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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불교의 큰스님 선문답]3.원담선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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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두견 (杜鵑) 이 울고 산죽 (山竹) 이 쪼개진다.

근세 한국불교 중흥조 경허.만공선사가 머물었던 도량 (道場) 인 덕숭산 (德崇山)가풍은 이처럼 격렬하고 가파르다.

그래서 충남 예산 수덕사 덕숭총림 방장 원담 (圓潭.72) 선사를 찾아 가는 길에는 담력을 다지고자 점심으로 온양 저수지서 얼큰한 밑물 매운탕 한 그릇에 소주 반병도 마셨다.

경허 (鏡虛.1849 - 1912) 선사가 초겨울 어느날 시자 만공 (滿空) 을 데리고 탁발을 나갔다.

저녁때가 되자 만공의 바랑에는 동냥한 쌀이 묵직했다.

탁발을 끝내고 수덕사로 향하는 길에서 경허선사는 산밑 주막집으로 들어가 파전 한 접시와 막걸리 한 주전자를 청해 마시고는 술값으로 탁발한 쌀을 주모에게 몽땅 털어주라고 만공에게 명했다.

깜작 놀란 만공이 "스님, 내일 아침 대중들 공양은 어떻게 하라구요" 라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이 때 경허는 취기 (醉氣)가 오른 자신의 불그레한 얼굴을 가리키며 "오늘 단청불사 (丹靑佛事) 는 이만 하면 됐다" 하고는 갈길을 재촉했다.

경허 가풍의 얼근한 취기로 수덕사 덕숭총림 원담방장을 만나 세상을 한번 내려다 봤다.

문 : 스님께서는 그 좋은 얼굴을 가지고 왜 장관이나 판.검사를 하지 않고 중이 되셨읍니까.

답 : 임마, 중보다 더 좋은 거 있어. 너는 골통 싸매고 취재해서 기사써야 월급 타먹지만 여기는 목탁만 잘 쳐도 먹고 산다.

문 : 그래 그동안 얼마나 많은 중생을 제도 (濟度) 하셨읍니까.

답 : 한 명도 없다. 내 자신도 구제하지 못했는 걸 뭘. 문 : 어떤 법문을 해오셨습니까. 답 : 욕밖에 한게 없다.

문 : 무슨 욕인데요.

답 : "야,×할 놈들아!"

<문답의 핵심 포인트는 원담선사의 말후구 "×할 놈들아!" 다. 선에서는 지독한 욕이나 독설이 세속과는 정반대로 지극한 칭찬이 된다. 선의 세계가 가지는 독특한 상징체계다. 따라서 그의 말후구는 '선남선녀 (善男善女) 들아!' 라는 칭찬이다. 두번째 대답의 "한 명도 없다" 는 계속 즉각적인 부정을 거듭해 얻는 긍정이다. 사유체계가 갖는 이같은 역설의 논리를 일명 '즉비 (卽非) 의 논리' 라고도 한다. '금강경' 에 자주 나오는 "반야는 반야가 아니기 때문에 반야다 (第一波羅密 卽非第一波羅密 是名第一波羅密)" 와 같은 즉비의 논법이다.< p>

한국 선방에서 가장 많이 드는 화두인 조주종심선사 (778 - 897) 의 "개에게는 불성이 없다 (狗子無佛性)" 는 '무 (無)' 자 공안도 부정을 통해 "개에게도 불성이 있다" 는 유.무 분별을 뛰어넘는 절대긍정을 도출하는 선리 (禪理) 다. 이렇다면 원담선사가 제도한 중생이 한명도 없다는 부정이나 많다는 긍정은 전혀 망녕된 분별심의 구분일뿐인 것이다.

첫번째 대답의 목탁은 언필칭 '사회의 목탁' 이니 입법부.사법부.행정부에 이은 '제4부' 니 하는 언론과 불가의 상징인 목탁의 관계를 직지 (直指) 한 일할 (一喝.고함소리) 이다.

목탁은 공양때를 알리는 목어 (木魚)가 변형된 것으로 집회.염불.독경때 사용한다. 목탁에는 물고기가 밤낮으로 눈을 뜨고 있듯이 수행자도 그처럼 잠자지 말고 도를 닦으라는 뜻이 담겨 있다.

한달만 배우면 치는 목탁이지만 목탁만 잘쳐서 먹고 산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중이나 신문기자나 '목탁' 을 잘 쳐야 한다. >

문 : 석가모니와 달마는 각각 어떤 사람입니까.

답 : 석가는 서천 (西天.인도) 의 도둑놈이고 달마는 동토 (東土.중국) 의 사기꾼이다.

문 : 스님은 어떻습니까.

답 : 나도 똑 같다.

<언뜻 보기엔 부처와 달마를 비방하는 신성 (神聖) 모독이요 부처를 욕하고 조사를 매도하는 가불매조 (呵佛罵祖) 다. 원래가 선의 세계는 이렇다.< p>

석가모니는 8만4천 법문을 설하고도 "나는 한마디도 설법한 바 없다 (不說一字)" 고 잡아 뗐다. 달마는 양무제와의 문답에서 무제 (武帝)가 "절을 많이 짓고 탑을 많이 세웠으니 얼마나 한 공덕이 되겠느냐" 고 묻자 "전혀 공덕이 안되니 절과 탑들을 다 허물어 버리라" 고 일할했다.

부처와 달마는 세속 논리로 보면 틀림없는 사기꾼이다. 그런데 원담선사는 자기도 부처.달마와 똑같단다. 그는 이런 일화를 들려주었다. 여자냄새를 전혀 모르는 11살 동진 (童眞) 으로 출가하던 날 수덕사 마당가에 주장자를 들고 서있는 만공선사께 인사를 올렸다.

선사는 아무말 없이 들고 있던 주장자로 원담의 머리통을 한대 내리치고는 "알겠느냐" 고 했다.

원담은 하도 아파서 무심코 "예, 알겠습니다" 고 대답했단다.

만공은 "무엇을 알았느냐" 고 다그치면서 주장자를 다시 들어 올려 내리치려 했다.

이때 그가 더는 안맞으려고 엉겁결에 "아픕니다" 는 비명을 지르자 만공은 허허 웃고는 방장실로 들어가버렸다.

그는 이제 와서 보니 그때 내뱉은 "아픕니다" 는 한마디속에 이미 모든 선지 (禪旨)가 들어 있었고 일체 중생이 다 불성을 가지고 있다 (一切衆生悉有佛性) 는 절대평등론을 내보인 것이었다고 회상했다.

부처도, 달마도, 원담도 몽둥이로 골통을 얻어맞으면 아프다.

그 아픔을 느끼는 의식작용을 일으킨 저 밑바닥의 '그 놈' 이 바로 우리의 생명을 지탱해 주는 불성이다. >

문 : 저는 담배를 많이 피우는데 고급 레스토랑이나 골프장 클럽 하우스에 가면 '흡연석' 팻말로 담배 피울수 있는 자리를 제한합니다.

때때로 전망 좋은 금연석에 앉아 담배도 피고 식사도 즐기고 싶은데 가능한 방법이 없을까요.

답 : 옮겨라 (移) .

<저 구석의 흡연석 팻말만 창가 테이블로 옮겨놓고 담배를 피우면 된다.< p>

이것이 선적인 '발상의 전환' 이고 이른바 선행위 (禪行爲) 라는 것이다.

흡연석 지정은 절대적인 것도 아니고 강제적 구속력을 갖는 실정법이나 식당의 성문화된 규정도 아니다. 본래가 식당의 흡연석 지정은 팻말을 놓는데 따라 정해지는 임의적인 것이다.

따라서 팻말을 놓는데가 흡연석이고 팻말을 옮겼다 해서 흡연석수가 줄거나 늘지도 않는다. 선은 이처럼 외적 여건에 지배당하는 피동적 삶이 아니라 자기 주체성을 살리는 능동적 삶을 살라고 가르친다. >

문 : IMF로 가난한 사람들이 많이 생겨났는데 이들에겐 무엇을 보시해야 합니까.

답 : 거지는 부족한게 하나도 없다.

<선립 (禪林)에서의 '빈곤' 은 번뇌.망상을 다 털어버린 마음의 가난을 뜻한다. 송곳 꽂을 땅이 없는데서 더 나가 송곳조차도 없는 적빈 (赤貧) 의 가난이라야 진짜 조사선 (祖師禪) 가난이고 마음을 비운 무심이다.< p>

원래 산스크리스트어의 비꾸 (Bhiksu.比丘) 는 걸식하는 무일푼의 거지를 뜻한다.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사람은 역설적으로 말해 우주를 다 가진 사람이다.

그런 사람에겐 더 이상 필요한 것이 있을 수 없다.

왜냐하면 모든걸 필요하면 거저 얻으면 되니까. '빈자보시 (貧者布施)' 라는 이 화두는 IMF로 물욕의 억제와 진정한 무소유 (無所有) 의 가난을 알게 된 사람이 있다면 그런 사람은 마음의 부자가 됐으니 큰 공부를 했다는 이야기다.

수덕사 주지 법장스님이 옆에서 이런 얘기를 들려주었다.

그는 지난 여름 하안거 (夏安居) 해제날 원담방장께 안거를 끝낸 납자들이 인사를 오거든 노자나 보태주시라고 돈 50만원을 봉투에 넣어 드렸다.

나이가 71세나 되는 월룡수좌가 먼저 와서 작별 인사를 하자 원담방장은 주머니에서 봉투를 꺼내 통째로 주워버렸다.

얼마후 납자들이 들어오자 월룡수좌는 입승 (立繩.선방감독자)에게 그 봉투를 그대로 건네 주고는 방장실을 나와 노자 20만원씩을 받은 젊은 사제 (師弟) 두명한테 10만원씩 내라고 해서 길을 떠났다.

참으로 멋진 운수납자 (雲水衲子) 들의 무소유정신이고 적빈의 삶이다. >

문 : 스님께 드릴려고 케이크 하나를 사가지고 오다가 굶주림에 지쳐 길가에 누워 있는 개가 있길래 주고 왔습니다.

답 : 여래 (如來)에게 보시를 했군.

<기독교 성서 (聖書) 를 보면 그리스도가 "가장 보잘것 없는 자에게 베푼 것이 바로 나에게 것이다" 라고 말하고 있다. 모든 고등 종교와 성인들은 이처럼 하나같이 가난한 자, 억눌린 비천한 자를 자신과 동격시하면서 구원의 우선 순위에 두었다. 항차 개도 불성을 가진 중생의 하나일진대 어찌 케이크를 개한테 보시한게 부처님께 공양한거와 다를 바 있겠는가.>

문 : 문안 인사가 늦었습니다. 그래 여전히 화두는 또렸하신지요.

답 : 까만 숯더미 위에 앉아 있다.

<까만 숯 (炭) 은 '암흑의 진리' 를 상징한다. 이른바 노자가 말한 "모르는 것을 안다는 사실이 최상 (知不知上)" 이라는 것도 바로 이와 같은 암흑의 진리에 들어간 높은 경지다. 원담방장은 이 한마디를 통해 자신과 만물이 하나가 돼 속세를 곧 지상낙원으로 알고 평범한 삶속의 일들 조차를 신성하게 여기는 즐거운 나날을 살고 있음을 말하고 있다. 이래서 겉만 보면 화두를 다 까먹고 멍청하게 앉아 있다는 말처럼 들리는 원담선사의 대답은 한 소식한 경계를 드러내 보인 사자후가 된다. 사자의 울음소리에 놀라 어둠이 깔리는 덕숭산을 도망치듯 서둘러 내려왔다.>

[원담선사는…]

▶1926년 전북 옥구군 출생. 속명 김몽술 (金夢述) .

▶1937년 수덕사로 출가

▶1941년 만공스님에게 사미계 수지

▶1943년 만공선사로부터 법을 인가받음

▶1960년 화엄사 주지

▶1970년 수덕사 주지

▶1983년 덕숭총림 개설

▶1986년 덕숭충림 제3대 방장 취임

▶1986년 일본 산케이신문 국제서도전 대상수상

▶1994년 조계종 원로회의 부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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