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진택의 디자인 읽기] 기아차 대형 세단 VG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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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기아차의 새로운 대형 세단 VG의 외관 디자인(렌더링·사진)이 공개됐다. 전면에 기아차만의 호랑이 모양 라디에이터 그릴을 달고 나타났다. 로체·포르테·쏘울·쏘렌토·모닝에 이어 최근 부분 변경된 프라이드와 오피러스에도, 저 멀리 유럽에서만 파는 씨드에도 이렇게 생긴 그릴이 달려 있다.

또한 모하비와 카니발·스포티지·카렌스도 앞으로 모델 체인지를 통해 이런 얼굴로 바뀌게 된다. 기아차의 디자인 책임자 피터 슈라이어는 “기아차의 이미지가 모두 통일될 것”이라며 “이름까지 새로운 조합으로 통합될 필요가 있다”고 말한 바 있다. 벤츠·BMW·아우디처럼 영문과 숫자로 조합된 이름을 고려한다는 얘기다. 이렇게 돼야만 기아라는 이름이 하나의 브랜드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현재는 기아라는 커다란 제조사 이름 아래 프라이드·스포티지·쏘렌토 등이 개별 브랜드로 활약하는 다소 모호한 구도다.

기아차가 얼굴과 이름을 통일한다고 해서 당장 얻을 수 있는 소득은 없다. 고작 4개(현대·기아·GM대우·르노삼성)의 제조사 사이에서 고민하는 한국 소비자들의 입장에서는 오히려 지루할 수 있다. 현대차처럼 다양한 얼굴에 다양한 성능, 다양한 이름과 옵션으로 선택의 폭을 넓히는 것이 더 유리할지 모른다.

하지만 기아차가 한국을 넘어 세계 시장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 수많은 자동차 브랜드 사이에서 기아만의 강한 색깔로 승부한다는 전략이다. 세계 자동차 시장은 경쟁이 매우 치열하기 때문에 가격 대비 품질 등 상품성이 좋다는 것만으로는 성공을 보장할 수 없다. 탁월한 품질은 물론이고, 그 브랜드만의 독특한 개성이 함께 있어야 성공할 수 있다. 슈라이어는 현재의 기아차에 대해 “기아만의 특별한 유산을 만드는 과정”이며 “이것은 세계적인 기아를 이끌어갈 후배들을 위해 선배가 꼭 남겨줘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장진택 자동차 평론가
(전 기아차 디자이너)

새로운 대형 세단 VG에는 기아만의 단순하고 강한 이미지가 짙게 묻어 있다. 슈라이어가 늘 말하는 직선의 단순화는 물론, 호랑이 입을 닮은 라디에이터 그릴과 측면 유리창의 끝 부분이 쫑긋 올라가 있는 것도 특징이다. 기아차가 공개한 일부 렌더링만으로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실내 계기반과 버튼들도 붉은색으로 빛날 것이다. 이것도 슈라이어가 언급한 기아차만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5월에 열린 서울 모터쇼에 등장한 VG 컨셉트카는 양산형을 기본으로 이미지를 살려 만든 ‘쇼카’로서 실제 VG와 상당 부분 비슷하다. 요즈음 컨셉트카들은 VG처럼 실질적으로 만드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다. 허세 부리는 컨셉트카는 돈도 많이 들뿐더러 이미지 홍보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자각 때문이다.

장진택 자동차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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