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사 대표 9인이 본 한국경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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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본격적인 경기 회복은 일러야 내년 하반기께." "신용불량자 문제도 1~2년 내에는 풀기 어렵다."

신용카드회사 대표들의 진단이다.

신용카드사들은 내수 경기에 가장 민감하다. 소비의 증감과 소비 행태 등이 실적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당연히 내수 회복은 카드업계의 초미의 관심사다. 실제로 카드사들은 개개인은 물론 업종별로 카드 사용 빈도와 사용액을 꼼꼼히 들여다 본다. 그래서 카드업계의 경기 전망, 특히 내수의 움직임은 정부나 연구소의 '막연한' 전망보다 훨씬 설득력 있다. 신용카드회사 대표들은 "생각보다 경기 회복시점이 늦어질 수 있다"는 비관론을 폈다.

9개 카드사 대표들의 경기 전망과 업황에 대한 진단을 설문을 통해 알아봤다.

◇경기회복 장담 못한다=대다수 카드사 대표는 "상반기보다 올 하반기에 경제 상황이 더 나쁠 것"이라고 점쳤다. 신한카드 홍성균 사장과 외환은행 니본 상무는 그 근거로 ▶고용 없는 성장▶가계 부실▶물가 상승 압력▶고유가 등 '겹친 악재'를 들었다.

업계 대표들은 소비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는 구체적인 근거를 댔다.

비씨카드 이호군 사장은 "지난해 12월에는 비씨카드 고객 한사람이 평균 46만1000원(신용 판매)을 썼는데 지난 6월에는 카드사용액이 42만원으로 뚝 떨어졌다"고 말했다. 현대카드 정태영 사장은 "현대카드의 경우 1만원 미만 소액결제 건수가 지난해 말 199만여건에서 올 6월에는 370만건으로 두배 가까이 불어났다"고 말했다. 그만큼 씀씀이가 줄고 있다는 얘기다. 이들이 본 내년도 경제전망 역시 '잠재성장률 5% 이상 달성이 가능하다"는 정부의 전망을 무색하게 한다.

"내년 상반기에 조금씩 회복 국면"(롯데카드 이병구 대표.국민은행 이상진 부행장)이란 예측은 그나마 낙관적이다. 대다수 카드사 대표는 회복 시점을 일러야 내년 하반기로 봤다.

삼성카드 유석렬 사장은 "정부의 경기 대책으로 반짝 상승은 있을 수 있겠지만 내년 상반기까지 계속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LG카드 박해춘 사장도 "2005년 말까지 본격적인 경기 회복은 어려울 것"이라고 점쳤다.

◇신용불량자 문제 오래 간다=정부는 채무재조정 등 신불자 감축을 위해 백방으로 뛰고 있다. 하지만 카드사 대표들은 "경기회복이 안 되면 신불자 문제는 계속될 것"이라고 봤다. 국민은행 이상진 부행장은 "형편이 더욱 어려워진 저소득층을 감안하면 (신불자 문제를) 1~2년 내에 해결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비씨카드 이호군 사장은 "신불자가 100만명 이하로 줄어야 해결이라고 할 수 있는데 경기가 계속 가라앉고 있어 신불자는 오히려 늘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삼성카드 유석렬 사장은 "개인들의 과다한 채무를 줄이는 작업은 기업의 채무를 줄이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 현대카드.신한카드 대표들 역시 "신불자 문제는 내수가 회복돼야 회복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카드업계 더 힘들다="하반기엔 흑자 기조로 돌려놓겠다"던 대다수 카드사의 희망은 이뤄지기 어렵게 됐다. 몇몇 카드사는 최근까지 유상증자나 외자 유치, 그리고 대규모 대손상각 등을 통해 '급한 불'은 껐지만 카드사들의 근본적인 경영개선은 하반기에도 어려울 전망이다.

비씨카드 이호군 사장은 "올해 비씨카드 사용액(11개 회원사 합계)이 지난해보다 25.7%나 줄어든 92조원 안팎에 불과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들이 경영 개선의 가장 큰 걸림돌로 꼽은 것은 내수 침체다.

표재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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