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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일어로 고객 끄는 조선족3세 '뷰티플래너' 전운봉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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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迎光, 里是自然 里面 是?自中?”
“いらっしゃいませ ネイチャ?リパブリックです 中へどうぞ 日本からいらっしゃいましたか?”
(반갑습니다. 네이처리퍼블릭입니다. 안으로 들어오세요. 중국(위), 일본(아래)에서 오셨나요?)

지난 12일 오후 3시, 서울 명동 네이처리퍼블릭 화장품 외국인 매장에서 뷰티매니저 전운봉(32)씨가 유창한 중국어와 일어로 고객을 맞았다. 이곳을 찾은 중국ㆍ일본 고객은 언어 장벽의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다. 마치 자국의 가게에 온 것처럼 전씨와 상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조선족 3세다. 조부모가 일제 치하 때 중국 요녕성 심양으로 거주지를 옮겼다. 전씨는 중국의 소수민족 정책으로 어렸을 때부터 중국어와 한국어를 함께 배웠다. 모국어가 2개인 셈이다. 일어도 모국어 못지 않게 구사할 수 있다. 전씨는 심양고를 졸업한 뒤 일본 릿쿄대 심리학과에 입학해 6년간 동경에서 생활했다.

전씨는 지난 7월부터 네이처리퍼블릭 명동지점에서 외국인 고객 응대 직원으로 일하게 됐다.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운 이때, 그는 ‘길거리 캐스팅’ 됐다.

“매장을 둘러보며 중국, 일본 손님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매장)사장님이 보셨어요. 마침 2개 언어를 할 수 있는 직원을 뽑는다며 같이 일할 수 있느냐고 물어보셨죠. 이튿날부터 출근하게 됐어요.”

그는 대학 졸업 후 북경에서 여행사 가이드, 심양에서 외국어 고등학교 일어 강사로 일했었다. 그러다 조부모가 살았던 조선, 한국이 궁금해졌다. 한국 정부에서 무연고 조선족을 위해 발급한 취업비자(F2)를 받아 지난해 3월 한국 땅을 밟게 됐다.

화장품 소도구 생산업체에 통역사로 취직했다. 작년 말 금융위기로 회사가 어려워져 다시 중국으로 되돌아갔다. 그러다 지난 7월 다시 한국에 왔다. 한국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고민하면서 말이다. 우연히 뷰티플래너로 일할 기회를 얻게 된 것이다.

“고객 응대는 여행사 가이드를 하면서 몸소 배웠고 화장품 기초지식은 무역회사에서 통역을 하면서 어깨 넘어 들었죠. 중국어와 일어도 가능하니 이곳과의 인연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을 수도 있어요.”

그는 매장에 들어오는 고객이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 ‘척 보면 딱’ 맞췄다. 95% 정확률. “스타일이 다 다르거든요. 일본 고객은 자신만의 스타일을 강조하는 개성이 있어요. 같은 옷이나 머리스타일을 한 고객을 한번도 볼 수 없을 정도로. 중국 고객은 자기 개성을 크게 드러내놓지 않고요.”

중국과 일본 고객이 찾는 화장품 품목도 다르다고 했다. “중국에서 살았고 일본에서 공부했기 때문에 두 나라의 고객이 어떤 화장품에 관심이 많은지 알 수 있었어요. 일본 고객은 미백 효과가 있는 상품을 먼저 찾아요. 얼굴이 화사해보이게요. 중국 고객은 건조한 날씨 때문에 보습 효과가 있는 화장품을 많이 찾는 것 같아요.”

고객의 언어로 말을 걸면 친근감과 신뢰가 형성된다고 했다. 그러나 아직 어려운 점은 많다고 토로했다. “화장품이 800여개나 되는데 아직 성분이나 화장품끼리의 차이점 등을 파악하지 못한 것도 있어요. 그땐 제품 뒷면에 있는 설명서를 살짝 훔쳐보기도 하죠. 마스카라와 네일칼라에 대해 물으며 뭐가 유행하는지 한국 트렌드가 어떤지를 물을 땐 당황하기도 하고요.”

그래서 그는 쉬는 날엔 최신 잡지를 보며 화장 기술이나 트렌드 등을 분석한다고 한다. 또 다른 화장품 매장에 들러 상품도 비교해 보고 어떤 서비스를 갖고 있는지도 관찰한다. 인터뷰 도중 함께 일하던 직원들은 “이 친구 참 괜찮다. 일을 무척 잘한다”고 칭찬했다. ‘친절함’이 그의 전매특허다.

“비가 많이 온 날이었어요. 한 중국 고객이 20여만원어치 화장품을 샀는데 손에 짐도 많이 들고 우산도 들어야 해서 택시정거장까지 모셔다 드렸죠. 그분이 한국어를 못해 제가 택시를 잡아 목적지까지 설명해드렸어요. 다음날 고객이 매장에 또 오셔서 10만원어치 화장품을 또 사가지고 가셨어요. 어제 도와줘서 고맙다고요.”

그는 중국에서 한국의 중저가 화장품이 경쟁력 있다고 자신했다. “중국에선 중저가 화장품은 ‘싸구려’ 이미지를 가지고 있어요. 내용물 표시도 없고 포장도 안돼 있죠. 그냥 길바닥에 놓고 ‘싸니까 한번 써보세요’식이예요. 하지만 한국의 중저가 화장품은 고급 화장품 못지 않게 용기, 포장, 이미지, 광고, 홍보 등이 뛰어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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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서비스 노하우를 접목시키면 더 성장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일본의 경우 고객이 물건을 구매하지 않고 그냥 나간다면 ‘원하는 상품이 없어 죄송하다’며 ‘다음엔 꼭 준비하겠다’고 허리 숙여 인사해요. 또 매장 직원은 한 달 정도 계산하는 법을 배워요. 물건의 바코드를 어떻게 찍고, 쇼핑백에 어떤 식으로 재빨리 담는지를요. 두 부분을 합치면 중국 고객의 지갑을 열 수 있을 것입니다.”

지난 6월에 결혼 한 그는 한 달도 채 못돼 아내를 중국에 두고 왔다. “아내를 위해 미래의 아이들을 위해 이곳에서 화장품업체 경영 노하우를 배워가 중국에서 무역 사업을 하는게 꿈이에요.” 인터뷰가 끝나자마자 그를 기다리는 고객에게 달려갔다.

글ㆍ사진=이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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