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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사형제 폐지 목청…14% 선고후 무죄 드러나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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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미국 일리노이주의 농민 게리 가우거 (40) 는 밤마다 악몽에 시달려 땀으로 흠뻑 젖는다.

부모 살해 주범으로 지목돼 저승 문턱에까지 갔다 돌아온 기억 때문이다.

지난해 여름 어느날 술에 만취한 다음날 아침 잠에서 깨어난 그는 피투성이로 숨져 있는 부모를 보고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은 부모들이 반항한 흔적이 없고 가우거가 조사중 태연하게 과수원에서 일하고 있었다는 점에 혐의를 두고 그를 용의자로 지목했다.

판결은 극약주사 사형. 그런데 사형을 얼마 앞두고 천사가 나타났다.

미 연방수사국 (FBI) 이 범행을 저지른 범인이 자랑스레 떠벌리는 통화를 우연히 도청한 것이다.

그는 악몽 같은 10개월의 복역 끝에 자유의 몸이 됐다.

미국 시카고 노스웨스턴대에서는 지난주 '잘못된 판결과 사형에 대한 회의' 가 열렸다.

잘못된 판결로 사형 직전까지 갔던 27명의 '전직 사형수' 들의 경험담이 소개되면서 회의는 눈물바다가 되기도 했다.

◇ "나는 억울하다" =미 주간지 유에스 앤드 월드 리포트는 최근호에서 "76년 이후 4백86건의 사형선고 가운데 7건중 1건이 무죄로 입증됐다.

과연 현재의 사형제도가 유효한 것인가" 라며 도전장을 던졌다.

미국내 사형제도를 시행하는 주는 38개주. 사형 대기자가 82년 이후 가장 많은 3천5백17명으로 사형선고는 계속 늘어나는 추세다.

문제는 사형선고를 받아도 무죄가 입증되는 경우가 늘고 있다는 점이다.

일리노이주의 경우 20건의 사형선고 가운데 9명이 나중에 무죄가 입증됐다.

이 때문에 미 변호사협회는 지난해 사형수의 사형집행 유예를 요구했고, 일리노이주 의회도 집행유예를 위한 의안을 상정해 놓고 있다.

◇ 제도의 문제 = 잘못된 판결의 희생자는 대개 소수민족. 일리노이주에서 9명의 억울한 희생자중 6명은 가난한 흑인과 스페인계다.

경제적 능력이 없어 유능한 변호사를 구하지 못해 죄인이 되는 '무전유죄 (無錢有罪)' 는 우선적으로 개선해야 할 문제로 지적된다.

강압적 수사와 수사관의 편견도 큰 원인. 피의자가 경찰에 겁먹고 엉뚱한 자백을 하게 되는 것이다.

사법제도의 경직성과 수사기관의 증거조작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하재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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