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기자 칼럼]재벌 해체뒤 과제 논의할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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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지난 1월 김대중 대통령당선자와 그룹 총수들이 재벌개혁 5대 기본과제에 합의한 이후 재무구조 개선약정.계열기업 퇴출.워크아웃.빅딜 등 재벌들이 환골탈태를 요구하는 일들이 끊임없이 벌어졌다.

그 대부분이 재벌의 핵심적 약점을 건드리는 것이라 '나라경제를 오늘날의 수렁에 빠뜨린 장본인들' 로선 아무런 항변도 못하고 그저 눈치나 보면서 입맛 맞추기에 바빴다.

지금까지의 재벌정책을 훑어보면 재벌의 경영관행을 개혁하라기보다 재벌구조를 해체하라는 메시지로 보인다.

우선 계열사간 부당내부거래를 규제하고 (2000년 3월까지) 계열사간 상호지급보증을 해소하게 되면 계열사들의 선단식 운영방식부터 불가능하게 된다.

또 경영투명성을 높이고 소액주주의 권한을 강화하며 (재무구조 개선약정을 통해) 채권금융기관이 소유.경영에 간여하게 되고 오너가 사재를 털어서라도 부실경영을 책임지게 되면 오너 독단경영도 어제의 일이 돼버릴 것이다.

나아가 워크아웃.빅딜로 핵심사업에 집중하고 부실비율을 내년말까지 2백% 이하로 줄이며, 또 계열사까지 반으로 줄이면 문어발식 확장은커녕 총수의 지금 재산 관리하기에도 여념이 없게 될 것이다.

즉 과다차입.오너독단.선단식 경영이 한국재벌의 특성이라면 그 모든 것을 포기하고 사실상 재벌식 소유.경영구조를 해체하라는 것이다.

계열사별 독립경영이 선단식 경영보다, 소유.경영이 분리된 것이 분리되지 않은 것보다, 전문화가 사업다각화보다 더 나은지의 여부를 따질 단계는 이미 지났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현재 시급한 것은 재벌을 해체한 뒤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속에서 가장 합당한 대기업들의 소유.경영구조가 어떤 것인지, 또 경제회생의 핵심과제인 수출.외자도입.경쟁력 제고 등을 재벌 대신 누가 어떻게 주도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다.

경제위기의 원인 치유책으로 추진되고 있는 재벌개혁이 '교각살우 (矯角殺牛)' 가 될까 걱정돼 하는 말이다.

김정수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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