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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됴쿄에서] 음반사 사장 바꾼 여가수의 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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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일본 음반회사 '에이벡스'는 연매출 700억엔(약 7000억원)이 넘는 부동의 업계 1위 회사다. 그런데 이 회사의 요다 다쓰미(依田巽.63)회장 겸 사장이 지난 3일 돌연 사표를 냈다. 경영을 잘못해서가 아니다. 이 회사 소속 인기 여가수의 심기를 건드린 것이 이유다.

사정은 이렇다. 지난 1일 요다 회장은 오랜 기간 음반제작을 총괄 지휘해온 마쓰우라 마사토(松浦勝人.39)전무를 전격 해임했다. 제작 방향을 놓고 요다 회장과 갈등을 빚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이에 발끈한 소속사 여가수 하마사키 아유미(浜崎あゆみ.26)가 바로 다음날 자신의 홈페이지에 글을 올렸다.

'(나를 키워준)전무가 사임하게 된다면 그것은 동시에 에이벡스의 종언을 인정하는 셈이다. 나는 전무의 길을 따라갈 것이다'.

이 글의 내용이 알려지면서 에이벡스의 주가는 곧바로 하한가로 곤두박질쳤다. 일본 최고 인기 여가수의 위력은 그만큼 엄청났다. 지금까지 그녀는 CD 3931만장을 팔았다. 여성 솔로가수로는 역대 최고다.

결국 요다 회장은 마쓰우라 전무를 이틀 만에 다시 불러들였다. 그리고 이번엔 본인이 '경질 되는' 신세가 됐다. 일본음반협회 회장직도 내놨다. 그러자 당장 에이벡스의 주가는 폭등했다. '경영의 귀재'로 불리며 회사를 일으켜 세운 요다 회장이지만 인기 여가수 한명을 못 당해낸 셈이다.

비슷한 일이 또 하나 있다. 현재 일본 프로야구의 2개 리그제를 1개로 통합하는 문제를 놓고 선수협회 회장인 한 프로야구 선수가 "구단주들끼리만 정할 게 아니라 선수들과도 상의해야 한다"고 이의를 제기했다. 그러자 한 구단주가 "그런 무례한…. 분수를 알아야지, 일개 선수 주제에"라고 핀잔을 줬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이 구단주는 여론의 십자포화를 맞았다. 반면 선수에겐 "용감하다"는 찬사가 쏟아졌다.

두 사안이 던진 메시지는 분명하다. 연공서열과 상명하복이라는 조직의 논리로 밀어붙이던 시절은 끝났다는 점이다. 지금은 '음반사 대표''구단주'로 상징되는 권력이 '여가수''프로야구 선수'가 갖는 대중적 인기에 밀리는 시대다.

김현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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