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숙자’의 유언대로 상속은 불가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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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브스코리아6월 6일 국내에서 가장 큰 설렁탕 체인점을 운영하는 장숙자 진성식품 회장의 유언이 공개되면서 연일 화제다. 진성식품 주식을 포함한 장숙자 회장 명의의 모든 부동산을 가족이 아닌 고은성에게 물려주기로 했기 때문이다.

TV 드라마 <찬란한 유산>과 현실

더욱 놀라운 것은 장 회장에게는 오래전 사고로 죽은 아들 가족이 있다. 며느리 오영란과 손자 선우환, 손녀 선우정이 그들. 하지만 장 회장은 초심을 잃지 않기 위해 거리에서 만두를 팔던 중 잠시 기억을 잃고 헤맸을 때 그를 일주일간 살펴준 고은성을 생명의 은인으로 생각했다.

게다가 철없이 ‘할머니가 돌아가시면 진성식품을 팔아서 명품 백화점을 짓겠다’는 손자보다 반듯한 성심에 부지런한 고은성이 더욱 믿음직했다. 이는 시청률 40%대를 넘보며 최고의 인기를 자랑하는 SBS 주말 드라마 <찬란한 유산> 속 얘기다.

그런데 실제 자신의 전 재산을 직계자손이 아닌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타인에게 물려주는 게 법적으로 가능한 일일까. 고은성이 반, 유가족이 반 결론부터 말하면 ‘반’만 가능하다. TV 드라마에서는 사치를 일삼고 회사 경영에 관심이 없는 손자와 며느리를 바라보는 시각이 다소 부정적으로 그려진다.

하지만 법정상속인의 상속권은 고유 권리다. 법률로도 그 권리를 제한할 수 없다. 심지어 피상속인(망자)의 유언으로도 그 권리의 전부를 제약할 수 없다. 이렇게 상속인은 최소한 법정상속 지분의 50%까지 상속권을 보호 받을 수 있는데 이를 ‘유류분’이라고 한다.

민법은 사망 이후 가족이 아닌 타인에게 재산을 주는 경우에도 유족이 유산의 일정액을 받을 수 있게 ‘유류분’을 남겨두도록 규정한다. 직계비속은 법정상속분의 50%를 받을 수 있다. 실제로 드라마 속 장숙자 회장의 유산은 고은성이 50%, 유가족인 오영란 가족이 50%를 상속 받게 된다.

드라마처럼 가족이 빈털터리가 됐다며 울고불고 할 일은 현실 세계에서는 법적으로 불가능하다. 3자는 상속세 부담 크다 <찬란한 유산>은 재산의 분할과 복잡한 인간관계가 어울리면서 흡입력 있게 스토리가 진행된다. 거기에 현실적으로 적용 가능한 법률적인 부분까지 반영돼 시청자에게 그 재미를 더하고 있다.

하지만 세금적인 측면은 크게 고려하지 않은 듯하다. 장숙자 회장이 세금적인 측면을 고려했다면 고은성에게 기업을 물려주는 것에 대해서 한 번 더 고려했을지도 모른다. 가족이 아닌 제3자에게 가업을 물려줄 경우 상속세 부담이 커지기 때문이다. 장숙자 회장의 사망 후 납부하는 상속세는 상당히 부담스럽다.

일단 공제되는 금액이 적다. 피상속인(망자)의 배우자가 살아 있다면 배우자 상속공제로 최대 30억 원까지 공제를 받을 수 있고, 다른 공제까지 합산하면 최대 42억 원(배우자상속공제 : 30억 원, 일괄공제 : 5억 원, 금융재산상속공제 : 2억 원, 1가구1주택상속공제 : 5억 원)까지 공제를 받을 수 있다.

반면 장 회장같이 배우자가 없을 경우에는 배우자상속공제를 받을 수 없기 때문에 최대 12억 원(일괄공제 : 5억 원, 금융재산상속공제 : 2억 원, 1가구1주택상속공제 : 5억 원)까지만 공제 받을 수 있다. 상속세의 세율도 부담스럽다. 과세표준을 기준으로 30억 원을 초과하면 최고 세율로 적용하므로 50%의 세율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물론 드라마 줄거리 상으로는 장 회장의 정확한 재산을 확인할 수 없다. 하지만 상속세 예상액을 추정하기 위해서 장 회장의 상속재산 규모를 가정해 보자. 진성식품 장 회장이 보유한 주택이 30억 원, 진성식품의 주식가치가 300억 원 그리고 다른 재산은 없다고 가정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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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속’을 소재로 다룬 드라마 〈찬란한 유산〉이 인기를 끌고 있다.

이 정도 규모에서 상속이 진행된다면 상속세 예상액은 139억 원 정도다. 물론 상속재산의 규모가 더 커진다면 최고 세율이 적용되기 때문에 상속재산의 50% 가깝게 상속세를 납부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진성식품의 경영권을 상속인 중 한 사람에게 넘기면 상속세를 대폭 줄일 수 있다. 가업상속공제를 활용하는 것이다. 피상속인이 20년 이상 기업을 경영한 상황에서 상속이 개시됐다면 가업상속재산의 40%를 최대 100억 원까지 공제할 수 있다.

앞에서 설정한 가정, 즉 상속재산가액(주택 : 30억 원, 회사 주식 : 300억 원)이 그대로 유지된다면 100억 원을 가업상속공제 명목으로 상속재산에서 공제할 수 있다. 이를 반영해 상속세 예상액을 다시 계산하면 93억 원으로 줄게 된다. 가업상속공제를 받으면 46억 원에 가까운 세금을 줄일 수 있다.

가업상속공제를 받기 위해서는 요건이 필요하다. 상속인 중 한 사람에게 그 기업을 물려줘야 한다. 그리고 상속세 신고일부터 2년 이내에 그 상속인이 대표이사에 취임해야만 가능하다. 현실적으로 손자인 선우환이 진성식품을 물려받아야 큰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진성식품 경영권은 오리무중 상속인이 아닌 고은성에게 진성식품의 경영권을 물려주면 46억 원 정도의 상속세를 더 납부해야 한다. 세금 문제 외에 다른 문제도 발생한다. 고은성은 적대적인 상속인들로부터 경영권을 지켜내기 어려워진다. 다른 상속인들이 유류분을 청구하면 고은성의 진성식품 지분은 50%로 줄게 될 것이다. 그리고 상속세의 절반을 고은성 본인의 자금으로 납부해야 하는데 납부할 재원(현금)이 없다면 상속 받은 재산으로 납부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고은성의 지분은 더욱 줄게 든다.

유언으로 고은성에게 모든 회사의 지분을 남겨도 상속인이 유류분을 청구하면 지분은 50%로 줄게 되고 여기에 다시 50% 세율로 상속세를 납부하면 지분율은 25% 정도로 떨어지게 된다. 세금은 세금대로 내야 하고 경영권도 지키기 어려워진다.
반대로 손자 선우환이 대표가 되는 게 전적으로 유리한 것은 아니다. 드라마처럼 장 회장이 사망한 뒤 고은성과 오영란 가족이 주식을 절반씩 나눈다면 유가족이 경영권 다툼을 벌일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문제가 하나 더 있다. 고은성이 상속세 납부가 고민이라면 유가족은 고은성이 등장하기 전 이미 대구와 경기 김포 땅을 상속 받았다. 이 땅이 유류분에 포함될 경우 유가족의 몫은 상대적으로 줄어든다.

민법에서도 유류분은 피상속인의 상속 개시 때의 재산에 상속 개시 이전 1년간 행한 증여 재산을 가산하고 채무를 공제해 산정한다.

장숙자가 고은성에게 경영권을 100% 넘겨줄 방법은 진성식품의 장 회장이 꼭 고은성에게 경영권을 승계시키고자 한다면 다른 방법을 선택할 수 있다. 고은성을 양자로 입양한다면 본인의 의지를 강하게 추진할 수 있다. 양자로 입양할 경우 친자와 동일하게 상속재산의 분할에 참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고은성이 입양으로 공동상속인의 일원이 된다면 다른 상속인에 비해서 상속재산의 분할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할 수 있다. 공동상속인 중 상당한 기간에 걸쳐 동거, 간호 그 밖의 방법으로 피상속인을 특별히 부양하거나 피상속인 재산의 유지 또는 증가에 특별히 기여한 경우에는 법정상속지분을 초과해서 배정 받을 수도 있다. 입양을 통해서 상속인이 된다면 가업상속공제가 가능해 세금이 줄어 더욱 확실한 승계가 가능할 것이다.

유언은 상속재산을 분할하는 데 있어서 망자의 마지막 의사 표현이다. 재산을 나눠주는 사람의 의지가 확고하더라도 재산을 받는 사람의 의지가 없다면 뜻을 이룰 수 없다. 그래서 고은성도 본인의 의지가 중요하다. 만약 극중 고은성 본인이 재산을 수령하지 않겠다는 의지만 있다면 다른 상속인의 의심 없이 충분히 재산을 포기할 수 있다. 상속인들 간에 합의각서를 작성하고 공증을 받을 수도 있다.

상속 Tip 공정증서 유언이 가장 안전

상속자가 자신의 의지대로 상속하기 위해서는 유언장 작성이 중요하다. 민법에서 인정하는 유언 방식은 보통 방식과 특별 방식 두 가지로 나뉜다. 보통 방식은 자필증서, 녹음, 공정증서, 비밀증서 등이 있고 특별 방식으로는 구수증서가 있다.

이 중 가장 많이 쓰이는 방식이 자필증서와 공정증서다. 자필증서 유언은 다섯 가지 요건을 모두 갖춰야만 유언장으로서 효력을 갖는다. 바로 자필 전문, 작성 연월일, 주소, 유언자가 직접 쓴 성명과 날인이 그것. 자필증서 유언의 최대 장점은 증인 없이 혼자 할 수 있다는 점이다.

타인이 관여하지 않기 때문에 비용은 들지 않지만 위조나 분실 위험이 높다. 자필증서 유언장을 작성할 때 알아 둘 게 있다. 유언의 전문은 유언자가 직접 작성해야 한다. 다른 사람이 대신 쓰거나 컴퓨터로 작성하는 즉시 유언장의 효력은 사라진다. 작성 연월일도 반드시 ‘OOOO년 O월 O일’로 작성해야 한다.

단 ‘회갑일에’, ‘결혼기념일에’ 등 유언 작성의 날을 정확히 알 수 있을 경우에는 인정받을 수 있다. 성명은 유언자가 자신의 이름을 직접 써도 되지만 호나 예명을 사용해도 된다. 공정증서에 의한 유언은 공증인이 유언자 대신 유언공정증서를 작성하므로 가장 안전하고 확실하다.

TV 드라마 <찬란한 유산>에서 장 회장이 선택한 유언 방식이 바로 공정증서에 의한 유언이다. 자필증서 방식과 달리 증인이 두 명 이상 있어야 한다. 유언자는 증인 앞에서 공증인에게 유언의 취지를 얘기하고, 공증인은 이 내용을 유언장으로 만든다. 공증인은 유언자와 증인에게 작성한 내용이 정확한지를 확인 받은 뒤 유언자에게 서명이나 날인을 하도록 한다.

공정증서에 의한 유언은 유언장 원본을 공증인이 보관하기 때문에 분실, 위조, 변조, 은닉 등의 위험이 없고 검증하는 절차를 거치지 않아도 된다. 자필증서 유언과 달리 절차가 복잡하고 비용이 드는 게 단점이다. 게다가 공증인 및 증인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유언 내용을 비밀로 부칠 수 없다.

글 원종훈 KB국민은행 세무사, 염지현 기자·사진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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