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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증 부르는 중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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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나는 중국을 좋아하던 사람이었다. 한데 이젠 중국을 혐오하는 사람이 돼 버렸다."

베이징(北京)의 한 한국인 친구의 푸념이다. 과거에 그는 '모화(慕華)' 그룹에 속했었다고 말했다. 고난의 역사를 딛고 새로 출발한 사회주의 중국에 대한 기대, 저변이 무한대처럼 넓은 중국 문화에 대한 애정 등이 그의 예전 사고를 지배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중국에 대한 이 같은 호기심과 친근감이 최근 들어 모두 사라져 버렸다고 한다. 나아가 이젠 중국을 싫어하는 '혐중(嫌中)'그룹의 일원임을 자처했다.

이 친구만의 생각이 아니다. 요즘 중국에서 살고 있는 한국인에겐 중국인에 대한 피로감이 쌓여 가고 있다. 결정적 계기는 중국이 고구려사를 자국의 역사로 편입하려는 시도 탓이다.

중국 정부와 언론 매체가 번갈아 나서면서 내세우는 고구려사에 대한 왜곡은 이만저만한 억지가 아니다. 관영 통신사와 공산당의 통제를 받는 중국 언론들의 발표 내용을 들여다 보면 울화를 넘어 '중국이 도대체 이렇게까지 할 이유가 뭘까'라는 안타까움이 앞선다.

중국이 고구려사를 자국사로 해석하는 근거는 고구려가 중원의 왕조에 조공(朝貢) 했으며 책봉을 받은 임금(君)과 신하(臣)의 관계였다는 점에 모인다. 그러나 조공을 일종의 국제 무역관계로 파악하고 책봉과 연호 사용을 당시 국제 무대의 역학관계 상에서 들여다 보는 건 학계의 상식이다.

또 조공과 책봉으로 대외 관계를 인식한다면 일본과 류큐(流球)국, 베트남을 비롯한 동남아는 모두 중국의 영토이자 저들의 부속 정권으로 확대 해석할 수 있다. 나아가 청대(淸代) 중국 땅의 황제를 만나기 위해 조공의 형식을 밟았던 스페인 등도 모두 중국의 부속 정권이라 할 수 있다.

늘 부닥치는 문제지만, 중국의 일반 국민은 대부분 이상한 자만감이 있다. '주변의 작은 나라들은 예전에 우리한테 조공을 바치던 속국'이라거나 '지금 우리가 못살지만 한때는 주변국 모두를 통치했다'는 식이다.

이러한 대중적인 역사 인식의 오류는 중국 공산당의 역사 정리 작업에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는 느낌이다. 고구려사뿐 아니라 베트남과 몽골, 신장(新疆), 티베트, 인도, 러시아, 광시(廣西) 장족(壯族)자치주 등 주변국 내지는 이들과 연계되는 자국 내 소수민족에 대한 역사를 모두 중국사로 간주하려는 작업도 진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러니컬한 것은 중국이 요즘 내세우는 대외 관계의 틀이 '화평굴기(和平起)'라는 점이다. 주변국과 세계의 다른 나라들에 위협으로 간주되지 않는 평화의 세력으로 일어서겠다는 공언이다.

중국 정부가 올해 초 선보인 이 대외관계의 틀을 말 그대로 믿었던 바는 아니다. 하지만 화평굴기를 외친 지 얼마 안 돼 선보이고 있는 중국 정부의 역사에 대한 태도와 인식은 매우 이율배반적이다.

한국인에게 중국인은 항상 이중적인 모습이었다. 문화 대국으로서의 '중화(中華)'가 그 하나고, 다른 하나는 '욕심 많고 음흉하다'는 두 모습이다. 한국에선 중국에 대한 친근감 못지않게 이제는 중국인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커져 가고 있다. 물론 고구려 문제로 인한 요소가 크다. 중국에 대한 반감으로 퍼져갈 수도 있는 7000만 남북한 이웃의 대중(對中) 인식을 되돌리기 위해 중국은 중화주의적 구태(舊態)보다는 미래지향의 진취적 모습을 보여야 한다.

유광종 베이징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