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부동산 정책, 스스로 퇴로를 차단하면 안 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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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이 어제 “현 단계에서 추가적인 부동산 대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윤 장관은 “총부채상환비율(DTI) 확대는 검토한 바 없다”고 못 박았다. ‘출구전략의 준비는 검토하되 시행은 시기상조’라는 정부 입장의 연장선에서 나온 발언으로 보인다. 또 규제를 강화할 경우 자칫 간신히 회복 중인 부동산시장에 찬물을 끼얹을 수도 있다. 아직도 잔뜩 쌓인 지방 미분양 아파트의 처리 문제도 걱정될 것이다. 윤 장관의 이런 입장을 충분히 이해하면서도 지금 시기에 이처럼 못을 박는 발언은 성급했다고 본다.

무엇보다 최근 몇 달새 부동산 시장이 매우 불안정해졌기 때문이다. 주택담보인정비율(LTV)을 60%에서 50%로 내리는 조치를 취했음에도 불구하고 주택담보대출은 줄어들긴커녕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 부동산 시장이 달아오른 2006년보다도 더 늘었다. 정부는 또 집값 상승세가 완화되고 있다지만 서울 강남 재건축에서 시발된 집값 상승 현상이 버블 세븐 지역으로 급속히 확산됐던 것도 사실이다. 일부 지역 집값은 역대 최고가를 되찾았다는 보도도 잇따랐다. 부동산 시장이 어떻게 될지 딱 부러지게 단정하기 어려운, 아주 미묘한 국면이라고 본다. 사정이 이렇다면 경제사령탑이 어느 한쪽으로 단정해선 안 된다. 확실해질 때까지는 정책당국의 말은 바위처럼 무거워야 한다. 만의 하나 경제사령탑의 경솔한 언급으로 집값이 폭등하고 주택담보대출로 인한 가계 부실이 심화된다면 어쩔 작정인가.

또 DTI 규제는 긍정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이는 부동산 경기와 무관하게 필요한 조치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소득 이상으로 무리하게 돈을 빌려 이자를 제대로 못 갚는 일은 있어선 안 된다. 게다가 가계 부실 우려는 여전히 높다. DTI 규제를 도입할 경우 지방과 서울 강북지역의 집값이 주저앉는 게 걱정된다면 버블 세븐 지역만이라도 시행할 필요는 있다고 본다. 윤 장관은 “지금 부동산 시장은 정상화되어 가는 과정”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게 생각하더라도 규제는 없다는 식으로 퇴로를 막은 건 잘못됐다. “집값이 더 오르면 규제할 수 있다”는 식의, 여지를 남겨두는 게 옳았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