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이읽기 BOOK] ‘2억명 인도’ 왜 영국인 6000명에 무릎 꿇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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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현대사를 바꾼 고대사 15장면
플루타르코스 외 지음, 로시터 존슨 엮음, 정명진 옮김, 부글북스
343쪽, 1만3000원

인도의 카스트 제도는 세습법의 파워를 보여준다. 합리적 이성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측면이 많다. 지금은 경제·정보기술 강국으로 부상했지만 인도는 영국의 오랜 식민통치를 받았다. 『군중심리』로 유명한 프랑스 심리학자 귀스타브 르 봉은 카스트 제도에 의문을 가졌다.

“영국의 지배를 받을 때 2억5000만 명에 이르는 인도인이 겨우 6000, 7000 명밖에 되지 않는 이방인에게, 그것도 자신들이 혐오하는 외국인에게 불평 한마디 없이 복종했던 현상을 어떻게 이해할까.”

이 모순을 꿰는 키워드가 카스트 제도다. 귀스타브 르 봉은 인도에 뿌리 박힌 카스트, 이른바 엄격한 신분제도를 인도인의 ‘영원한 조국’이라고 보았다. 당연 과거 인도인은 이방인에 대항할 연합체를 결성할 의지가 전혀 없었다. 자기 나라의 통합에 대해 꿈도 꾸지 않았다는 것이다. “힌두사람에게 카스트를 잃는 것보다 더 무서운 것은 없다. 카스트를 잃는 것은 자신의 모든 것을, 부모와 인간관계와 재산을 한꺼번에 잃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서구 문학과 예술에 끝없는 상상력을 불어넣어온 트로이전쟁. 복수심에 불타는 아킬레우스가 트로이의 가장 고귀한 전사 헥토르에게 돌진하고 있다.

세습법이 어떤 종교나 이념보다 사람을 옭아맨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증거다. 소위 정보사회, 네트워크 사회인 21세기의 우리를 구속하는 관습, 혹은 편견은 뭘까. 인종갈등·종교분쟁·민족전쟁 등 숱한 다툼은 자신의 습속과 신념을 절대진리로 착각하는 데서 비롯하는 것은 아닐까.

이 책은 제목처럼 문명의 기원부터 유대인의 유랑까지 고대 동서양의 주요 사건 15가지를 간추렸다. 에피소드별로 필자가 다르고, 접근방식이 상이하지만 ‘과거와 현재의 대화’로서의 역사를 다시금 음미할 수 있다. ‘○○○ 몇 장면’ ‘△△△ 몇 순간’류의 가벼운 읽을거리를 넘어 묵직한 주제의식을 담았다. 함무라비 법전, 아테네 건설, 트로이 함락, 로마의 건설, 불교의 탄생, 공자의 등장, 로마 공화정 확립, 예수의 처형, 로마 대화재, 폼페이 멸망 등 굵직굵직한 인물과 사건을 만나게 된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같은 혹독한 처벌로 유명한 함무라비 법전의 흥미로운 대목 하나. “만약 남자가 아내를 얻어놓고도 그녀와 육체관계를 하지 않는다면, 그 여자는 그의 아내가 아니다.” 오늘날 시점에도 선진적이다. “남편이 포로가 되었는데 집에 생계수단이 전혀 없을 경우에는 그녀가 다른 집으로 가더라도 탓해서는 안 된다.” 제법 실용적이다.

예수의 죽음에 대한 해석도 되새김할 만하다. “투쟁은 길고 험했지만 예수 그리스도가 죽는 순간 모든 폭군과 모든 증오에 조종을 울렸다. (예수는 삶의) 의무의 범위를 이웃의 좁은 울타리에서 인간 종(種)의 끝없는 지평으로 넓혔다.”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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