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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는 눈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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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치? 직장인에게 눈치는 숨 쉬는 것만큼이나 일상적인 일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압권은 역시 퇴근과 휴가 눈치다. 남들, 특히 상사가 아직 퇴근하지 않은 상태에서 가방을 집어들고 나설 때의 그 기분! 뒷골이 당기는 그 경험, 없는 사람이 거의 없을 것이다.

휴가! 아~ 휴가를 마음껏 누려 본지가 언제던가? 요즘 같은 불경기 또는 구조조정기에는 휴가를 내기도 부담스럽지만, 휴가를 가서도 혹시 그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지지나 않을까 전전긍긍한다. 그 결과 휴가 중에 아무 일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사무실을 문을 열고 들어설 때는 분위기부터 살피게 된다.

언젠가 누가 내게 이런 이야기를 들려준 적이 있다. 직장에서 살아남으려면 3가지 중에 하나는 있어야 한다고. 첫째, 실력이 좋거나, 둘째, 성실하거나, 셋째, 눈치가 빠르거나. 여러분은 어떤가? 실력도 그만 그만, 성실함도 그만 그만이라면, 눈치가 빨라야 한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이도 못 갖췄다면, 여간 심각한 일이 아니다.

사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눈치의 바다’라고 할 수 있다. 집에서 눈치, 직장에서도 눈치, 여기서도 눈치, 저기서도 눈치. 왜 그렇게 눈치를 봐야할 사람이 많은 건지. 직장에서만 하더라도 사장 눈치 봐야지, 상사 눈치 봐야지, 부하들 눈치 봐야지, 또 ‘갑’의 눈치까지 봐야 한다. 포괄적인 의미의 회사 눈치는 물론 말할 것도 없다.

퇴근과 휴가 눈치만 보는 것도 아니다. 경비지출을 할 때도, 밥값을 낼 때도, 다른 직장을 알아 볼 때도, 잠시 게임을 하거나 스포츠 경기를 볼 때도, 회의를 할 때도, 물론 땡땡이 칠 때도 눈치를 봐야 한다.

눈치라는 단어에 붙는 술어도 여럿이다. ‘눈치를 본다’는 기본이고, 그와 비슷한 ‘눈치를 살핀다’에서부터 ‘눈치를 준다’ ‘눈치가 빠르다’ ‘눈치가 없다’ 등등 눈치의 쓰임새는 다양하기까지 하다!

이런 눈치의 바다를 무사히 순항하려면 물론 ‘눈치가 빨라야 한다’. 하지만 눈치 없는 행동을 가끔씩 하곤 하는 것이 우리의 일상이다. 당신은 눈치가 빠른 편인가 아니면 눈치가 없는 편인가? 간단히 확인을 해보기로 하자.

위의 질문에 대해 1개 이상 ‘네'라고 답했다면, 당신은 눈치가 없는 편이라고 봐도 좋다. 눈치의 사전적 의미는 이렇다. ’남의 마음을 그때그때 상황을 미루어 알아내는 것.‘ 사전적 의미대로라면, ’마음‘과 ’상황‘을 동시에 읽어야 한다는 말이다.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니 눈치가 없다고 좌절할 필요는 없다.

이제 정밀진단을 한번 해보자. ‘나는 도대체 왜 눈치가 없는 걸까?’ 눈치를 ‘보는’ 또는 ‘살피는’ 데에는 단계가 있다. 그런데 각 단계별로 장애가 발생할 수 있고, 이에 따라 각기 다른 양상으로 ‘눈치 없는’ 언행이 나타나곤 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 눈치보기 1단계ㅣ감지 장애
사전에서 정의한 ‘상황’, 곧 ‘분위기’를 감지하는 것이 눈치보기의 첫 단계에 해당한다. 하지만 분위기에 무감각한 사람들이 없지 않다. 누구나 가끔은 분위기를 파악하지 못할 때가 있다. 휴가나 출장을 다녀왔거나, 회의에 늦게 참석했을 경우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늘 그런 편이라면 선천성 또는 습관성 감지장애에 걸린 것으로 봐도 좋다.

□ 눈치보기 2단계ㅣ분석 장애
분위기가 이상하다고 느낀 순간 우리의 뇌는 곧바로 분석에 돌입하기 마련이다. 뭐지? 뭐야! 하면서, 뇌는 신속하게 이상한 분위기의 원인일 수 있는 요인을 찾아내는가 하면, 과거의 사례를 끄집어내 묘한 구도에 관한 나름대로의 답을 내놓는 것이다. 그런데 분석을 잘 못하거나, 아예 잘못된 분석을 답이랍시고 내놓곤 한다면, 당신은 분석장애에 걸린 것으로 볼 수 있다.

□ 눈치보기 3단계ㅣ선택 장애
우리의 뇌는 참으로 신통한 놈이라서 분석과 동시에 솔루션을 내놓곤 한다. ‘이럴 때 이렇게 처신하는 게 최선이야. 물론 요런 차선책들도 있지’하면서 말이다. 이때 직장생활을 오래한 사람들일수록 유리한데, 참고자료가 풍부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뇌가 스펙터클하게 솔루션을 펼쳐 놓은 순간, 갑자기 머릿속이 하얗게 또는 까맣게 변하면서 먹통이 되는 사람들이 없지 않다. 더욱이 최악의 경우는 고르는 솔루션마다 제일 별 볼일 없는 것일 때다. 이런 경우는 선택장애에 단단히 걸린 것으로 봐야한다.

□ 눈치보기 4단계ㅣ실행 장애
나의 뇌가 기가 막힌 솔루션을 펼쳐놓았고, 이제 그것을 실행에 옮기기만 하면 순식간에 내가 눈치 빠른 인간이 될 절체절명의 순간! 아! 아쉽게도 그걸 내뱉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마음은 굴뚝같은데, 늘 남에게 기회를 빼앗기는 당신은 실행장애 환자라고 할 수 있다. 실행장애 환자, 의뢰로 많다.

□ 눈치보기 5단계ㅣ평가 장애
적기에 언행을 실행했다고 치자. 다음에 이어져야 하는 프로세스는 상대방의 반응을 평가하는 것이다. 내가 내뱉은 말에 대해, 내가 내민 손에 대해, 상대방이 흡족해 하는지 아니면 오히려 더 화를 내는지. 겉으로 드러난 것과 동시에, 사전에서도 분명하게 기록한 ‘마음’의 변화를 읽어야 하는 것이다. 그것도 순식간에. 그런데 이것을 잘 못하겠다면, 당신은 평가장애 상태로 볼 수 있다.

□ 눈치보기 6단계ㅣGo & Stop 장애
상대방의 심리적 변화를 읽어 보니, 나의 언행이 흡족한 것으로 보이는 순간 또는 그 반대의 순간, 우리는 다시 판단을 내리기 마련이다. ‘우후훗! 효과 만점일 걸, 그렇다면, 한 번 더!’ 또는 ‘에고 망했네. 급수습하고 조용히!’하는 식으로 말이다. 그런데 가끔 멈춰야 할 때 멈추질 못해서, 낭패에 굴욕을 더하는 경우가 없지 않다. 당신이 그 주인공이라면, 당신은 고스톱장애에 걸렸다고 봐야 한다.

흔히들 ‘눈치 없다’는 말로 간단하게 처리하지만, 눈치 없다는 평가를 받는 이유와 상황은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눈기보기의 각 단계별로 다양하게 나타난다. 그렇기 때문에, 처방도 각기 달라질 수밖에 없을 텐데, 내가 어떤 장애가 있는지를 아는 것이 그 출발점이 될 수는 있을 것이다.

‘눈치 빠른 놈은 절에 가서도 새우젓을 얻어 먹는다’는 옛말이 있다. 이 말은 요즘도 해당하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이와 동시에, 눈치의 바다를 항해하다 버뮤다 삼각지대 같은 ‘눈치의 늪’에도 빠지지 않도록 주의할 일이다.

이종훈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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