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년 역사의 한의학을 쇼윈도 앞에 세우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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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호 31면

①서울 종로구 낙원동 뒷골목에 어둠이 드리워지면서 한방박물관의 유리벽 안으로 3층 탕제실 약탕기들이 훤히 들여다보인다. ②탕제실 옆 한약 조제실. ③공연·강의 등 다양한 문화행사를 할 수 있는 지하 1층 역사관. 무거운 3층 약탕기의 하중을 견디기 위해 기둥을 사선으로 기울여 배치했다. 신동연 기자

낙원동 뒷골목. 줄 선 러브 모텔. ‘종삼’ 윤락가의 마지막 쪽방. 재개발을 기다리며 방치된 한옥. 아는 사람들만 아는 게이 바. 속을 드러내 보이지 않으려는 이들 사이에 유리를 통해 훤히 속을 내보이는 건물이 2008년 가을에 들어섰다. 4m 높이의 원형 기계 4대 주변에 흰색 가운을 입은 사람들이 작업을 하고 있다. 기계들은 한약 탕제기다. 이 건물은 170년 한의를 가업으로 이어가고 있는 춘원당 한의원과 한방박물관이다.

사색이 머무는 공간<17> 춘원당 한의원과 한방박물관

춘원당의 윤종흠 5대 원장은 한국전쟁 직후 부산 피란 시절을 거쳐 이곳에 한의원 자리를 잡았다. 동네는 계속 쇠락해 갔지만 춘원당은 6대, 7대 원장을 거치면서 규모를 키워 1997년 현재의 구관을 신축했다. 약재 제조량이 많아 약탕기를 자체 개발해 발명특허와 함께 탕전기 2기를 보유하고 있다. 춘원당은 약탕기 2기를 더 제작하면서 디지털 테크놀로지를 이용한 한약재의 체계적인 저장, 품질관리, 제조 등의 과정을 통합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다. 한의학의 보급을 위한 박물관도 시작하고자 했다. 미래에 대한 비전도 있다. 신관은 6m 도로를 사이에 두고 구관을 마주보고 있다. 구관 옆에는 지금 주차장으로 사용하고 있는 빈 터가 있다. 이곳에서 이축했던 한옥을 장차 이 자리로 다시 이전해 병원과 문화시설의 복합체를 도심 속에 심고자 한다. 춘원당은 긴 시간을 두고 생각을 할 줄 아는 건축주와 건축가의 만남이 이루어낸 건물이다. 윤영석 원장은 6대에 걸쳐 내려온 지식과 자긍심으로 시간을 기다리고 자신의 일에 대한 믿음이 있다. 건축가 황두진은 서울 구도심의 공간과 현실을 잘 아는 건축가다.

건축주 결단으로 약탕기 공개
건축주는 무엇을 원하는지 분명히 알고 있었고, 그것을 자세히 설명할 줄 알았다. 춘원당은 이렇게 분명한 ‘프로그램’에서 출발했다. 컴퓨터와 같이 건축에도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있다고 할 수 있다. 프로그램을 흔히 건축의 기능과 면적이라고 생각하지만 건축에 어울리는 말들이 아니다. 역사와 기억을 담아내는 건축은 면적이 아니라 공간을 갖고, 단순하게 작동하는 기계가 아니다. 프로그램은 건물의 존재 이유이자 그 정체성의 기반이다. 건축주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가 분명할 때 건축가는 그것을 공간과 재료로 해석하고 실현시킨다. 콘텐트가 결정되면 거기에 맞춰 껍데기를 디자인한다는 뜻이 아니다. 건축은 이들의 관계를 만드는 일이다. 그는 프로그래머이자 하드웨어 디자이너다.

그렇다면 건축가는 현실의 문제를 풀어줄 수 있는 해결사여야 한다. 60%의 건폐율과 좁은 길로 이 땅에서 찾을 수 있는 최대한의 면적을 확보하는 고밀도 도심 건축의 문제들을 해결해야 한다. 탕전실과 제약실·진료실·박물관·창고·주차장 등 적어도 다섯 가지의 전혀 이질적인 프로그램을 수용해야 한다. 자동차 진입은 전면 6m 도로에서만 가능하다. 어려운 대지 조건 속에서 춘원당 건축의 하드웨어는 여느 근린 상업시설의 기본 틀에서 벗어날 수 없다.

다른 한편 건축가는 미래주의자다. 프로그래머로서 그는 획기적인 발상을 해 본다. 한약을 만드는 일이 건물의 핵심인 만큼 이것을 숨기지 말자. 이 건물이 무엇인지를 드러내자. 쉬운 결정은 아니다. 약을 달이는 일은 예부터 가장 정성 들여야 하고 보호받아야 하는 행위였다. 경우에 따라서 공개돼서는 안 되는 비법이기도 하다. 마치 백화점 쇼윈도처럼 약탕기를 도시의 행인들 앞에 전시하자는 아이디어다. 건축주는 고민 끝에 동의했다. 어려운 결정을 할 수 있는 것은 역사의 힘이 주는 건축주와 건축가의 자신감이다. 한의학의 핵심은 변하지 않을지라도 그 학습 방식과 정보 관리, 제조 기술과 유통 체계, 그 이미지와 공간은 달라질 수 있고 달라져야 한다는 생각이다. 살아 있는 전시품이 된 탕전기의 디자인에까지 건축가의 손이 닿게 된다. 1000년이 넘은 한의학에 새로운 이미지를 불어넣은 춘원당에서 “오래된 것이 새것을 잉태한다”는 황두진의 모토가 실현됐다.

시선의 중심이 된 탕전실은 건물 전체의 공간 구성과 프로그램의 배열을 지배한다. 4대의 무거운 탕전기가 폭이 좁은 가로 전면에 배치돼야 하기 때문에 기둥 배열이 이에 맞춰 결정된다. 탕전실을 지하에 넣었다면 지상의 공간이 자유로워져 건물 설계가 훨씬 쉬웠을 것이다. 하지만 춘원당의 시각과 공간의 중심이 된 이상 이것은 대안이 아니다. 길거리와 만나는 1, 2층에는 접근성을 위해 진료실과 주차장을 두었다. 진료실을 살짝 올리고 주차장을 살짝 내렸다. 지하로 내려간 강당은 탕전기의 배열에 맞춰진 기둥을 사선으로 기울여 적절한 공간과 시야를 확보한다. 박물관과 창고는 5, 6층 탕전실 위로 자리 잡게 된다. 층마다 프로그램이 다르고 층마다 높이가 다르다.

100년 넘는 약재함과 첨단기계가 공존
춘원당은 내부적인 결속력이 강한 건물이다. 난삽한 도시 영역에서 춘원당으로 들어오는 순간 명쾌하게 조직된 세계로 들어오게 된다. 처방에서 시작해 약의 제조를 거쳐 약의 포장과 배달까지 탕전실 공간은 그 자체가 역사와 지식의 흐름으로 구현됐다. 컴퓨터가 관리하는 체계에 따라 2000년 동안 사용해 온 약초가 100년이 넘은 약제함에 분류돼 첨단 약탕기로 제조된다. 스테인리스 스틸 탕전기와 허름한 낙원동 뒷골목의 풍경 사이에 불안한 괴리감이 있다. 박물관은 아직 규모가 크지 않고 진료실을 거쳐 5층까지 엘리베이터로 올라가야 하기 때문에 일반인에게는 접근이 어렵다.

건축가는 박물관을 길거리와 편하게 만나게 하는 계획안도 생각해 보았지만 지금의 이 건물은 무엇보다도 한의원에 충실해야 한다. 아직은 담을 치고 도시로부터 보호받아야 하는 건물이다. 도시와의 교감이 시선으로 한정된, 투명하지만 개방적이지는 않은 건물이다. 춘원당은 그렇다면 프로그램, 도시적인 조건, 건축 법규, 빡빡한 현실에 의해 결정된 건축인가? 그렇게 이야기해서는 안 된다. 한방박물관이 성장해 현재 진료실로 쓰이는 2층 자리에 들어서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다. 지금의 빈 터에 한옥이 다시 돌아오면 도시의 안과 밖이 더 긴밀하게 소통할 것이다. 그러면 강당과 주차장은 도시의 길거리와 보다 유기적으로 연결될 것이다. 쉽게 변하지 않을 것은 3, 4층의 탕전실이다. 하지만 이곳은 이미 살아 있는 박물관이 아닌가. 춘원당이 낙원동의 모습을 모두 바꾸어 놓지는 못한다. 낙원동이 천천히 하나씩 변해 간다면 미래에 열린 한 가지 모습을 설득력 있게 제시해 줄 뿐이다. 치열한 도시의 생존 경쟁 속에서도 제 역할을 하며 기다림의 정서를 몸으로 익힌 건축이다.



춘원당
1847년 평안북도 박천에서 시작했다. 지금은 윤영석 7대 원장이 1대 윤상신 원장의 대를 이어 가업을 잇고 있다. 2008년 신관을 지어 구관과 함께 5개의 진료실을 운영하고 있다. 신관에 자리 잡은 한방박물관은 어린이를 위한 교육 프로그램 등 한의학의 홍보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신관은 대지면적 627m², 연면적 1883m²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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