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아라리난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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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제6장 두행상

안동 신시장 초입에 있는 도매상에 고추를 처분한 한씨네 일행은 장날에 맞추어 상주에 당도했다.

상주장 역시 여느 읍내장처럼 2일과 7일에 섰다.

장마당은 옛날부터 풍물거리로 불렸던 남성동 한길이었다.

서쪽인 보험회사 건물에서부터 동쪽인 신협건물 사이로 난 한길 모두가 장마당인 상주장은 가근방에 있는 어느 장시보다 엄청난 규모로 소문나 있었다.

물론 무시때도 상설시장이 열렸기 때문에 장옥들에는 물화들이 가득가득 들어차 있었다.

신협건물에서 왼쪽으로 뚫린 철물점거리에는 마늘 중개지인 의성 마늘장의 규모를 따르지는 못하지만, 초장부터 제법 북적거리는 마늘장도 열려 이채로웠다.

상주는 주변의 산재한 넓은 농경지가 많았기 때문에 예부터 곡물생산지로 명성을 갖고 있었다.

지형이 그러했으므로 과일농사도 해마다 풍년이었다.

상주둥시로 불리는 단감 생산도 상주 특산물의 반열에 들었다.

진영의 단감, 청도의 반시, 상주의 둥시는 경상도 지방에서 손꼽아주는 감이었다.

모두가 단감으로 통칭해도 무방한 것이지만, 지방마다 특색을 유지하기 위해 반시니 단감이니 해서 달리 부르고 있을 뿐이었다.

새벽같이 장마당에 당도한 한씨네는 철물점거리에 있는 남천식당에서 해장국으로 아침요기를 때웠다.

겉보기에는 초라했지만, 행상꾼들 사이에는 진작부터 소문난 식당이어서 역시 새벽부터 북적거렸다.

곡물이 풍성한 고장답게 먹거리들도 다른 읍내장보다 싼 편이었다.

보험회사 건물 앞쪽 거리에 자리를 잡고 좌판은 승희에게 맡겼다.

세 사람은 우선 동서로 길게 뻗은 장거리를 몇 바퀴 돌면서 기웃거렸다.

상주둥시를 취급하는 도매상이나 중개상을 물색하기 위해서였다.

5월 하순부터 시작되는 마늘 출하가 한물이 끝나갈 조짐을 보일 무렵이면, 상주둥시는 첫물이 출하될 시기였다.

마침 진영과 청도로 몰린 도매상들이 상주둥시를 노리는 입질이 왕성한 편은 아닌 게 다행이었다.

장터 초입에 있는 도매상을 유심히 관찰하였으나 도매상들이 들락거리는 낌새는 아니었다.

그러나 도매상 주인이 사십대의 여자라는 것이 찜찜했다.

흥정 당사자가 별미쩍고 무작스런 남자라면 억죽박죽 오가는 수작에 다소의 실수가 있고 입담이 험악했더라도 악수 한번 나누고 나면 뒤탈이 없고 화해하기도 수월했다.

그러나 여자일 경우는, 한번 불러 버린 금어치는 좀처럼 고치려 들지 않을 뿐 아니라, 걸핏하면 토라지고 원망하기를 버릇해서 흥정상대로선 까다로운 상대였다.

그러나 마침 행중에는 태호가 있었다.

그가 여자를 다루는 솜씨는 유별났다.

유별난 솜씨라 했지만 알고 보면 별 것 아니었다.

흥정상대가 여자일 경우, 그가 구사하는 요령은 한마디로 무지막지한 인내심이었다.

무작정 참으면서 반죽 좋게 살려달라며 끝까지 매달리는 것이었다.

염두에 두어야 할 금기도 많았다.

설혹 칠십 늙은이라 해서 할머니라는 존대로 불렀다간 잘 나가던 당장 흥정도 깨지고 말았다.

아무리 못난 박색이라 할지라도 성형수술을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묻는 것도 아니었다.

쌍꺼풀 수술을 한 것이 확연하게 드러나더라도 의구심을 가지고 눈가장자리를 유심히 바라보는 것도 삼가야 할 일이었다.

육덕이 과도하여 몸뚱이가 뒤룩뒤룩하더라도 알맞은 몸매를 가졌다고 부추겨야 했고, 심지어 배가 나온 여자여서 비윗장이 뒤틀린다 해도 꾹 참고 거기에다 시선을 맞추어선 안될 일이었다.

어쨌든 몸매에 결정적인 허물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들춰내는 말을 입초에 올렸다간 흥정은 깨진다는 각오가 필요했다.

그러나 칭송도 요령있게 해야 했다.

대중없이 칭송이 자자했다간 눈치가 빨라서 당장 비꼬고 있다는 것을 냉큼 알아차리고 안면을 싹 바꾸거나 모질게 쏘아붙이고 가게 문을 닫아버리기 때문이었다.

그런 몇 가지 금기만 염두에 두고 조심하면 오히려 남자보다 흥정이 수월할 때가 많다는 것을 태호는 이미 터득하고 있었다.

도매상의 사십대 주인은 그와 같은 허물을 조금씩 골고루 갖추고 있었기에 태호를 앞장 세운 것이었다.

(김주영 대하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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