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술 길잡이]소유냐 존재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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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냉전종식 이후 전세계는 자본주의적 시장경제가 승리한 것처럼 보였다.

프란시스 후쿠야마가 '역사의 종말' 이란 책에서 주장한 것처럼 이제는 자본주의적 시장경제를 끝으로 더 이상 진보할 수 없는 '완성된 상태' 에 도달했기 때문에 더 이상의 역사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인식이 지식인들 사이에 확산되기도 했다.

그러나 냉전 이후 시장을 절대화해 인류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결과는 서서히 그림자를 드리우기 시작했다.

더 이상 국가의 역할은 없으며 오로지 모든 사회적 문제를 시장에서의 경쟁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을 통상 '신자유주의' 로 규정한다.

사회적 평등과 책임을 전제하고 있는 고전적 자유주의와 구별하기 위한 개념이다.

이같은 '신자유주의' 속에서 빈부격차와 인종.지역갈등이 야기되고 있어 결국엔 자본주의의 수정과 새로운 대안체제가 요구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신자유주의에 대한 정치.경제학적 비판을 시도하고 있는 책은 많다.

그러나 고전적인 도서로서 수험생들이 크게 부담없이 읽을 수 있는 책으로 에리히 프롬의 '소유냐 존재냐' 를 꼽을 수 있다.

비록 치밀한 정치.경제학적 분석을 시도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시장과 물신주의가 지배하는 현대 문명에 대한 성찰적 비판을 시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오히려 논제로 출제하기에 적합할 수 있다.

이 책의 출발점은 '소유양식' 과 '존재양식' 이다.

소유양식이란 현대사회의 물질적 소유와 권력, 일상생활에서의 탐욕과 폭력이 지배하는 삶의 양식을 가리킨다.

현대사회에서는 인간을 물질적 가치 척도로 평가하고 있어 인간의 존재근거를 물질적 관계에서 찾는다.

이는 결국 사회의 주체를 물질적 관계로 환원시키는 것이어서 살아있는 것이어야 할 인간관계를 죽어있는 물질적 관계로 타락시킨다.

이 책에서 대안으로 설정하고 있는 것이 존재양식. 소비주의 성향을 넘어 창조적인 삶과 상호이해를 기반으로 한 삶의 태도를 말한다.

구체적으로 그리스도.마르크스.슈바이처 등과 같은 성인들의 삶에서 진정한 존재양식을 읽어낸 다음 휴머니즘적인 존재양식을 제안하고 있다.

그렇다고 이 책이 종교적 인도주의에 머무르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사회구조가 동시에 변혁돼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충분하지는 않지만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현재 부닥치고 있는 다양한 문제를 제기한다.

자본의 집중화와 '미소짓는 파시즘' 을 어떻게 피할 수 있는가, 자유시장경제의 한계를 어떻게 넘어설 것인가, 무한한 성장을 넘어서는 정신적 풍요는 어떻게 가능한가, 관료제의 한계를 벗어나 어떻게 개인의 창의성을 확보할 것인가 등 곧 바로 논제로 출제할 수 있는 쟁점들이다.

현대사회에 대한 문명적 비판과 아울러 현대사회 문제를 해결하는데 인간의식과 사회구조의 관계에 대한 논변을 요구하거나 자본주의적 시장경제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요구하는 논제도 출제될 수 있다.

김창호 학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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