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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웅의 문단 뒤안길-1970년대 <27>문인들의 연극공연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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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7호 10면

1972년 한국일보 소극장에서 개막한 문인연극 ‘양반전’에 출연한 배우와 제작진. 윗줄 왼쪽 넷째부터 유현종, 조연현, 황순원, 최정희, 한 사람 건너 차범석, 김수명, 정현종. 현대문학 제공

1970년대 초 월간문학지 ‘현대문학’이 문인극 공연 계획을 세운 것은 문학단체의 의례적 행사로 그치곤 했던 종래의 문인극과는 달리 다분히 문학 독자를 겨냥한 구상이었다. 문학에 대한 대중적 관심이 높아지고 문학 독자층이 점차 확대되는 기미를 보이기 시작하던 무렵이었다. 남달리 연극을 좋아했던 편집장 김수명(시인 김수영의 여동생)과 사원 김국태가 중심축이었다. 두어 차례 직접 문인극에 출연한 경험을 가졌던 조연현 주간의 동의를 얻어내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우선 연극을 좋아하고 연극에 관심이 많은 문인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필요했다. 두 사람은 ‘현대문학’에 자주 드나들고 조연현과도 가까운 유현종과 구체적인 방법을 의논했다. 유현종은 연극에 대해 꽤 많은 지식과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유현종은 단 한 차례의 공연으로 끝낼 것이 아니라면 우선 기성극단 성격의 ‘문인극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유현종의 조언에 따라 단원을 모으기 시작하자 순식간에 열대여섯 문인들이 참여했다.

‘문인극회’의 창립공연 준비작업은 빠른 속도로 진행됐다. 한창 대중적 인기가 치솟기 시작한 최인호가 희곡을 쓰고, 연출은 유현종이 맡기로 결정했다. 이제 문제는 공연에 필요한 경비였다. 유현종과 김수명, 김국태 세 사람은 머리를 맞대고 ‘수지계산서’를 만들어 조연현 주간에게 보였다. 대충 훑어본 조연현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현대문학’의 운영에 관한 일체가 자신에게 맡겨졌다고는 하지만 잡지 외의 일에 적잖은 돈을 써야 하는 데 대해 오너인 ‘대한교과서’ 측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조연현은 적자를 면할 길이 있느냐고 걱정스럽게 물었다. 유현종은 큰 흑자를 내기야 어렵겠지만 손해를 보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 관련 단체에서 후원금도 얻고 입장료 수입만 계획대로 챙길 수 있다면 경비를 빼고도 얼마간 남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조연현은 머리를 갸웃거리면서도 승낙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미 최인호의 희곡 ‘달리는 바보들’은 완성됐고, 등장인물 세 사람의 배역도 김국태·왕수영·송숙영으로 결정돼 있었다. 조명·소품·효과 등 뒤치다꺼리는 김원일·양문길 등이 맡기로 했다.

두어 달 동안의 연습기간을 거쳐 ‘문인극회’의 창립공연은 71년 6월 명동의 ‘카페 테아트르’ 소극장 무대에 올려졌다. 어설픈 대목도 있었고 실수도 곧잘 튀어나왔지만 참여한 대부분의 문인들이 첫 경험이라는 점에서 본다면 대체로 무난한 공연이었다. 관객들도 공연 그 자체에는 별로 기대를 걸지 않았던 탓인지 그저 글로만 읽던 아마추어 문인배우들의 미숙한 연기가 오히려 흥미롭고 신기하다는 정도의 반응이었다.
하지만 ‘흥행’의 측면에서 본다면 유현종의 장담과는 달리 형편없는 적자였다.

소요된 비용의 3분의 1도 건지지 못한 것이다. 조연현은 후회막급이었으나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다시는 이런 무모한 모험을 하지 말자고 스스로 다짐했는데 두어 달 후 유현종 등 ‘문인극회’ 관계자들이 제2회 공연 계획서를 들이밀었을 때 조연현은 또 승낙하고 말았다. 후에 조연현은 ‘무엇에 홀리기라도 한 듯 얼떨결에 동의했다’고 술회했다.

고전을 패러디한 유현종의 ‘양반전’을 올리기로 했고, 출연진도 이번에는 최인호·오혜령·김국태·김혜숙 등 10여 명에 달했다. 특이한 것은, 비록 한두 마디 대사만 외고 퇴장하는 단역이지만 황순원·최정희·박영준 등 세 명의 중진 소설가가 출연키로 했다는 점이었다. 72년 2월 한국일보 소극장에서 연 사흘에 걸쳐 공연된 문인극 ‘양반전’은 뜻밖에도 대성황이었다. 코믹하게 만들어져 재미있었을 뿐만 아니라, 무대에서나마 황순원·최인호 등 인기 작가들을 보기 위해 극장을 찾은 관객이 많았던 것이다. 그러나 입장료가 워낙 보잘것없었고, 무료 관객이 많았던 탓에 2회 공연도 적자를 면할 길은 없었다.

세 번째 공연으로 6년 뒤인 78년 5월 윤조병 작 ‘술집과 한강’을 김국태 연출로 5일 동안 ‘실험극장’ 무대에 올렸으나 독자나 관객의 뜨거운 반응과는 달리 역시 ‘현대문학’에 상당한 손실을 안기고 막을 내려야 했다. 일찍부터 연극평론가 김정옥은 ‘문인극은 기성 연극의 아류여서는 안 되고 문인극다운 특수성을 보여줘야 한다’고 조언했으나 문인극의 한계를 극복하기는 쉽지 않았던 것이다.


중앙일보 문화부장·논설위원 등을 역임했다. 문학 평론가로 추리소설도 여럿 냈다. 1960년대 문단 얘기를 다룬 산문집 『글동네에서 생긴 일』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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