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휴대폰 소음규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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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유럽부흥개발은행 (EBRD) 총재를 지낸 자크 아탈리는 앞으로 '유목 (遊牧) 물품' 이 각광받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예언한 바 있다.

아탈리는 미래인들이 유목민처럼 이동하면서 살아갈 것이며, 이에 따라 유목물품의 수요가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아탈리의 유목물품 개념과 정확히 일치하는 것이 현재 세계적으로 폭발적 인기를 얻고 있는 휴대폰이다.

휴대폰의 영역 (領域) 은 지구적이다.

뉴욕 맨해튼.히말라야산맥.사하라사막.아마존정글까지 세계 어디라도 이어준다.

'휴대폰 선진국' 인 우리나라는 지난달말 현재 가입자수 1천3백만명을 돌파했고, 보급률 28.1%로 세계 5위다.

내년에 1천5백60만명, 2000년이 되면 1천8백50만명에 이를 전망이다.

휴대폰은단순한 전화가 아니다.

젊은 세대에게 패션상품이자 생활필수품이다.

휴대폰이 없으면 친구들로부터 '원시인' 취급을 받는다.

휴대전화 중독증환자까지 나오고 있다.

사용자 연령층도 계속 낮아져 중학생들까지 가담했다.

이에 따른 '통신과소비' 문제가 심각하고, 사용료를 제때 내지 못해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휴대폰 사용 자체가 일으키는 부작용도 심각하다.

항공기.병원 안에서 휴대폰을 사용함으로써 전자기기 (器機)가 기능장애를 일으키고, 자동차 운전중 휴대폰 사용으로 인한 교통사고도 잦다.

음악회.극장.도서관.회의장 등 공공장소에서 울려대는 휴대폰 벨소리는 이제 공해를 넘어 폭력 수준이다.

대학에선 강의 도중 울리는 벨소리로 수업진행이 지장받는다.

얼마전 서울에 온 세계적 소프라노 가수는 공연 도중 객석 여기저기서 울리는 벨소리 때문에 곤욕을 치렀다.

휴대폰벨소리의 소음을 막기 위한 아이디어도 다양하다.

지난번 대학정보통신 창업 경진대회에선 공연장 입구에 전파송신기를 설치, 이곳을 통과하는 모든 무선통신기기의 발 (發).착신 (着信) 모드를 자동으로 진동으로 바꾸는 장치가 선보였다.

이스라엘이 최근 개발한 'C - 가드' 는 일정 지역을 휴대폰 사각 (死角) 지대로 만드는 기능이다.

정부는 휴대폰 소음을 막기 위해 우선은 캠페인에 주력하다가 별 효과가 없으면 법적 규제를 마련한다는 방침이다.

휴대폰이 문명의 이기 (利器) 임은 분명하지만 잘못 사용하면 남에게 큰 피해를 주며, 심하면 생명까지 위태롭게 한다는 시민의식의 확산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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