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금 올라도 너무 올라 집 줄여 이사가야 할 형편”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6면

분당신도시 서현동 대성공인 서구원 사장은 “최근 들어 강남권에서 밀려 온 전세 수요자들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게다가 서울 강북권에서는 재개발 사업이 본격적으로 벌어지면서 인근으로 이주하는 전세수요까지 가세하고 있다.

◆싼 전셋집 찾아 외곽으로=20일 오후 서울 동대문구 전농동의 한 재개발 구역. 최근 이주가 본격화하면서 주민들이 하나 둘 빠져나가 마을은 을씨년스럽기만 하다. 온전한 집보다 부서진 집이 더 많지만 아직 이주 계획을 못 세운 주민 일부가 살고 있다. 이 마을에서 9년간 전세로 살았다는 김모(41·무직)씨도 그중 한 명이다. 그는 “전셋값이 너무 올라 기존 전셋값 8000만원에 이주비 700만원을 더해도 주변에서는 전세를 구하기가 힘들다”며 “그나마 전세 물건도 없어 의정부로 나가는 것을 고려 중”이라고 전했다.

은행 창구에는 요즘 전세 세입자들의 발길이 잦아졌다. 금리가 연 7~9% 정도로 비싼 편인데도 대출을 받아 오른 전셋값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우리은행 경기도 용인시 동천동지점 이한기 지점장은 “대개 3000만~4000만원 정도의 전세자금 대출이나 신용대출 문의가 부쩍 늘었다”고 말했다. 1월 말 1411억원이던 우리은행의 전세자금대출 잔액은 지난달 말 2310억원으로 늘었다.

집주인에게 사정해 오른 전셋값을 월세로 돌리는 경우도 많다. 광진구에 사는 박모(33·회사원)씨는 “최근 전셋집을 재계약하면서 매달 20만원의 월세를 내기로 했다”며 “집주인이 전셋값으로 4000만원을 올려 달라고 했지만 당장 목돈이 없어 집주인과 협의 끝에 은행 이자만큼 월세를 주기로 한 것”이라고 전했다.

공급자 중심의 시장이 형성되면서 편법 전세계약도 판친다. 재계약 등을 미끼로 세입자의 주민등록 이전을 막는 것이다. 서울에서는 1가구 1주택자라도 3년 보유, 2년 거주 요건을 채워야 양도소득세를 내지 않기 때문이다. 송파구 잠실동의 한 공인중개사는 “입주해 살던 집주인이 불가피하게 이사를 가게 되자 2년 거주 요건을 채우기 위해 주소를 그대로 두고 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집주인과 세입자가 서로 얼굴을 붉히는 일도 흔해졌다. 전셋값을 두고 고성이 오가거나 집주인과 연락을 끊어버리는 세입자도 있다. 그 바람에 명도소송까지 알아보기도 한다. 익명을 요구한 한 법무사는 “전세 세입자를 상대로 집을 비워 달라는 명도소송을 하는 건 극히 드문 일인데 요즘 이를 문의하는 집주인들이 꽤 있다”고 말했다.

◆가장 큰 문제는 수급 불균형=전세시장이 불안한 것은 무엇보다 수급이 따로 놀기 때문이다. 특히 전셋값 안정에 효과가 큰 신규 입주 물량이 확 줄었다. 올해 서울에서 입주했거나 입주 예정인 아파트는 총 2만2200여 가구로, 지난해(5만1200여 가구)의 절반 수준이다.

수요가 많은 강남권은 지난해 하반기에만 2만여 가구가 입주하면서 전세시장이 안정됐지만, 올해 입주 물량은 지난해의 20%도 안 되는 3800여 가구뿐이다. 주택산업연구원 권주안 박사는 “지난 정부의 공급 억제 정책으로 최근 4~5년간 강남권 재건축 사업이 멈춰 공급이 끊기면서 전세시장이 불안해진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판에 강북권을 중심으로 한 재개발 사업이 한꺼번에 몰린다. 서울시 주거환경개선자문위원회에 따르면 재개발로 올해 서울에서만 3만여 가구가 멸실(부숴서 없어지는 것)될 것으로 추정된다. 내년에도 4만여 가구가 없어질 것으로 내다본다. 재개발 사업이 한꺼번에 몰린 건 2007년 민간택지로 확대된 분양가상한제 영향이 크다. 정부가 2007년 초 상한제를 민간택지로 확대키로 하면서 재개발 사업장들이 속도를 내기 시작한 것이다. 국민은행 부동산연구소 나찬휘 팀장은 “이주 수요가 많은 강북권을 중심으로 하반기 전셋값 상승 폭이 더욱 커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황정일·권이상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