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사고 사기’미심쩍다면 이렇게 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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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노원구에 사는 주부 김모(43)씨는 최근 차를 몰고 가다 황당한 경우를 당했다. 교차로를 지나 막 우회전을 하려는 순간 갑자기 한 중년 남성이 비명을 지르며 나자빠졌기 때문이다. 미처 우측을 확인 하지는 못했지만 도저히 사고가 날 상황은 아니었다.

이 남성은 “당신 차가 내 발을 밟고 지나갔다“며 고통스러워 했고 주위에 사람들이 몰려들자 김씨는 당황했다. 잠시 후 남성은 “뼈에 이상이 생긴 것 같은데 보험처리를 할꺼냐 합의금을 줄 것이냐“고 다그치기 시작했다. 김씨는 그 자리에서 합의금조로 요구한 30만원을 줬다. 하지만 이는 ‘사기극’이었다.

서울 구로경찰서는 지난 14일 교통사고를 가장해 5년여 동안 보험금을 챙긴 혐의로 문모(31)씨를 구속했다. 문씨는 지난 6월 25일 구로구 개봉동의 한 주차장에서 한 여성운전자의 차량에 몸을 부딪친 뒤 합의금 명목으로 30여만 원을 받아챙기는 등 모두 19차례에 걸쳐 1100여만 원을 가로챈 혐의를 받고 있다.

강북경찰서는 지난달 30일 주로 여성 운전자를 상대로 고의로 교통사고를 내고 보험금을 가로챈 혐의(사기)로 강모(30)씨 등 5명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강씨 등은 서행하는 차의 바퀴에 일부러 발을 집어넣거나 백미러에 팔을 부딪치고는 “사고가 나서 다쳤다”며 운전자 측에서 합의금 등을 타내는 수법 등으로 지난해 1~11월 43회에 걸쳐 약 2억5000만원을 가로챈 혐의다.

이들은 상대적으로 교통법규나 사고처리 등에 미숙하다고 판단된 여성 운전자들을 노렸다. 일부 여성은 ‘큰소리 치는’ 상대방에게 주눅이 들어 어찌할 바를 모른다. 강북경찰서 지능계 김장수 반장은 “작정하고 교통사고 사기를 치는 사람은 당해낼 재간이 없다. 일단 의심된다면 침착하게 경찰서에 신고해 정확한 사고 경위를 조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내가 정말 잘못했나’라고 생각하는 동안 사기꾼은 운전자를 막무가내로 몰아붙인다. 김 반장은 “신고를 한 뒤 지구대에서 경찰이 나오기 전에 ‘됐다. 그냥 가겠다’ ‘아무렇지도 않다’라며 자리를 뜬다면 사기일 가능성이 크다”라고 말했다. 그는 “‘지금은 괜찮은데 혹시 모르니 연락처를 달라’고 하는 사람도 주의 깊게 봐야 한다. 며칠 뒤 ‘몸이 아파 입원했으니 치료비를 보내라’고 한다면 대부분 이들과 연계된 병원 등에 가서 거짓 진단서를 떼는 경우가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운전자 중 대부분은 신고를 꺼린다고 한다. 시간이 없거나 귀찮기 때문. 특히 경미한 교통법규를 어겼다면 더욱 그렇다. 범칙금 통고 처분을 받을 수도 있다. 운전자 신고로 온 경찰이 사고 경위 조사를 끝낸 후 차량의 신호 위반이나 지정차로 통행위반 등으로 범칙금 통고 처분을 내릴 수 있다.

그래도 ‘신고는 필수’라는 것이 김 반장의 말이다. 그는 “동일 인물이 한 달에 한번 꼴로 사고났다는 자료가 등록되면 사기범을 잡는데 훨씬 수월할 것”이라며 “교통사고 사기를 줄이기 위해선 조금이라도 의심되면 신고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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