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시장 화재입은 남창욱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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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12일 새벽 대형 화재가 발생한 서울 광장시장의 피해상인 1백여명은 순식간에 재로 변한 생활의 터전 앞에서 망연자실한 표정이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남창욱 (南昌旭.36) 씨의 허탈감은 더욱 컸다.

두평반짜리 생활한복 가게를 낸 지 불과 나흘. 10년을 넘게 키워온 '내 가게' 의 꿈은 1백시간 만에 불속으로 사라지고 없었다.

"월 1만원씩 부어오던 다섯살.세살 두 아들의 교육보험까지 깨 차린 가게입니다. 제 인생의 전부나 다름없는 가게였는데…. "

南씨가 시장 사람들로부터 "불이 났으니 빨리 나와보라" 는 전화를 받은 것은 12일 오전 3시30분. 새벽까지 가게 정리를 하다 귀가해 막 단잠에 빠져든 때였다.

같이 나가겠다는 아내를 "별일 아닐 것" 이라며 애써 위로한 뒤 혼자 서울서대문구홍제동 집에서 택시를 잡아타고 달려간 그는 자신의 가게를 보는 순간 주저앉고 말았다.

수십대의 소방차가 물을 뿜어대는 가운데 상가 전체는 이미 시커멓게 불에 탄 채 매캐한 연기를 내뿜고 있었고 한가족처럼 지내온 상인들은 여기저기서 제지하는 경찰을 뚫고 가게로 들어가겠다며 울부짖고 있었다.

자신의 젊음과 전 재산을 털어 차린 가게였다.

"주문한 간판은 아직 달지도 못했어요. '미성한복' 이라고 이름지었는데…. 생전 처음 만들어본 명함도 이제 쓸모없게 돼버렸네요. " 경북영양이 고향인 南씨가 서울로 올라온 건 지난 86년. 광장시장의 한 한복집에 취직했고 이후 원단 배달부터 시작, 12년을 광장시장 한곳에서 일해왔다.

"언젠가는 내 가게를 갖겠다" 는 南씨의 오랜 꿈은 지난 8일 이뤄졌다.

친구 최종민 (崔鍾民.35) 씨로부터 점포를 넘겨받은 것. 보증금 8백만원에 월세 1백만원의 작은 가게였지만 南씨에겐 세상 전체를 얻은 것처럼 가슴 벅찬 일이었다.

南씨가 가게를 열면서 상품 구입과 시설비 등으로 들인 돈은 약 7천만원. 6개 통장으로 모은 돈과 두 아들의 보험을 해약한 돈까지 다 털었지만 부족해 주변 사람들로부터 절반 이상을 빌려야 했다.

친구 崔씨에게 지불한 권리금 2천여만원도 석달짜리 어음. 전셋집을 월셋집으로 옮기고 그 차액으로 갚을 예정이었지만 가게가 완전히 불타버린 이제 그저 막막할 뿐이다.

최재희.김성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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