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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 경기부양 논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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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정부와 여당이 나랏돈을 많이 풀어 경기 부양에 나설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열린우리당과 재정경제부는 9일 각각 경기부양을 위해 적극적인 재정편성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는 이미 올 상반기에 1조8000억원의 추가경정예산을 포함한 4조5000억원의 재정치출 확대안을 짠 데다 재정적자를 무릅쓰고 재정규모를 더 늘릴 경우 나라빚(국가 채무)이 늘고, 물가가 올라갈 우려가 크다고 지적하고 있다.

여기다 한나라당과 일부 민간 연구기관은 재정확대보다는 세금을 깎아주는 정책이 더 낫다는 주장을 펴고 있어 논란이 커지고 있다.

◇재정지출 확대 움직임=열린우리당 천정배 원내대표와 홍재형 정책위원장 등은 이날 국회에서 "내년도 예산시안은 경기대응 기능이 부족하다"며 재정확대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헌재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도 이날 간부회의에서 "단기적으로 재정수지가 적자를 낼 경우 국민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할 필요가 있다"며 "전문기관에 연구용역을 맡기겠다"고 말했다. 적자재정의 가능성을 염두에 둔 말이다.

이 부총리는 지난 6일 "중기적으로 재정을 건전하게 유지해야 하지만 단기적으로는 경기 움직임에 대응해 탄력적으로 운영해야 한다"고 말했다. 경기를 살리기 위해 재정지출을 늘릴 가능성을 열어둔 셈이다. 올해 우리나라의 통합재정수지(일반회계+특별회계+기금)는 사회보장성 기금과 공적자금을 제외하면 이미 7조2000억원의 적자 상태다. 그러나 적자 규모는 선진국에 비해 아직 작다. 그만큼 재정적자를 더 늘릴 여지가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한양대 나성린 교수는 "지난 1년6개월간 재정확대를 했는데도 경기부양 효과가 나타나지 않았다"며 "효과가 확실치 않은 재정지출 확대는 부작용만 키울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최근 "지난해 정부가 두 차례에 걸쳐 7조5000억원의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했지만 이로 인한 실질 GDP 증가효과는 3조3000억원에 그쳤다"는 분석보고서를 발표했다.

◇감세 요구=한나라당 이한구 정책위의장은 9일 "그동안 정부는 세출 확대를 통한 경기 부양에 주력했지만 결국 '밑빠진 독에 물 붓기'였다"며 "위험한 재정확대 정책보다는 과감하게 세금을 깎아 경제주체들의 심리를 안정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 아시아뉴스 편집자인 단 보글러도 이날 "한국이 경제난을 타개하려면 과감한 감세정책을 펴야 한다"고 말했다.

삼성경제연구소도 지난주 "세금을 인하하면 가처분 소득이 늘어나 중산층 이상의 소비심리 회복에 긍정적인 효과가 기대된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헌재 부총리는 "우리나라에서는 면세점 이하의 소득자가 많기 때문에 세금을 깎아주더라도 소비가 늘지 않고 세수만 줄어든다"며 감세정책에 반대 입장을 밝혔다.

김종윤.김선하 기자

*** 뉴스분석

재정.감세정책보다 투자 살리기 우선돼야

정부와 정치권에서 재정확대를 둘러싼 논란이 일고 있는 것은 그만큼 경제가 어렵다는 방증이다.

이헌재 부총리는 "경기가 회복될 조짐이 보인다"며 연일 낙관론을 펴지만, 경제주체들의 심리는 더욱 악화되고 있다.

정부는 이미 지난달부터 '경제가 어려운 만큼 세수목표를 달성하는 데 연연하지 않겠다'며 적자재정의 가능성을 열었다.

그러나 이 같은 재정 확대 정책이 경기 회복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의문이다. 당장 경기와 직결될 만한 대형 국책사업이 없는 데다 무리하게 돈을 풀 경우 자칫 물가를 자극할 우려도 크다.

야당이 주장하는 감세정책 역시 내수를 살리기보다는 가뜩이나 쪼그라드는 세수만 깎아먹을 가능성이 크다.

전문가들은 재정 확대나 감세정책 모두 번지수를 잘못 짚은 경기대책이라고 지적한다. 현재 경기가 살아나려면 무엇보다 기업의 투자가 늘어나야 하는데 재정지출을 늘리거나 세금을 깎아준다고 투자가 늘어날 것으로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홍병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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