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공권력의 권위 바로 세우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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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지난 일요일 성폭력 용의자를 검거하려던 두명의 강력계 형사가 용의자의 흉기에 희생된 안타까운 사건이 발생해 전 국민을 공포와 충격 속으로 몰아넣었다. 이에 앞서 교도소에서 재소자가 교도관을 둔기로 때려 사망케 한 사건도 우리의 가슴을 아프게 하기에 충분했다. 최근 범죄자를 체포하고 형 집행을 담당하는 업무를 수행하는 공무원들을 무시하는 일련의 사건이 발생한 것은 공권력에 대한 도전이자 사회의 안정을 위협하는 심각한 공격행위로 결코 용납할 수 없다.

현행법을 위반한 범죄자를 처리하는 절차를 보면 경찰에서는 조사를 담당하고 검찰은 기소권을 행사하며 법원이 재판을 통해 형을 확정하면 교정기관에서 형을 집행한다. 이들 기관은 범죄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상호 유기적으로 연관된 하나의 시스템을 이루고 있다. 이러한 형사사법체계는 국가로부터 권력을 위임받아 법 위반자들에 대해 처벌과 통제를 하고 공권력을 행사함으로써 사회의 안정과 발전을 가능하게 한다. 따라서 이들 형사사법기관에 종사하는 공무원들의 정당한 업무 수행에 대해 권위를 인정하고 명령에 따르는 게 전체 사회 유지와 성장을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하다.

경찰관 두명이 희생된 사건이 어떻게 발생했고, 왜 이런 상황을 막지 못했는지에 관해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우선은 흉기를 소지하고 있는 범인을 체포하러 간 형사들이 상대를 제압할 수 있는 총기를 왜 휴대하지 않았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많다. 경찰관 총기 사용의 법적 근거인 현행 경찰관직무집행법 제10조 4항(무기의 사용) 규정은 모호하고 현실성이 매우 떨어진다. 따라서 일선 경찰관들에게 적절한 지침이 되지 못하고 있다. 실제로 범인과 부딪히기 전에 얼마나 위험하고 흉악한지를 파악하고 어떠한 흉기를 갖고 있는지를 예측해 총기 휴대 여부를 결정하기는 쉽지 않다. 문제의 조항은 사형과 무기, 장기 3년 이상의 징역이나 금고에 해당하는 죄를 범하거나 범했다고 의심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는 자가 ^경찰관의 직무 집행에 항거하거나 도주하려고 할 때 ^제3자가 그를 도주시키려고 경찰에게 항거할 경우 이를 방지하거나 체포하기 위해 무기를 사용하지 아니하고서는 다른 수단이 없다고 인정되는 상당한 이유가 있을 때 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는 불과 몇 초의 짧은 순간에 정확하게 판단해 행동하지 않으면 생명이 위태로운 범죄 현장에서는 명확한 지침이 되지 못한다. 그래서 일선 경찰관들은 총기 사고가 발생하면 여론의 비난과 언론의 질책을 감수해야 하고 경찰 자체의 내부 보고와 감찰활동을 견뎌내야 하는 후폭풍이 무서워 차라리 맨몸으로 현장에 출동하는 게 속 편하다고 항변하고 있는 것이다.

경찰관의 아까운 목숨이 희생되는 서글픈 사건이 재발하지 않기 위해서는 총기를 사용할 수 있는 구체적인 강력범죄 유형을 예시하는 등 명확한 기준을 현실에 맞게 개정해야 한다. 또 범죄 현장에 출동할 때 가볍고 성능이 뛰어난 방탄조끼나 방검복 등 안전장비를 착용하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지속적이고 체계적인 사격교육을 통해 총기 사용에 대한 자신감을 배양하고 전자충격총이나 최루가스분사기 등의 비살상 무기들을 상황에 맞게 사용해 범인을 검거하는 능력을 향상시킬 필요가 있다. 이 밖에 범죄자에게 희생되는 경찰관 유가족의 생계와 자녀 교육을 부담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현행 보상금을 상향 조정하고 흉악범죄자를 상대하는 경찰관의 위험한 업무 성격을 감안해 국가가 상해보험도 반드시 들어줘야 한다.

우리 사회는 민주화와 자율화의 바람을 타고 권위주의가 타파되면서 인권의식과 국민의 정치 참여 욕구가 점차 높아지고 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반드시 지켜야 할 공권력의 권위를 우습게 여기는 풍조가 팽배하고 있다. 공권력과 경찰력이 무너져 치안 부재가 발생하고 국가 기강이 흐트러지면 선진복지국가 건설이라는 목표를 달성할 수 없다. 사회 안정과 발전을 위한 기본 전제는 무너지고 있는 공권력의 권위를 다시 세우는 것임을 정부와 국민은 또렷하게 인식해 특단의 대책을 세워야 한다.

곽대경 동국대 교수.경찰행정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