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곳곳 이상기류]TK 딴살림 차리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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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한나라당이 'TK의 반란' 으로 흔들리고 있다.

30일 오후 3시간 가까이 진행된 대구.경북지역 의원들의 오찬회동이 진원. 지난주 허주 (虛舟.金潤煥 전부총재 아호) 의 부총재직 거부 사태로 표면화한 이회창 총재에 대한 반감이 급기야 집단화한 것이다.

'유보' 란 표현을 쓰긴 했지만 안택수 (安澤秀) 신임 대변인 등 허주계로 분류되지 않은 일부를 제외하곤 상당수가 당직을 거부하는 쪽에 가담했다.

당직을 맡기 위한 조건으로 'TK의 당 발전 기여도에 상응하는 당 체제로의 조속한 정비' 등을 내걸었다.

李총재로선 받아들이기 어려운 내용들이다.

새 지도부와 비 (非) TK그룹 일부에선 "李총재의 굴복을 요구하는 것" 이라는 해석과 함께 황당함과 불쾌감이 동시에 터져나왔다.

李총재를 포함한 당직자들은 임명장 수여가 있을 1일 오전까지 이들에 대한 개별 설득에 나설 참이지만 완강한 기류가 해소되리란 기대는 크게 하지 않는 분위기다.

TK의 움직임이 일시적인 갈등 표출 차원을 넘어선 것은 분명하다.

다음 행보를 위한 계산된 결정이라는 관측도 무성하다.

'당내 2인자 예우 묵살' 을 이유로 한 허주의 부총재단 참여 거부 자체가 판을 깨기 위한 수순이었다는 해석이다.

모임을 주도한 한 중진은 李총재를 신랄하게 비판하면서 "당직 소외라는 작은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고 단언했다.

주목되는 대목은 이와 때맞춰 그동안 물밑에서 오가던 정계개편론이 불거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정치권에서는 이미 허주계보를 포함시킨, 상당히 그럴싸한 여권 재편의 그림이 그려져왔다.

국민회의가 구상하는 민주대연합과 병행해 영남의 한 축인 TK가 이른바 전국정당의 한자리를 이룰 것이라는 관측이 그중 하나다.

물론 "내각제를 추구하는 JP와는 몰라도…" 라는 반론이 없지는 않지만 그런대로 구도에 오르던 내용. 실제로 김중권 (金重權) 청와대 비서실장은 최근 경주를 방문한 자리에서 "내년 1월께 정치권에서 동서화합의 모양이 갖춰지기 시작할 것" 이라고 밝힌 바 있고, 허주도 사석에서 "두세달이면 그러한 구도가 가능하다" 고 견해를 피력한 적이 있다.

지난달 29일 전두환 (全斗煥) 전 대통령의 목포지역 법회 (法會) 참석과 맞물려 "모종의 작업이 깊숙이 진행중" 이라는 추측이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더해 이한동 (李漢東) 전 부총재를 정점으로 한 민정계의 일탈 가능성까지 운위되는 분위기다.

李총재측과 거리를 둬온 李전부총재측은 특히 李총재가 전국위원회에서 "중산층과 소외계층을 대변하겠다" 고 선언한데 대해 불만을 집중적으로 표출하고 있다.

"이념이 맞지 않는다면 언제든 당을 떠날 명분이 갖춰진 것 아니냐" 는 얘기를 한다.

그러나 이런 움직임이 실제 탈당 등의 행동으로 옮겨지리라고 보기는 어렵다.

이들 모두 자신들이 나서서 정계개편의 단초를 만든다는 생각은 갖고 있지 않은 상태다.

"당을 지킨다" 는 공식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

때문에 국민회의와 자민련간 내각제 개헌 논의가 벌어지기 시작할 내년봄께 정계개편의 연기가 피어오를 것으로 내다보면서 일단 당내에 머무르며 상황변화를 주시한다는 입장이라는 편이 타당한 듯싶다.

어쨌거나 시기.규모만 문제일 뿐 한나라당의 갈라서기는 불가피한 게 아니냐는 전망이 강해지고 있다.

李총재측도 군살을 빼고 개혁 이미지의 새 정당으로 거듭난다는 각오는 이미 세워둔 상태다.

김석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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