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공연 예술인 ② 꽃미남 코믹 서커스 공연팀 '퍼니스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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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대성(왼쪽) 씨와 김희명 씨.

11일 오후 서울 삼선동 성북구청 근처에 있는 한 건물 지하실. 소방도로 바로 옆 계단을 따라 내려가 문을 열자 20평 남짓한 공간이 나왔다. 건물 안은 온통 흰 색 페인트로 칠해져 있었고 작업실 곳곳에는 공연할 때 쓰는 모자와 가방, 공, 요요할 때 쓰는 디아블로가 놓여 있었다. 체조용 곤봉 모양의 클럽과 링이 나란히 걸려 있고 줄 무늬 양말도 눈에 띄었다. 이곳은 2인조 코믹 서커스 공연팀 ‘퍼니스트’의 아지트다.

“전 ‘매직 최’입니다. 고등학교 다닐 때부터 마술을 좋아했거든요.” 최대성(25·서울 상수동) 씨가 명함을 내밀며 자신을 소개했다. 웨이브를 준 긴 헤어스타일을 한 최씨는 일본의 인기 영화배우 겸 가수 기무라 다쿠야를 닮았다.

최씨 옆에 있던 청년이 냉장고에서 식초맛 나는 음료수 한 병을 꺼내 기자에게 내밀며 말했다. “전 ‘왕고’라고 불러요. 제가 무슨 일을 할 때 주변 일을 신경을 못 쓰는 데 사람들은 제가 군대 왕고처럼 행동한다고 생각하나 봅니다.” 퍼니스트의 또 다른 멤버인 김희명(25·서울 면목동) 씨는 공연을 위해 머리를 빡빡 밀었다. “저는 중학교 때부터 마술을 좋아했어요.” 두 사람은 6년째 코믹 서커스 공연가로 함께 일하고 있다. 두 사람은 인터넷 사이트에 올라온 외국의 유명 저글링 공연팀의 영상을 보면서 독학했다.

기자의 눈에 바닥에 놓인 종이 박스 하나가 눈에 들어 왔다. 종이 박스에는 수많은 칼자국이 나 있었고 과일 깎을 때 쓰는 칼이 꽂혀 있었다. 기자가 궁금해 하는 기색을 보이자 최씨가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대꾸했다. “아, 저거요. 칼 던지는 연습을 한 겁니다. 연습을 하다가 물건을 떨어뜨리면 아래층에서 시끄럽다고 하니까 연습실을 지하에 구했어요. 지금은 많이 좋아진 거예요. 예전 작업실은 비만 오면 바닥에 빗물이 고여 흥건했으니까요.” 현재의 작업실도 월세를 내고 얻었다. 거리공연에 필요한 모자와 클럽 등은 모두 행사장 짐 나르기 등의 아르바이트를 해서 하나 둘 사 모았다. 그나마 국내에서 생산되지 않아 비싼 돈을 주고 외국 업체에 주문해서 구입한 것이다.

최씨와 김씨는 서일대학 레크리에이션과 동기 사이로 2003년 코믹 서커스 동아리에서 함께 활동한 것이 인연이 돼 공연가의 길을 걷고 있다. 퍼니스트는 이름이 널리 알려지면서 전국 축제나 각종 행사에서 마임과 서커스, 마술을 공연하느라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이들은 서울지하철 주요 역사 안에 마련된 예술무대에서 한 달에 한 번 무료 공연을 하고 있다. 무명 시절 공연 장소를 구하지 못하던 때 지하철 역사는 추위 걱정 없이 공연할 수 있는 곳이었다. 찰리 채플린같이 꾸미고 6~7개의 공과 클럽을 공중에서 돌리는 묘기와 우스꽝스러운 몸동작과 표정으로 관객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공연이다.

김씨는 지하철 승객들의 반응이 좋아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관객들에게 다가 가서 저희들의 공연에 참여시키니까 아주 즐거워하세요. 지하철 공연은 실내 공연이다 보니까 길거리나 야외 무대에서처럼 불을 사용하는 공연은 못해요. 저희가 보여줄 수 있는 묘기가 제한적인데도 승객들의 반응은 아주 뜨겁습니다.”

하지만 최씨는 힘든 점도 있다고 털어놓았다. “서커스 공연은 다른 공연에 비해 소품이 많이 필요해요. 공연 소품은 무거워서 승합차에 싣고 다녀요. 지하철 공연 땐 무거운 장비를 지하로 운반해야 하니까 야외 공연에 비해 힘이 배로 듭니다.”

연습실 선반 위에는 전국의 각 지방을 대표하는 소주병 9개가 나란히 진열돼 있었다. 이들이 지난달 말 1주일간 전국을 돌며 공연하고 기념으로 사 온 것이다. 김씨는 “대천해수욕장, 목포, 제주 서귀포, 부산 해운대, 경포대 등을 둘러보고 왔는데 휴가비는 공연을 해서 관객들이 십시일반으로 준 돈으로 해결했어요. 해변에 앉아서 술 한 잔 하고 있는 데 어떤 분이 ‘공연을 재미있게 봤다’며 술을 사다 주신 경우도 있었어요.”

최씨는 군대에서 마술 장기자랑으로 포상휴가를 나온 일화도 소개했다. “마술할 때 미인계를 썼습니다. 공연할 때 누나를 불러서 마술 쇼를 도와달라고 했는데 반응이 폭발적이었죠. 사단장님이 공연 이벤트 병사를 하라고 할 정도였으니까요. 잔뜩 기대했었는데 얼마 있다 사단장님이 다른 곳으로 가면서 좌절되고 말았죠.”

그는 야외 공연 때 입으로 불 뿜기와 전기톱 돌리기와 같이 아찔한 묘기도 선보이고 있다. 전기톱을 작동시켜 놓고 공과 함께 던져서 받는 묘기다. 최씨가 공연할 때 사용하는 전기톱은 공중에 던진 후 잡을 수 있도록 끝에 손잡이가 하나 더 있을 뿐 일반 전기톱과 똑같다. 무게는 5㎏ 정도로 아령처럼 무겁다. “관객들이 좋아하니까요. 연습을 많이 해서 저한테는 위험하지는 않습니다. 긴장이 되긴 하지만 묘기를 성공할 때마다 희열을 느낍니다.”

그는 일반인들도 공중 공 돌리기는 할 수 있다고 소개했다. “누구나 한 두 시간만 연습하면 공 3개 정도는 공중에서 돌릴 수 있어요. 순발력과 집중력, 균형감각을 기를 수 있어요. 유연성은 그리 중요하지 않으니까 여러분도 한번 도전해 보세요.”

꿈 많은 20대. 이들의 꿈은 ‘월드 스트리트 퍼포먼스 대회’와 같은 세계 거리공연대회에 출전해 상을 받는 것이다. 젊은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물었다.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하루라도 일찍 저지르세요. 나중에 하면 늦습니다. 저희들은 취업 대신 하고 싶은 일을 택했습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니까 너무 행복해요.”

퍼니스트는 14일 서울지하철 7호선 건대 입구역에서 공연을 한다.

김용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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