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주유소·찜질방·병원 … 경매 물건은 ‘경제 가늠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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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최근 두드러진 특징은 찜질방·주유소·유흥시설 등 사업용 부동산이 경매시장에 얼굴을 많이 내미는 것이다. 지난해 9월 이후 글로벌 금융 위기에 따른 그림자다. 이런 물건이 많이 나오는 데도 낙찰률은 무척 낮다. 투자심리가 제대로 살아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다. 사업용 부동산 물건이 많아진 것은 그만큼 국내 산업활동이 많이 위축됐다는 의미다. 싼 경매 물건이 많은 데도 쉽게 팔리지 않는다는 것은 경제 회복 속도가 더디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침체의 흔적…사업용 물건 급증=요즘 경매시장에 자주 나오는 물건은 상가나 공장 같은 사업용 부동산이다. 경기에 가장 민감한 상품이다. 경매정보업체 지지옥션에 따르면 지난달 경매에 나온 전국의 상업시설은 5194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354건 늘었다. 경매 처분된 물건이 입찰장으로 넘어오는 데 6~8개월 정도 걸린다. 이를 감안하면 실물경기가 최악이었던 지난해 말과 올 초 대출 이자 등을 견디지 못해 입찰에 부쳐진 물건이 많다는 뜻이다.

공장 물건도 늘었다. 실물경기 침체로 제조업체가 잇따라 도산했기 때문이다. 지난달 경매에 부쳐진 전국의 공장 건물은 534곳으로 지난해 7월(325개)보다 64%나 늘었다. 상업시설과 공장이 대거 경매 처분됐던 지난해 말과 올 초(지난해 11월~올 2월) 코스피지수가 1000~1100선으로 곤두박질치면서 자금난에 시달린 기업이 많았다는 뜻이다. 지지옥션 강은 팀장은 “수십억원에 이르는 고가 부동산이 경매에 많이 나오는 것은 그만큼 불황의 골이 깊었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찜질방·사우나·목욕탕 등도 두드러지게 증가했다. 이들 목욕시설이 지난달 경매로 넘어온 물건은 130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0% 늘었다. 특징은 기름을 많이 쓰는 시설. 지난해의 고유가 후유증을 겪고 있는 셈이다.

◆교회·병원까지 불똥= 안마시술소·단란주점·노래방 등 유흥시설의 경매물건도 부쩍 늘었다. 개인들의 유흥비 지출이 줄고 정부의 성매매 단속이 강화되면서 영업난을 견디지 못하고 쓰러진 경우가 많다.

입찰에 부쳐지는 병원이 많아진 것도 경기침체를 암시하는 지표로 삼을 만하다. 지난해 1~7월 47곳이었던 병원 경매 물건이 올해 같은 기간에는 121곳에 달했다. 교회 등 종교시설도 경매시장에서 더 이상 낯설지 않은 물건이다. 지난달에만 17곳이 경매시장에 나왔다. 높아진 물가와 교육비 부담 등으로 팍팍해진 살림살이 탓에 헌금이 많이 줄었던 것도 한 요인으로 풀이된다.

◆낙찰률은 낮아=최근 경제 회복 기대감에 기업 체감경기가 호전되고 주식과 부동산 등 자산가격이 오르면서 소비 심리가 나아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사업용 경매시장에는 아직 온기가 없다. 사려는 사람이 적어 2~3차례 유찰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상업시설의 7월 낙찰률은 20%로 지난해와 비슷하다.

매각되더라도 낙찰가율(감정가 대비 낙찰가 비율)이 50%를 밑도는 경우가 많다.

이런 현실을 감안하면 경매 물건은 계속 늘고 유찰 또는 저가 낙찰 현상은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투자 심리가 제대로 살아나지 않은 데다 경매 물건의 값도 워낙 높기 때문이다. 건국대 조주현 교수는 “경제위기의 삭풍은 많이 잦아들었지만 한국 경제가 침체의 긴 터널에서 빠져나오기까지 다소 시간이 걸릴 수 있다”고 말했다.

조철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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