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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경꾼과 광화문광장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127호 34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네덜란드 남부 마스트리흐트 마을 근처의 천연 석회동굴에 암스테르담 국립박물관이 괴링과 히틀러의 눈을 피해 숨겨놓은 보물창고가 있었다. 전쟁 동안에도 조국의 보물인 이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는 건 그들에겐 커다란 위안이고 보이지 않는 선물이었다. 빛과 어둠의 달인(達人) 렘브란트가 그린 대표작 ‘야경꾼’이었다.

원제목 ‘프란스 반닝 코크 대장 부대의 반격’이란 이 작품은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빛줄기가 어두워져 마치 민간 자경대가 밤에 습격하는 모습으로 보이면서 ‘야경꾼’이라는 엉터리 제목이 붙었다. 렘브란트는 이 작품에서 빛을 통한 형태의 단순 표현을 벗어나 눈에 보이는 빛을 효율적으로 사용해 물질의 표면 뒤에 숨어 있는 본질을 밝힐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등장인물 각자의 독특한 개성과 의미를 담기 위해 다양한 표현방식과 구도, 빛의 정확한 분배를 통해 미술 작품을 새로운 차원으로 올려놓은 것이다. 대상의 일부를 어둠 속에 밀어버린 작가의 무한한 상상력과 표현기법 덕택이었다.

오랜만에 광화문 거리를 걸었다. 시청 앞 세실극장을 지나 사직동 집으로 가는 길에 열려진 광장을 느끼고 싶어서다. 유유자적 산책보다 새로운 공간에 적응하는 관찰자의 눈으로 접근하리라 마음먹었다.

새로운 기대와 축제의 흥분이 채 가시지 않은 광장의 모습은 아직 엉거주춤! 공사 기간 내내 가려진 펜스 속에서 무슨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궁금했던 터라 장막이 걷히던 어느 날 아침, 불쑥 모습을 드러낸 광장을 지나며 화들짝 당황해하던 기억이 문득 떠올랐다. 반짝반짝 빛나는 새것에 대한 낯섦이었으리라.

역사의 흔적이 다양하게 담긴 육조거리 광화문이 ‘빛을 널리 번성케 하라’는 왕의 뜻을 실천하고자 시민의 품으로 돌아오던 날, 첫 번째 새 빛들이 행사는 전시된 사진 속 장면처럼 현대로 올수록 복잡해지고 다양해진 우리들의 모습을 닮았었다. 광장이 열리자마자 다녀간 시민들은 30만 명. 조선시대 최고의 소통의 광장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손색이 없는 숫자였다. 하지만 그 모습은 마치 렘브란트 그림에 나오는 시위대의 습격자 같지 않은지 되돌아봐야 할 것 같다.

위풍당당한 이순신 장군 동상은 분수에 둘러싸여 아이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물놀이 시설이 되었고, 해치마당은 난간대에 포위돼 자유로운 상상을 가두는 듯 안타까웠다.

세종대왕 동상 후면부에 위치할 북방 6진 개척을 의미한다는 6개의 열주는 어떤 형태로 세워질까 기대되기도 했다. 최대 하이라이트는 단연 플라워카펫이었는데 말 그대로 꽃이 있는 카펫이었다. 단청문양을 응용하여 만들어 화려하기 그지없지만 여의두문(如意頭紋)의 평안함을 보여주기보다는 저 어여쁜 꽃들이 짓밟히지는 않을까 노심초사 걱정의 소리가 더 강한 듯했다. 이외에도 역사 물길과 꽃잎 의자, 차량 사고를 방지하는 광택 나는 볼라드, 거기에 서 있는 경찰관들…. 광장의 의미가 무색할 만큼 빈 공간이 없었다. 빈틈이 생길라 꽉꽉 채우기만 했다는 느낌을 떨칠 수 없었다. 무엇이 두려웠을까. 주관식 문제를 던지고 상상을 해야 하는데 글자 가득한 사지선다형 객관식 문제지를 받아 든 기분이었다. 궁궐 앞마당, 정부 종합청사, 주한 미 대사관 등 시대를 거슬러 권력의 상징으로 사용되던 광화문광장은 이제 시민들이 자유롭게 상상하고 소통하는 장소가 돼야 하지 않을까.

미래를 준비하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보이지 않는 상상력의 공간, 그 본질을 파악하고 창조하게 할 도구, 즉 ‘여백’인 것이다. 그 풍부한 여백을 위해 과감하게 물질을 어둠 속에 밀어버림으로써 새로운 생각을 불러일으키게 할 무한한 자유로움을 주어야 하지 않을까. 빛줄기가 흐려져 우리가 또 다른 모습의 야경꾼이 되지 않도록 일상으로부터 시작해 주변 세상을 해석하고 그것을 바라보는 새로운 방식의 디자인이 필요한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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