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스크린쿼터 점진적 철폐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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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영화인들이 한국영화 제작의 일시중단을 선언하면서까지 스크린 쿼터제 (국산영화상영 의무비율) '사수 (死守)' 에 나섰다.

최근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투자협정 제3차 실무협상에 참석하고 돌아온 정부 관계자들로부터 미국측의 강경한 분위기와 함께 "현 상황으로는 쿼터제 존속을 장담할 수 없다" 는 얘기를 전해 듣고 반대시위와 농성 등 행동에 들어간 것이다.

스크린 쿼터제가 한국영화계를 지탱해주고 있는 '마지막 보루' 라는 점에서 우리 영화인들의 반발은 이해가 간다.

그러나 스크린 쿼터제는 연내 체결키로 합의된 한.미투자협정의 일부분에 불과하다.

더구나 이달 중순 4차실무회담이 예정돼 있다.

그럼에도 '한국영화 죽이기 음모규탄' '미국의 문화패권주의' '한국영화의 장례식' 등으로 상대와 우리 당국을 격하게 몰아붙이고 나서는 것은 현명치 못하며, 또 최종협상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미국 입장에서 영화는 하나의 '상품' 이다.

따라서 국산영화를 의무적으로 일정비율 상영케 한 스크린 쿼터는 차별적 요소다.

이에 반해 영화는 단순한 상품이 아니고 가치관이 실린 '문화' 라는 것이 한국측 입장이다.

따라서 시장원리를 넘어 예외조항으로 인정해 달라는 것이다.

스크린 쿼터제 말고도 담배제조회사의 국산 잎담배 수매의무, 상품교역 및 외환거래에서 세이프가드 (긴급구제발동) 조항, 내국민 대우의 유보분야와 범위 등 '넘어야 할 산' 은 한 둘이 아니다.

그럴수록 투자협정 체결에는 상호신뢰에 입각해 차분하고 인내심있는 접근이 필요하다.

현재 스크린 쿼터 적용일수는 1백46일로 돼 있지만 40일 정도는 법테두리 안에서 단축돼 1백6일이 실제 시행되고 있다.

이를 일시 폐지할 경우 국내 영화산업은 설 땅이 없다.

따라서 충격을 완화하고 국내 영화산업을 육성해가며 점진적 철폐로 가는 것이 순리라고 본다.

4차 실무협상에서 현재보다 더 줄여 쿼터일수를 1백일 이내로 축소하는 절충의 가능성도 전혀 없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우리 영화산업계도 언제까지 쿼터제라는 예외적인 보호막 속에 안주할 수는 없다.

최근 우수 국산영화에 관객이 몰리고, 유수 영화인들이 TV출연을 마다하고 영화에만 전념하는 등 새로운 가능성을 보이고 있다.

품질과 상품성 높은 영화를 만들어 보호할 가치가 있는 영화산업의 기반을 속히 다져야 한다.

당면한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외국인 직접투자가 무엇보다 절실하고, 투자유치를 위해 정부가 한.미투자협정의 체결을 서두르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다고 불평등 협정으로 흘러서는 안된다.

앞으로 있을 막바지 절충과정에서 고도의 협상력을 발휘해 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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