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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언대]국민연금 확대 경제에 큰 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국민연금법 개정안이 시행되면 내년 4월부터 4인 이하 사업장 근로자와 도시 자영업자로 적용이 확대되면서 전업 주부를 제외한 거의 대부분의 국민이 연금을 적용받는다.

개정안의 적용대상 확대가 노리는 것은 직업에 따라 노후의 소득보장에 차이가 있는 현 상태를 개선하자는 것이다.

기본 취지는 좋으나 그 방향이 잘못됐다.

노후소득보장의 바람직한 방향은 국민연금 등 공적연금이 직업에 관계없이 전 국민에게 최저생계비의 일정부분에 해당하는 소득을 제공하는 데에서부터 시작된다.

그 나머지는 개인연금이나 기업연금 등 사적연금을 통해 자신의 소득수준에 따라 필요한 만큼 준비하도록 정부가 우대조치를 제공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보다 수십년 앞서 연금을 도입했던 주요국가가 지금 이같은 방향으로 바꾸려고 하는 중이다.

공적 연금을 무모하게 운영해 경제에 큰 부담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영국.남미 국가.일본이 그렇다.

그런데 이같은 경험을 애써 무시하면서 우리는 지금 공적연금으로 노후 소득의 상당부분을 보장하겠다는 '실현 불가능한' 제도를 확대하려고 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확대된 제도는 30년을 견디지 못하고 파탄을 맞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국민연금은 현 상태로도 2020년대 이후 우리 경제의 족쇄로 작용할 것으로 전망된다.

시간이 흐르면서 가입자 수가 늘지 않는 반면 연금 수급자가 급속히 늘기 때문에 보험료를 내는 근로자들은 세부담과 보험료 부담이 함께 늘어날 것이다.근로자들의 저축이 줄고 수급자들의 소비가 늘면서 저축률이 떨어지고 경제는 저성장 체제로 접어든다.

90년대 일본이 저성장 덫에 빠진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법개정으로 추가가입해야 할 사람들은 현 가입자의 주축인 도시 근로자에 비해 보험료를 체납하거나 미납할 경향이 크다.

이는 95년부터 적용된 농어촌 지역 가입자가 보여준 행동으로 짐작할 수 있다.

또 보험료를 체납하거나 미납하는 이들 중에는 소득이 낮아 노후 소득보장이 우려되는 이들이 다수 포함되는 반면 소득이 높은 이들은 소수에 불과할 것이다.

염려되는 것은 이같은 현상이 20여년 이상 계속되면서 2020년대 이후 한국경제의 저성장을 악화시킬 것이라는 점이다.

근로자들은 농어촌 거주자와 도시 자영업자에 대한 연금을 지원하기 위해 높은 보험료를 부담해야 하므로 저축률을 낮출 수밖에 없다.

이렇게 되면 '자녀세대가 부모세대보다 잘 산다' 는 상식이 통하지 않는 시대가 도래할 수 있다.

또한 후세대 근로자들의 지원금이 크게 포함된 연금의 성격 때문에 젊었을 때 돈 번 도시 자영업자들과 돈 못 번 다수의 자영업자들간의 소득 불평등이 은퇴기에 확대될 수 있다.

농어촌 거주자에게 이미 적용하고 있는데 도시 자영업자에게 적용하지 않으면 형평성에 문제가 있다고 할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한 발이 늪에 빠졌다고 다른 발과 두 팔까지 늪에 빠뜨릴 필요는 없다.

적용 확대가 불가피한 경우라도 소득분배를 악화시키고 체납과 미납을 늘릴 소득비례연금까지 도입할 이유가 없다.

21세기 한국 경제를 연금 (軟禁) 시킬 국민연금법 개정안은 또 하나의 '준비된 IMF' 에 다름 아니다.

배준호(한신대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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