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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선정 98 새뚝이]4.체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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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한국 스포츠의 새 판을 연 새뚝이들. 올해는 어느 때보다 큰 일들이 많았다.

그중에 우뚝 서서 국제통화기금 (IMF) 경제난 속에서 시름하고 있는 국민들에게 기쁨을 안겨준 새뚝이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데뷔 첫해에 메이저대회 2승 등 미 여자프로골프투어 4승의 위업을 거둔 박세리는 기존의 틀을 완전히 깨버린 쾌거였으며 경비행기로 세계를 횡단한 이주학의 개척정신도 우리에게 큰 힘을 주었다.

세계챔피언이면서도 체급조정후 후배들의 스파링파트너를 자청, 기어코 새 체급에서도 세계정상과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따낸 심권호는 실력과 정신 모두 최고다.

나가노겨울올림픽과 월드컵에서 쇼트트랙 강국의 전통을 이어받은 김동성은 비인기종목에서도 '오빠부대' 가 등장할 수 있음을 증명한 스타였다.

"국내 프로축구는 안돼" 라는 비관속에 "프로축구도 흥행이 될 수 있다" 는 사실을 입증한 프로축구연맹 김원동 부장은 올해 프로축구 중흥의 숨은 공로자다.

잇따른 팀 해체의 위기 속에서도 대표팀의 해외전지훈련을 성사시켜 아시안게임 남녀 동반우승을 이끌어낸 설원봉 핸드볼협회장도 스포츠계 새뚝이로 손색이 없다.

스포츠 새뚝이는 올 스포츠.레저분야에서 불굴의 정신과 진취적 기상으로 새 판을 열며 뚜렷한 업적을 쌓은 후보자를 대상으로 본사 체육부에서 선정했다.

한국신기록과 아시안게임에서 우승한 이봉주, 한국 수영의 대들보로 자리를 굳힌 조희연, 프로축구 중흥을 이끈 이동국, 역도 세계신기록을 들어올린 김학봉 등도 후보에 올랐다.

[골프여왕 박세리]

올해 한국이 수출한 상품중 최고 히트 상품은 단연 박세리 (21.아스트라) 다.

IMF 환란 (換亂) 속에서 국가신용도가 떨어졌어도 그녀만큼은 '보증수표' 였다.

흔들림 없는 그녀의 당당한 걸음걸이는 자신감과 후련함까지 안겨주었다.

그녀는 올해 전세계 골프계를 발칵 뒤집어놓았다.

'골프 후진국' 한국에서 온 풋내기가 데뷔 첫해 미국여자프로골프 (LPGA)에서 메이저대회 2승 등 4개 대회를 석권한 것은 분명 '사건' 이었다.

국내언론은 물론 세계의 유수한 언론들도 거의 빼놓지 않고 그녀에 대한 특집기사를 다뤘다.

그녀는 명예뿐 아니라 엄청난 돈방석에 앉았다.

개인으로서는 하루 아침에 부귀영화를 누렸지만 그녀를 통해 우리 국민은 곤경속에서 더 의연해지는, 흔들림 없는 정신력을 다시 일깨울 수 있었다.

사람들은 그녀의 어린 나이에 주목한다.

그녀가 성공을 일궈내기까지의 과정에도 주목한다.

보통 사람들은 상상할 수도 없는 시련의 연속이었다.

미국 올랜도에서 내년 시즌에 대비해 비지땀을 흘리고 있는 그녀는 요즘 새로운 각오를 다지고 있다.

"처음으로 돌아가자. 이제부터 다시 시작하는거야. "

[설원봉 핸드볼협회장]

"토질이 좋았기 때문에 약간의 비료만 줬을 뿐입니다. " 방콕아시안게임 남녀핸드볼 동반우승을 이끌어낸 설원봉 (薛元鳳.50.대한제당 회장) 대한핸드볼협회 회장은 자신을 운좋은 농사꾼에 비유했다.

하지만 薛회장은 올해 한국 핸드볼계의 구세주다.

지난해말 IMF 경제위기로 전임 회장이 사임한 뒤 구심점을 잃은 핸드볼계는 날로 허물어졌다.

실업팀이 하나둘씩 해체되고 선수들과 코치들도 비인기종목의 설움을 받으며 동요하기 시작했다.

만약 지난 5월 薛회장이 취임하지 않았다면 아시안게임에서의 남녀 동반우승은 힘들었을 것이라고 모두가 입을 모은다.

취임 직후 그는 대표선수들의 경기력 향상에 총력을 기울였다.

사재를 털고 각계에 도움을 호소, 2억여원을 만든 뒤 8월부터 남녀 대표팀을 유럽 전지훈련 보냈다.

모친이 노환으로 위독한 와중에도 薛회장은 방콕까지 날아가 남녀 대표팀의 우승 순간을 지켜봤다.

[김원동 프로축구연맹부장]

올 프로축구 중흥의 산파역 김원동 (金元東.40) 프로축구연맹부장. 그는 현대맨이다.

정몽준 대한축구협회장 때문에 축구와 인연을 맺었지만 그의 축구사랑은 어느 누구 못지않다.

지난해말 축구협회 지원부장에서 프로축구연맹 부장으로 발령받은 이유를 그는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야구팬은 매주 꼬박꼬박 교회를 가는 기독교인이고, 축구팬은 절에 가지도 않으면서 '나의 종교는 불교' 라고 말하는 불교신자와 같다" 는 게 金부장의 생각이다.

그는 국내 프로축구는 흥행이 될 수 없다는 고정관념을 깨버렸다.

올스타전을 잠실운동장에서 하겠다고 했을 때 주위에서는 모두 "미쳤냐" 고 했다.

그러나 그는 6만명의 관중을 모으는데 성공했고 다양한 볼거리와 역대 최우수선수를 한자리에 모으는 등 올스타전을 '축제' 로 승화시켰다.

프로축구도 흥행이 될 수 있다는 그의 신념은 올시즌 처음으로 2백만 관중 돌파라는 신기원을 세우는데 큰 힘이 됐다.

[레슬링 금메달 심권호]

세계선수권과 아시안게임 금메달. 레슬링 그레코로만형 54㎏급 심권호 (沈權虎.27) 는 최고의 한해를 보냈다.

그러나 그가 진정한 '작은 거인' 인 것은 자존심을 꺾고 '백의종군' 을 자청한 이후 다시 일어섰기 때문이다.

1m59㎝의 단신인 그는 48㎏급에서 세계최고였다.

93년 세계선수권대회 제패를 시작으로 94년 히로시마 아시안게임, 96년 아시아선수권대회에 이어 애틀랜타 올림픽까지 막을 자가 없었다.

하지만 국제레슬링연맹 (FILA) 이 48㎏급을 없애면서 고난은 시작됐다.

54㎏급으로 체중을 올려 대표선발전에 나섰지만 후배에게 무릎을 꿇었다.

주저앉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러나 심권호는 과거를 버리고 도전을 택했다.

후배들의 스파링 파트너를 자청해 태릉을 찾았다.

주위에서조차 만류했지만 그는 진정한 자존심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마침내 올해 4월 심권호는 태극마크를 되찾았다.

그리고 8월 스웨덴 예블레에서 벌어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다시 정상에 우뚝섰다.

한국 레슬링 사상 최초의 2체급 석권이었지만 이제 세계 최초의 2체급 그랜드슬램을 노리고 있다.

[쇼트트랙 간판스타 김동성]

하루 3백통의 팬레터를 받는 오빠부대의 우상. 쇼트트랙 스피드스케이팅의 간판스타로 떠오른 김동성 (고려대)에게 지난 봄은 남부럽지 않은 계절이었다.

나가노겨울올림픽 1천m 결승에서 '날들이밀기' 기술로 중국의 리자준을 간발의 차로 따돌리고 금메달을 따냈을 때 그의 인기는 하늘을 찌를 듯했다.

특히 1m75㎝.78㎏의 잘 다듬어진 몸매는 '다리가 짧아야 유리하다' 는 잘못된 쇼트트랙관을 확 바꿔놓았다.

'롱다리'로도 정상에 설 수 있다는 사실을 김동성은 세계에 알린 것이다.

그는 지난 5월 선수생명을 담보로 한 수술대에 올랐다.

고교시절 다쳤던 오른쪽 무릎의 찢어진 연골을 접합하는 큰 수술. 다시는 얼음판에 설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김동성은 방황했다.

1위였던 세계랭킹도 3위로 떨어졌다.

한때 포기할 생각도 했지만 마음을 추스르고 지난 9월부터 재활훈련에 나섰고 월드컵 3차와 4차대회에서 연속 3관왕에 올랐다.

'롱다리' 김동성은 내년 2월 강원겨울아시안게임에서 또 한편의 드라마를 준비하고 있다.

세계랭킹 1위자리를 빼앗아간 라이벌 리자준을 꺾기 위해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경비행기 세계일주 이주학]

단발 경비행기에 몸을 싣고 지구를 한바퀴 돌아온 이주학 (李柱學.28) 씨. 그는 이 시대의 '안창남' 으로 불린다.

1m80㎝.80㎏의 훤칠한 체격에 귀공자 타입. 중2때 이민간 1.5세대. 그를 처음 본 사람은 얌전하게 보이는 그가 어떻게 목숨을 건 태평양.대서양 횡단을 할 수 있었는지 의아해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그의 삶의 밑바닥에는 건전한 사고와 동양적인 윤리의식이 깔려 있다.

어려운 곤경에 처하더라도 웃음을 잃지 않는 긍정적인 사고방식이 경비행기 세계일주를 성공할 수 있게 해준 원동력이다.

4개월전만 하더라도 李씨는 이름조차 생소했던 젊은이였다.

그러나 건국 50주년과 중앙일보 창간 33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중앙일보와

대한항공 후원으로 36일간의 세계일주를 무사히 마친 후 하루 아침에 유명인사가 됐다.

한국방송광고공사는 李씨를 모델로 '도전하는 사람이 우리의 희망' 이라는 공익광고를 제작해 연초에는 TV를 통해 볼 수 있다.

지난해 알래스카와 북극권 탐험을 위한 시험비행을 마친 李씨는 새로운 천년의 시대를 맞아 인류 최초로 북극~남극 종단을 계획하고 있다.

체육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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