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웃사이더들의 반항·좌절그린 '태양은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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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요즘 한국영화는 '때깔이 좋아졌다' 는 말을 자주 듣는다. 억지식 이야기 전개가 적고 배경음악의 사용이 적절하며 편집이나 연기가 상당히 매끄러워졌다는 뜻이다. 김성수 감독의 세번째 작품 '태양은 없다' 는 이런 경향의 정점에 있는 감각적으로 세련된 영화다.

복싱선수인 도철 (정우성) 이 상대의 펀치를 맞고 다운되는 첫 장면부터 고속촬영 (슬로모션) 으로 처리함으로써 주인공의 절망과 고통이 리얼하게 전달되고 있다.

또 건달처럼 사는 홍기 (이정재)가 도철과 쫓고 쫓기는 질주를 하는 장면에서는 '렛츠 트위스트 어게인' 같은 리듬감있는 음악과 짧게 편집된 장면들을 몽타주로 처리함으로써 긴박감을 강화한다.

이 밖에도 스틸카메라로 처리한 포토몽타주, 교차편집 등 다양한 영화적 형식들이 자유자재로 구사돼 관객들이 전감각을 동원해 영화를 즐기도록 유도한다.

삼류복서 도철과 사기를 쳐서라도 크게 한탕해 멋있게 사는 것이 목표인 홍기, 두 사람이 펼치는 '버디무비' 인 이 영화는 김 감독의 전작들인 '런어웨이' 나 '비트' 처럼 각박한 도시에서 부적응자로 살아가는 젊은 아웃사이더들의 이야기이다.

물론 '비트' 에서처럼 '꿈' 으로 끝날 수밖에 없는 배우를 지망하는 가련한 젊은 여성이 두 사람을 매개한다. 이정재와 정우성은 반항기가 철철 흐르는 20대 젊은이의 역을 그런 대로 소화하고 있다.

그러나 김감독은 전작들의 약점을 극복하지 못했다. 경쾌하면서도 박동감 넘치는 장면들을 받쳐줄 스토리가 허약하다. 이야기 설정이나 에피소들들이 '청춘영화' 라고 할 때 쉽게 떠올릴 수 있는 것들이어서 가슴으로 공감할 수 있는 영화로 승화되지 못한 것이다.

특히 결손가정이나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 등을 삽입한 것은 영화를 신파조로 전락시킨다. 김감독은 어떤 '개념' 을 먼저 세워놓고 인물이나 이야기를 풀어가는 것 같다. 그러다보니 인물의 생동감이나 이야기의 절실함이 상당히 약화되는 것이다.

'왕자웨이 (王家衛) 감독의 겉멋만 따왔다' '때깔만 좋다' 는 일부의 지적에 김 감독은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이영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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