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대 사회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월든 벨로 박사의 '어두운 승리' (이윤경 옮김.삼인.8천5백원)가 번역돼 나왔다.
90년대 아시아적 위기상황을 80년대 아프리카.중남미 국가들이 겪은 '상실의 10년' 에 접목 시킨 분석력이 돋보이는 책이다.
70년대 종속이론의 키워드는 '저개발의 개발' .하지만 후진국이 아닌 개발도상국이라는 단어와 닉스 (NICS:신흥공업국가) 라는 신조어에 가려 종속이론은 퇴색하고 말았다.
하지만 벨로는 지금의 상황을 '재식민지화' 로 규정하면서 21세기가 '북반구' (부유한 나라) 와 '남반구' (빈곤한 나라) 의 전쟁으로 막을 열지 모른다는 우려의 목소리를 낼 정도다.
책의 시작과 끝, 그리고 중간 몇군데 반복적으로 인용되고 있는 제프리 가튼 (클린턴 1기 행정부의 통상차관) 의 말이 상징적이다.
"아시아국가들은 현재 깊고 어두운 터널을 지나고 있다. 그 끝에는 지금과는 전혀 다른 아시아가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미국기업이 시장 깊숙이 침투하여 주도권을 장악하고 있는 현실 말이다. " 벨로는 이어 종래 미국의 '동맹국' 이 '표적국' 이 돼 추락하는 현상에 대해 날카로운 분석의 잣대를 들이댄다.
미국이 주도하는 구조조정이란 이름의 차관은 '제3세계 길들이기' 차원의 대반격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레이건.대처주의를 수렴한 신자유주의의 음모이론까지 등장하는데 태국.멕시코.칠레.가나.코스타리카.필리핀의 빈곤화에서 그 흔적은 확연하다.
게다가 그는 한국의 IMF상황에 대해 '성공의 벌칙' 이라는 말로 설명을 잇는다.
그렇다면 대안은 뭘까. 벨로는 과거에의 향수, 즉 '명령형 또는 국가지원형 자본주의' 로의 회귀는 금물이라고 단언하고 있다.
대신 그는 '지속 가능한 개발' 을 대명제로 한 새로운 국제질서의 확립 필요성을 내세운다.
보론으로 붙은 벨로의 '아시아 금융의 위기 : 원인.과정.전망' 은 책의 무게와 의미를 더한다.
허의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