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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인터뷰]보스워스 주한미대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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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북한의 금창리 지하시설, 대포동 미사일 발사 등을 둘러싸고 새해에는 평양과 워싱턴간에 '정치적 빅딜' 이 이뤄질 전망이다.

주한 미국대사로 미국의 동아시아 정책의 야전사령관격인 스티븐 보스워스 대사로부터 북한 핵문제.경제전망 등을 들어봤다.

- 현안인 북한문제부터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한국의 대북정책은 '햇볕정책' 입니다. 미국의 대북정책을 어떻게 설명하시겠습니까.

"미국이 한반도에서 추구하는 것은 한마디로 '평화' 입니다. 전쟁 억제력이 대북 정책의 초석입니다. 확고한 전쟁 억제력을 바탕으로 한.미 양국은 양자간, 다자간 채널을 통해 북한에 변화의 기회를 마련해 주고 있습니다. "

- 김대중 (金大中)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윌리엄 페리 조정관을 만나 북.미가 '줄 것은 주고 받을 것은 받는' 일괄타결 (패키지 딜) 을 할 필요가 있다고 충고했습니다. 미국은 金대통령의 제안을 수용할 용의가 있습니까.

"한.미 양국의 대북정책 기조는 북한과 포괄적인 합의를 마련해 우리의 관심사와 그들의 관심사를 해결하는 것입니다. 그런 뜻에서 패키지 딜에 대한 내 대답은 '예스' 입니다. 금창리 문제만 해도 우리가 이 문제를 다루면서 미사일 문제에 대한 우리의 우려와 金대통령이 추진하는 포용정책 지지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이 모든 것은 정치적 문제, 즉 분단과 한반도 평화와 안정에 위협을 제기해 온 북한의 행동이라는 같은 문제를 구성하는 여러가지 요소입니다. 대북 경제제재 완화는 일이 진행되면서 결정될 것입니다. 우리는 그동안 평양에 미사일 문제가 해결되면 경제제재 완화를 고려할 수 있다고 계속 시사해왔습니다. 평양이 결단을 내리면 우리도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패키지 안에는 북.미 경제 정상화, 남북대화, 미사일 문제가 포함돼 있습니다. 다만 패키지 딜이 모든 문제를 일거에 해결하느냐 여부는 별도 문제입니다. 패키지 딜은 장기적인 과정이 될 것입니다. "

- 북한이 제네바 합의를 깨겠다고 나온 배경을 자세히 살펴보면 경제제재 해제와 중유 제공에서 소극적 태도를 보인 워싱턴이 평양에 빌미를 제공한 측면이 있습니다.

"미국은 4자회담과 미사일회담 맥락에서 줄곧 경제제재 해제를 준비해 왔습니다. 저는 KEDO 사무총장으로 재직시 (95~97년) 북한에 정기적으로 중유를 시한내에 제공했습니다. 그러다가 예산이 떨어져버린 거죠. 예산이 다시 확보될 때까지 중유 제공이 늦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경수로도 일단 재원이 확보되면 건설을 신속하게 해나갈 계획입니다. 부연해 둘 것은 KEDO 사업이 늦춰진 것은 96년 9월 발생한 북한 잠수정사건이 결정적 요인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북측에 '잠수정을 남한에 보낸 것은 KEDO가 아니라 북한이다' 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

- 한국 국민들은 지난 94년 북.미 핵협상 과정에서 40억달러에 달하는 원치않는 청구서를 받은 경험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 금창리 협상에서도 또다시 원치 않는 청구서를 받지 않을까 벌써부터 걱정하고 있습니다.

" (웃으며) 먼저 말씀드릴 것은 미국 국민도 청구서를 받았다는 사실입니다. 미국도 지난 3년반 동안 제네바 핵합의를 지키기 위해 중유 비용.폐연료봉 처리 비용 등을 부담해왔습니다. 또 북한에 식량도 제공했습니다.

한국의 경수로 건설비용은 연차적으로 내기 때문에 그렇게 부담이 집중되는 것은 아닙니다.

- 벤자민 길먼 국제관계위원장을 주축으로 하는 미의회는 지난해 10월 '만족할만한 핵시설 접근' 을 포함한 7가지 사항이 오는 5월까지 충족 안되면 예산을 전면 중단한다는 내용의 결의안을 채택했습니다. 만일 이때까지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94년처럼 제한 폭격론이 대두될 것으로 보십니까.

"아닙니다. 분명한 것은 의회가 설정해 놓은 조건을 충족못할 경우 제네바 핵합의가 깨지는 심각한 사태로 발전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북한은 이 합의가 유지될 때 받을 수 있는 이익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문제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 것으로 봅니다. "

- 지난해 11월 대사께서는 남북한 군사령관 사이에 핫라인 설치 필요성을 언급했습니다. 한반도의 우발적 충돌을 막기 위해 천용택 (千容宅) 국방장관과 김일철 인민무력상간에 핫라인 설치 필요성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또 99년에 남북한이 군축을 추진한다면 환영하겠습니까.

"첫째, 우리는 남북 교류와 협력을 확대하는 어떤 종류의 접촉도 환영합니다. 둘째, 미국은 한반도의 국방비 삭감과 전반적인 군축에 큰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물론 군축은 상호적이고 균형적이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현재 진행중인 4자회담에서 언젠가는 한반도 군축문제와 긴장완화 문제를 다루기를 기대합니다. 그런 뜻에서 남북 군사당국간에 핫라인 설치를 환영합니다. 이 문제는 1백m 달리기보다 마라톤을 완주하는 자세로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

- 최근 유엔주재 이근 북한 차석대사는 '우리는 미국과 좋게 지내려고 하는데 미국이 경제제재를 풀지 않아 개방을 못한다' 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북한이 왜 개방을 못하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외부 세계에 대한 불신, 그리고 체제 붕괴에 대한 우려 때문에 개방을 못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북한과 미국간에는 상호적인 일련의 과정이 필요합니다. 즉 양측이 하나둘씩 약속 사항을 지켜나가면서 차근차근 신뢰를 쌓아나갈 필요가 있습니다. 북한과는 작은 아이템을 치밀하게 짜놓은 시간표에 따라 하나씩 교환하면서 작은 신뢰를 점차 큰 신뢰로 키워나가는 방식이 효율적이라는 점입니다. 레이건 전대통령은 과거 옛 소련과 협상하면서 입버릇처럼 '신뢰하라, 그러나 검증하라 (Trust, but verify)' 고 말하곤 했습니다.

이 경구는 북한문제에도 유용할 것 같습니다. "

- 대사께서 김정일 (金正日) 국방위원장에게 전하고 싶은 신년 메시지가 있다면.

"글쎄요, 내가 김정일 위원장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적절한 일인지 모르겠습니다만 굳이 한다면 '한반도에 항구적인 평화를 이룩할 기회가 왔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의 대북정책은 북한의 변화에 좋은 기회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또 지금은 북한이 미국과 관계를 정상화할 좋은 기회입니다. 이 기회를 놓치지 마십시오' 라고 하고 싶군요. "

- 지난해 하반기에 떠들썩했던 최장집 교수 사건의 배경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솔직히 말해 이것은 내가 잘 모르는 문제입니다. 다만 내가 받은 인상으로는 한국사회에서 북한 문제는 그동안 논란거리가 된 민감한 사안 같습니다.

그런데 한국 정부가 이제는 북한에 좀 더 자신감을 갖고 적극적인 자세로 접근을 하니까 일부 사람들이 '이것은 그동안 해왔던 방식이 아니다' 고 생각해 문제를 제기한 것 같습니다. 모든 이슈를 놓고 갑론을박 토론하는 것은 그 사회가 건강하다는 신호입니다. "

- 경제분야에 대해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1년 전에 대사께서는 한국경제가 터널의 초입에 있다고 했습니다. 지금은 한국경제가 터널의 어디쯤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현재 한국경제는 터널 속을 꽤 지난 상태입니다. 저 멀리 가물가물 희망의 불빛이 보이는 상황입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지난 12개월간 괄목할만한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한때 텅 비었던 외환 보유고는 확충됐고 한때 달러당 2천원까지 했던 원화는 이제 1천1백원대로 강해졌습니다. 문제의 핵심인 은행도 크게 개편됐습니다. 자연 한국경제를 보는 국제사회의 시선도 크게 달라졌습니다. 한국경제의 다음 목표는 기업 구조조정입니다. 과도한 부채를 줄이고 중복투자 문제를 해소하는 것은 아주 중요한 과제입니다. "

- 미국 의회는 지난해 12월 IMF 구조조정 자금이 한국의 철강.반도체 분야에 흘러가지 못하게끔 결의안을 채택했습니다. 음모론적인 시각에서 보면 이는 워싱턴이 경제위기를 이용해 한국의 경쟁력을 약화시키려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는데.

"먼저 말씀드릴 것은 미국 행정부가 그 결의안에 반대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의회로부터 1백70억달러에 달하는 IMF 추가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울며 겨자먹는 식으로 수용한 것입니다. 이 결의안을 채택한 배경에는 낮은 가격을 무기로 한 아시아산 제품에 대한 미국 산업계의 불안감과 국내 정치적인 요소가 있습니다.

98년도 미국의 대한 (對韓) 수출량은 전년도에 비해 40% 가량 감소했습니다. 즉 미국 산업계도 한국의 경제위기로 엄청난 피해를 본 겁니다. 따라서 한국이 건강한 경제를 갖는 것은 미국의 국익과도 직결됩니다. 한.미 관계는 제로섬 관계가 아닌 '포지티브 섬 (Positive Sum)' 관계입니다. 한국이 잘 돼야 미국도 잘 됩니다. "

- 안성기.심혜진은 미국 영화계로 치면 해리슨 포드나 멕라이언에 해당하는 한국 영화계의 스타입니다. 최근 이들은 미국이 요구하는 스크린 쿼터제 폐지에 항의해 대사관 앞에서 자신의 영정을 들고 항의 데모를 했습니다.

안성기씨를 만나면 무슨 말을 해주고 싶습니까.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는 그 데모가 있을 때 서울에 없었습니다. 두가지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하나는 한국이 4천년 이상의 문화적 뿌리를 가진 강력한 문화 국가로 스크린 쿼터제가 대단히 민감한 사안이지만 이것이 양국이 최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화급한 사안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양측이 좀 더 진지하게 논의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둘째는 전세계적으로 살펴보면 마치 산업처럼 문화도 정부의 보호막 속에 오래 안주하면 문화 경쟁력은 강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약화된다는 사실입니다. "

- 겨울 휴가를 이용해 금강산에 가볼 계획은 없습니까.

" (웃으며) 이번 겨울휴가에는 힘들 것 같습니다. 나는 이미 북한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아주 흥미로운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내 아내는 아직 북한을 못가봐 가보고 싶어할지 모르겠습니다. "

최원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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