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빅딜 위한 빅딜'안돼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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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중인 빅딜 (대기업간 사업교환)에 혼선과 잡음이 잇따르고 있다.

연말시한을 앞두고 사업주체간 협의가 난항을 거듭하는 가운데 빅딜에 비판적인 발언을 한 장관이 문책성 경질을 당하고, 빅딜에 비협조적인 기업체사장이 교체되는가 하면 정부당국자들이 인사조치를 당했다.

뿐만 아니다.

철강 및 유화업종에 이어 개인휴대통신 (PCS) 과 케이블TV에 대한 '후속빅딜' 논의가 불거져 나오고, 야당인 한나라당은 "원칙과 기준이 모호한 빅딜정책에 대해 당차원에서 강력 대응하겠다" 고 나섰다고 한다.

빅딜의 문제점은 정부내부에서도 제기되고 있다.

국무조정실과 정책평가위원회는 정부업무심사 평가보고에서 "5대그룹 빅딜이 단일법인 설립 및 합병 중심으로 추진돼 업종전문화에 기여하지 못했으며 일부 업종에서는 오히려 부실을 심화시킬 가능성도 있다" 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청와대측은 "난항이라는 용어는 바람직하지 않다" 며 "빅딜은 차질없이, 흔들림 없이 국민과 세계에 약속한 대로 진행시킬 것" 이라고 다시금 쐐기를 박았다.

우리 산업계가 과잉.중복투자와 부실을 걷어내고 경쟁력 있는 부문에 핵심역량을 결집하려면 빅딜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당사자간에 자율적으로, 시장원리에 따른 빅딜이 최선임은 두말 할 필요도 없다.

당사자들은 내키지 않는데 정부가 시한을 정해 놓고 반강제적으로 밀어붙이는 데 우리 빅딜의 고민이 있는 것이다.

우리는 '강요된 빅딜' 에 찬성하지는 않지만 그 불가피성을 이해하는 입장을 취해 왔다.

따라서 이왕 어렵게 타결된 합의내용을 실천하는 과정에서 최대한 자율성과 신축성을 살려 부작용을 최소화할 것을 기대한다.

빅딜은 구조조정의 한 수단이며 그 자체가 궁극적 목표가 될 수는 없다.

빅딜만이 구조조정은 아니며 기업 스스로의 자구노력도, 기업개선작업 (워크아웃) 도 모두 구조조정이다.

시한에 쫓겨 부실기업들을 맞바꾸고, 출자전환이나 부채탕감으로 부실을 덮는다면 이는 부실의 이전 내지 맞교환밖에 안된다.

'두 회사 부채규모가 비슷하니까 맞바꿀 만하다' 식의 발상은 지극히 위험하다.

과잉설비를 그대로 인수하고, 제품과 대리점.협력업체 및 인력까지 1백% 승계한다면 빅딜은 왜 하는가.

이는 구조조정도 아니요, 그저 '빅딜을 위한 빅딜' 일 뿐이다.

단기간의 가시적 성과에 집착해 빅딜을 밀어붙이고 그것으로 구조조정이 끝났다고 생각한다면 그야말로 큰일이다.

이미 진행중인 빅딜의 뒤치다꺼리도 주체 못하는 상황에서 또 다시 후속빅딜을 벌이는 '무리수' 는 재고해야 한다.

업계 스스로 '이러다간 다 망한다' 는 인식을 갖고 돌파구를 모색하는 상황에서 정부가 더 이상 무리하게 개입할 이유는 없다.

정부는 일관된 원칙과 기준을 제시하고, 법적.제도적 보완을 뒷받침하며 합의사항의 자율적 실천을 유도하는 것으로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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