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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조5000억을 감시하는 암행어사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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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밝은 인사와 함께 한 회사에 들어선 남자. 느닷없는 방문인지라 환영받지 못할 것은 당연한 일. 그의 등장과 함께 회사 직원들이 서류뭉치와 제품들을 들고 온다. 마치 사건현장에 나타난 검사처럼 그의 요구사항에 따라 들어오는 서류와 제품 역시 늘어난다. 과연 누구일까?

“암행어사 출두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타결로 수출업체들은 미국 시장 진출을 위한 발 빠른 준비를 하고 있다. 자유무역협정의 포인트는 바로 관세. 미국으로 전기전자·정보통신제품을 수출하기 위해서는 세관 통관 시 필요한 전자파규격 ‘미연방통신위원회(FCC)’인증을 꼭 취득해야 한다. 또한 자국 소비자의 안전을 매우 중시하는 미국은 정부가 지정한 시험소(NRTL)의 안전인증 획득이 요구된다. 현재 UL·CSA·ETL 등 19개 기관이 미국 정부의 인증시험소(NRTL) 자격을 가지고 있고, 이 중 UL은 절대적인 위치에 있다. 인증기관으로서 UL이
존재하기까지 가장 큰 공신은 바로 사후검사프로그램이다. 1996년 한국시장에 진출한 UL의 사후검사프로그램 별명은 바로 ‘암행어사’. 일 년에 네 번 불시방문을 통해 인증을 부여받은 제품이 품질을 계속 유지하고 있는지를 확인한다.

“완제품 박스도 좀 뜯어보세요”
사후 검사 관리원인 한소훈 대리가 방문한 회사는 정수기, 밥솥, 주유기의 수압/공압제어장치를 생산하는 파커 코리아. 느닷없는 한소훈 대리의 등장과 끝없는 요구에도 한마디 불만도 없었다. 하교 쪽지시험이라도 불시에 시작하면 불만이 쌓이는 법. 더욱이 이들은 UL의 고객이다. “솔직히 겁은 나죠. 아무리 저희가 확실하게 준비를 하고 있어도 이런 불시검사에는 미흡한 점이 나올 수 있거든요.” 파커 코리아의 고경진 과장이 진땀을 흘리며 말했다. 한 시간여 동안 생산량 서류를 보며 고경진 과장을 괴롭히던 한 대리가 생산공장으로 발을 옮겼다. 암행어사라는 별명에 걸맞게 공장 이곳저곳을 세밀히 살펴보던 그가 완성품이 잘 포장돼 쌓여 있는 곳에서 멈춰섰다. “포장을 뜯어 제품 확인을 할 수 있을까요?” 안전도 좋지만 그래도 고객인데 완성품의 포장을 뜯자니…. 고객사의 반발이 예상됐다. 그러나 상황은 정반대로 끝이 났다. 포장을 뜯어달라는 요구가 떨어지기 무섭게 곧바로 박스 안의 제품이 나오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더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입니다. 이렇게 무작위로 제품을 감별하는 것도 꼭 필요하죠. 물론 고객사분들께서 기분이 나쁘실 수도 있지만 확실한 안전을 통해 수출을 하기 위해서 저희 인증을 받으신 거니까 많이 이해해 주십니다.”

“메이드 인 코리아'의 자부심을 느낍니다”
“불시검사가 불안하긴 하지만 부담스럽지는 않습니다. 저희 회사는 UL말고도 다른 인증을 여러 개 받았습니다. 까다로운 인증체계를 거치며 저희 회사의 기술도 빠르게 진보할 수 있었습니다” 묵묵히 사후검사 과정을 지켜보던 이찬우 부장이 말했다. “이런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저희가 UL에 돈을 지불합니다. 저희 제품의 안정성을 확인할 수 있으니까요.” 국내인증시장은 2002년 1조에서 2006년 2조2000억~2조5000억원 수준으로 올라섰다. 또한 정부는 2012년까지 5조9000억원 규모로 형성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 한가운데 한소훈 대리가 서있다. “하루 종일 외근을 하며 고객 회사를 방문하는 일입니다. 그만큼 한국제품들을 많이 만나게 되죠. UL의 인증은 받기도 어렵지만 유지하는 것도 쉽지 않다고 정평이 자자합니다. 하지만 한국 기업들은 한번 인증을 받으면 경고조치를 받는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그만큼 제품관리에 철저한 거죠. 그럴 때 한국제품의 자부심을 느낍니다.”

뉴스방송팀 강대석 기자(TV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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