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졸업 예정자 사은회 미취업사태로 조촐해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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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전남나주시의 동신대 물리학과 4학년생들은 지난 13일 밤 조그만 음식점서 사은회를 열었으나 거꾸로 교수들로부터 위로받는 자리가 되고 말았다.

졸업예정자 37명 가운데 취업이 확정된 '특별한 경우' 는 4명뿐. "취업하지 못한 게 부끄럽지 않을 지경이어서 예년보다 훨씬 많이 참석했지만 분위기는 침울하기 짝이 없었다" 는 게 학생대표 김양수 (金良洙.27) 씨의 이야기.

풀 죽은 학생들을 보다 못한 교수들은 스스로 호주머니를 털어 나이트클럽으로 2차를 데려가는 등 용기를 북돋우고 기분을 달래줘야 했다.

대학 졸업 예정자들의 사은회가 사상 최악의 미취업 사태 탓에 조촐해졌을 뿐 아니라 스승.제자 모두 민망한 자리가 되고 있다.

1인당 10만원 이상 거둬 호텔 연회장을 빌어 거창하게 벌이는 호화판은 자취를 감춰 찾아보기 힘들다.

호남대 신문방송학과 김연욱 (金姸昱.23.여) 씨는 "지난해만해도 1인당 15만~20만원을 거둬 사은회를 가졌으나, 올해는 회비를 5만5천원밖에 걷지 않았다" 고 말했다.

예년의 경우 광주 신양파크호텔에선 10월 하순부터 이듬해 1월까지 사은회가 매주 1~2건씩 열렸으나, 올 들어선 지금까지 단 한 건도 없고 예약도 전무하다.

전남대 해양학과는 사은회를 지난주 학교 앞 삼겹살 집에서 가졌으며 저녁식사만 하고 1시간여만에 끝냈다.

의례적으로 교수들에게 주는 선물조차 전혀 없었다.

학과장인 김주용 (金周龍.41) 교수는 "음식이 제대로 넘어가지 않았다.

반듯하게 취업한 학생이 전혀 없다보니 교수.학생 모두 죄인 같은 심정이었다" 고 말했다.

학교 안에서 사은회를 때우거나 학생들이 손수 만든 선물을 전달하는 학과도 있다.

전주대 미술학과는 사은회를 18일 학생들이 집에서 장만해온 음식으로 교내 전시실에서 치렀고 이 학교 산업미술과는 교수들에게 고가의 선물 대신 자신들이 빚은 생활도자기를 주기도 했다.

전북대 화공과는 최근 학생회관서 간단한 행사를 가진 뒤 학교 앞 호프집서 뒤풀이를 한 경우. 대불대 화학과 김기선 (金淇善.40) 교수는 "이번 졸업예정자들로부터는 '스승의 은혜' 노래를 듣는 것 자체가 부담스럽다.

강의실에서 마지막 인사만 받고 학교 근처 식당으로 데려가 저녁을 사줄 생각" 이라고 밝혔다.

광주.전주 = 이해석.장대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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