 구워 잡숴 보세요. 그러나 사양할 줄 알았던 노파는 염치좋게 척 받아 넘겼다.

참말이라예? 그래도 되겠어예? 선심을 쓴다는 것도 분수 나름이었다.

승희 자신의 말마따나 아직 마수걸이도 못한 터수에 고등어 한손을 선뜻 선심쓴다는 것은 장마당을 만날 때마다 버릇처럼 해온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승희는 어쩐 셈인지 거리낌을 두지 않았다.

마수걸이 전의 공짜 제공은 하찮은 노점상의 주제로선 그날의 운세에 불길한 그림자를 드리울 수도 있는 것이었다.

터무니없게 보일 수도 있는 그런 배짱은 분명 창녕까지 당도하는 차 중에서 철규와 나누었던 대화에서 미심쩍으나마 철규의 가능성 같은 걸 발견했기 때문인 것 같았다.

성민주와의 결별은 철규에게 아프고 쓰린 상처를 남기겠지만, 자신에게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될지도 모른다는 희미한 예감이 그녀의 가슴 속에서 싹트고 있었다.

어쩌면 창녕까지의 동행은 그가 독백이라도 하기 위한 계획된 주선인지도 몰랐다.

노파가 다시 좌판으로 나타났다.

젊은 아낙네들을 데리고 나타난 것은 승희의 뱃자반을 팔아주기 위해서였다.

그것이 장꾼들을 끌어모으는 계기가 될 줄은 승희도 예측못한 일이었다.

그뿐만 아니었다.

노파는 좌판 곁에 아예 자리를 잡고 앉았다.

승희에게 담배를 얻어 피워가면서 좌판 앞을 지나는 마을 사람들에게 간고등어 사주기를 권유했고, 승희는 노파에게 점심대접까지 하였는데, 그 역시 사양하는 법이 없었다.

오지랖이 보통 넓은 노인네가 아니었다.

남도지방의 장거리는 북쪽과 전혀 다른 풍속 한가지가 눈에 띄었다.

그것은 장거리에 장국밥집이 많다는 것이었다.

철물전 곁에 있는 노천 장국밥집에서 국밥 한 그릇을 거뜬히 해치운 노파는 해지기 전에 버스를 타야 한다며 총총히 일어섰는데, 승희가 건네주는 천원짜리 석장은 손사래를 치며 끝내 받지 않았다.

그때까지 승희는 술전동 장터 초입에 자리잡은 철규를 한 번도 만나지 못했다.

우연히 나타난 노파에게 홀린 듯한 하루를 두서없이 보낸 탓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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