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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인 뉴스<31> 육하원칙으로 본 여론조사의 허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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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같이 쏟아져 나오는 각종 여론조사. 동일 주제를 놓고 비슷한 시기에 실시된 것도 결과가 서로 다른 경우가 흔합니다. 도대체 어떤 조사를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는지, 또 어떤 기준으로 그것을 판단해야 할지 알 길이 없습니다. 기사 작성의 기본 요소, 즉 ‘육하원칙(5W1H)’이란 기준을 통해 여론조사의 신뢰 여부를 가려 보십시오. 신뢰도가 떨어지는 여론조사 사례를 중심으로 말씀드립니다.

누가(Who)
한나라-민주당 연구소가 정당 지지율 조사

모든 여론조사는 ‘조사 주체 편향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령, 특정 정당이 의뢰한 조사는 해당 정당에 유리한 방향으로 결과가 나오기 마련이다. 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와 민주당 민주정책연구원 조사 결과를 예로 들 수 있다. 동일 시기에 동일한 방법으로 실시된 정당 지지율이 상이하다 못해 거꾸로다. 6월 중순 여의도연구소 조사에선 한나라당 30.4%, 민주당 23.4%인 반면, 민주정책연구원 조사에선 한나라당 26.7%, 민주당 35.3%였다.

지난해 12월 처음으로 방송법 개정안 여론조사를 실시한 곳은 ‘미디어오늘·기자협회·PD연합회’였다. 편향된 질문을 통해 반대 여론이 높게 나타났을 것이란 점은 이들 조사 주체 면면을 보면 쉽게 예상할 수 있다. 이어서 “재벌과 권력이 방송을 장악할 수 있으므로 반대한다”는 항목을 통해 반대 응답을 유도한 여론조사의 실시 주체는 MBC였다. ‘대기업 신문사’대신 ‘재벌과권력’이란 표현을 사용해 부정적 이미지를 강조했다. 결국 어떤 기관 혹은 단체가 조사 주체인가를 통해 해당 조사의 신뢰성 여부를 가려낼 수 있다는 얘기다.

무엇을(What)
“미디어법 반대여론 감안해 처리” 교묘한 유도 질문

조사 주체에 유리한 방향으로 조사가 진행되는 모습은 특히 질문지에서 두드러진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가 지난달 1일 미디어법 처리와 관련된 조사를 실시했다. ‘반대 여론을 감안해 충분한 논의 후에 합의 처리해야’ 75.5%, ‘합의한 대로 6월 임시국회에서 표결 처리해야’ 24.5%였다. KSOI의 전형적인 질문 기법에 힘입은 왜곡된 조사 결과다.

어떤 법안이든 “반대 여론을 감안”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렇지 않으면 반대 여론을 무시하는 것인데 동의할 수 있겠는가. “충분한 논의” 역시 바람직하다. 이것을 선택하지 않으면 졸속 처리가 되는데 용납할 수 있겠는가. 결국 민주당 쪽에 유리한 방향으로 응답을 유도했다.

잘못된 질문을 통한 결과 왜곡은 한나라당도 예외가 아니다. 여의도연구소에선 미디어법 찬반을 “언론관계법 개정이 미디어산업 발전에 도움이 되는지에 대한 공감 여부”로 물은 적이 있다. 그래 놓고 공감한다는 응답(40.4%)이 공감하지 않는다는 응답(45.9%)과 비슷하다고 한다. 특정 내용을 물어놓고 미디어법 찬반이라고 둘러대는 것도 그렇고, 공감 응답이 여전히 적은데도 불구하고 비슷해졌다는 주장도 억지스럽다.

언제(When)
‘결혼 앞둔’ 사람 체포한 게 적절한가 물어보면

여론조사 결과는 조사 시점에 매우 민감하다. 가령,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스포츠 선수를 물을 경우 조사 시기에 따라 선두가 바뀔 수 있다. 어떤 시즌에 조사하느냐에 따라 다르고 또 특정 종목 선수의 활약 직후에 조사할 경우 순위가 달라진다.

‘국민 64% 사형제 유지’라는 조사 결과 역시 마찬가지다. 법무부가 의뢰한 조사에 따르면 사형제를 계속 두자는 의견이 64.1%, 반대 13.2%, 모르겠다 22.6%였다고 한다. 그러나 이 조사는 살인범 강호순 사건으로 인해 사형제 유지 의견이 득세하던 시점에 실시된 것이다. 한때 사형제 폐지 의견이 50%에 가깝게 나온 경우가 있었고, 사형제 대신 종신형제를 도입하자는 의견이 65%에 달한 경우도 있었다.

지난 3월 MBC가 코리아리서치에 의뢰해 ‘(광우병 보도) 담당 PD를 체포까지 한 것은 지나친 처사 72.3%’란 조사 결과를 내놓은 적이 있다. (결혼식을 앞둔 여성 PD를 조사는 할 수 있겠지만) “굳이 체포까지 할 필요가 있느냐”는 동정론과 “지나친 것 아니냐”는 검찰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고조된 틈을 이용했고, 그런 내용을 질문에 고스란히 포함해 유리한 응답을 얻어냈다.

어디서(Where)
공무원노조에게 ‘MB 메시지 필요한가’ 물어

‘공무원 82% MB 음성 격려 메시지 불필요’ ‘MB 공무원 격려 메시지 40%가 안 들었다’…. 일부 인터넷 매체의 기사 제목이다. 마치 우리나라 공무원 5명 중 4명이 대통령의 격려 메시지가 불필요하다고 답한 것처럼 보인다. 또한 5명 중 2명이 메시지를 듣지 않은 것처럼 받아들여질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전국민주공무원노조 조합원을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다. 노조 조합원 5명 중 4명이 불필요하다고 답했고, 5명 중 2명이 안 들었다는 것이다. 메시지를 받게 되면 삭제하겠다고 답한 사람이 50.6%인 것도 전체 공무원 중 절반이 아니라 조합원 중 절반이란 뜻이다.

‘중국인 72% 김정운 후계 지명 믿어’라는 연합뉴스 보도가 있었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의 자매지가 네티즌을 대상으로 김정운 후계 보도에 대한 여론조사를 실시한 것이다. 응답자 72%가 이 뉴스를 믿는다고 답했고, 믿지 않는다는 응답자는 11%에 불과했다고 보도했다. 중국인 중 일부에 불과한 네티즌을 대상으로 해놓고 마치 중국인 다수가 김정운 후계 지명을 믿는 것처럼 잘못 보도한 것이다. 중국인들 중 김정운이란 이름을 아는 사람이 과연 몇 %나 되겠는가.

어떻게(How)
오후 2시~9시에 중고생에게 집 전화로 조사를?

최근 이명박 대통령의 국정 수행 지지율이 40%를 넘었다는 조사 결과가 있었다. 그러나 일부 조사에선 여전히 20%대에 머무르고 있다고 한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어떤 조사 방법을 사용했느냐도 지지율 차이의 원인 중 하나다. 가령, 6월 2일 리서치앤리서치(R&R) 조사에선 37.7%였는데, 22일 KSOI 조사에선 25.3%, 24일 리얼미터 조사에선 20.7%였다. R&R은 유선전화, KSOI는 자동응답시스템(ARS), 리얼미터는 휴대전화 조사였다.

해마다 6월 하순이면 6·25 전쟁 발발 시기를 모르는 국민이나 학생이 적지 않다는 조사 결과가 나오곤 한다. 지난해 6월엔 행정안전부가 그런 조사 결과를 내놨다. ‘청소년 안보의식 혼란스럽다’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통해서 말이다. 6·25 전쟁 발발 연도를 모르는 중·고교생이 56.8%에 달한다고 했다. 그런데 중·고교생을 대상으로 유선전화, 즉 집전화 조사 방식이 과연 타당한가. 통상의 조사시간대인 오후 2시부터 9시까지 집에 있는 중·고교생이 우리나라 전체 중·고교생을 대표할 수 있을까. 그 시간엔 대다수 학생이 학교에 있거나 학원에서 공부를 하고 있을 텐데 말이다. 학교의 협조를 얻어 집단 면접하거나 우편이나 e-메일로 조사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본다.

왜(Why)
“종부세 강화” “대구시민 행복”… 당략 따른 맞춤형 결과

노동조합처럼 이해당사자가 실시하는 여론조사는 조사 및 보도 이유가 명백하다. 이들의 조사 결과는 늘 노조 집행부 입장을 대변하기 마련이다. 가령, KBS 노조의 경우 수신료를 올려야 한다는 입장이고, 부당한 외압에 대해선 단호히 대응해야 한다는 조사결과를 발표하곤 한다. 2006년 정연주 사장 연임 여부에 대해선 압도적으로 반대하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가 2008년엔 정 사장 해임에 대해 반대하는 조사 결과를 내놓은 적이 있다.

해마다 국정감사가 열리면 소위 ‘자뻑’ 여론조사가 등장한다. 가령, 지난해 국감의 경우 ‘서울 강남북 격차가 더욱 커질 것’ ‘종부세 강화해야’ ‘MB 등장 후 교육환경 나빠져’ 등의 조사결과가 발표됐다.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 의원들이 내놓은 조사 결과 제목이다. ‘사이버모욕죄 2배 이상 여론 지지’ ‘대구시민은 행복해’ 등은 여당인 한나라당 의원들이 실시한 것이다. 왜 그런 조사를 실시했는지에 대해 당사자인 의원에게 물어볼 필요도 없다. 이런 여론조사는 올해 국감에서도 어김없이 등장할 것이다.


[여론조사 보도에 대해 물어야할 20개 질문] 출처:전미여론조사협의회(NCPP)

1. 누가 조사를 실시했는가
2. 누가 비용을 지불했으며 조사 목적은 무엇인가
3. 조사 응답자 수는 몇 명인가
4. 조사 대상자를 어떻게 선정했는가
5. 모집단을 어떻게 규정하고 있으며 어떤 지역(집단)에서 구했는가
6. 조사 결과는 모든 응답자의 대답에 근거해 산출한 것인가
7. 응답률은 얼마인가
8. 언제 조사를 실시했는가
9. 어떤 조사 방법을 사용했는가
10. 인터넷이나 웹상의 여론조사는 믿을 만한가
11. 표집 오차는 무엇인가
12. 누가 선두인가
13. 조사 결과를 왜곡시키는 요인으로 또 어떤 것이 있는가
14. 어떤 질문을 사용했는가
15. 어떤 순서로 질문했는가
16. 여론조사를 가장한 ‘푸시폴(Push Poll)’은 어떻게 해야 하나
17. 동일 주제의 다른 조사가 있는가. 비슷한가. 다를 경우 왜 다른가
18. 모든 질문을 마쳤고 대답 또한 그럴듯하다. 그렇다면 조사가 정확한 것인가
19. 잠재적 문제에도 불구하고 조사 결과를 보도해야 하는가
20. 조사 결과가 보도할 만한 가치가 있는가
 
전미여론조사협의회(NCPP:National Council of Public Polls)
1969년에 설립된 미국 여론조사기관들의 협의체. 여론조사 전문가들이 준수해야 할 높은 수준의 규정이나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언론을 비롯해 정치인과 유권자 등 여론조사 관련 당사자들이 조사 방식과 조사 결과 해석방안을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데 주력하고 있는 단체다.

푸시폴(Push Poll)
불특정 다수에게 특정 목적을 지닌 조사에 참여토록 유도하는 것. 즉 질문 과정을 통해 경쟁자에 대한 나쁜 소문이나 공공연한 거짓을 널리 전파할 목적으로 실시되는 조사를 말한다. 일반 여론조사에 비해 실시되는 횟수가 많으며, 여론조사기관 대신 텔레마케팅 회사나 선거 캠페인 당사자들이 주로 실시한다.

신창운 여론조사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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