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IMF 1년]2.달라진 사회풍속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1인당 국민총생산 (GNP) 1만달러에 경제협력개발기구 (OECD)가입, 선진국 진입이라는 환상은 IMF 파도 앞에 산산조각이 났다.

그 자리에는 대량실업과 노숙자 등 을씨년스러운 단어들이 뒹굴고 있다.

IMF 이후 지난 1년동안 우리 사회는 엄청난 변화를 겪고 있다.

강요된 실업과 소득 감소로 사회 전반에 그늘이 드리워졌고, 완전고용.평생직장도 옛 이야기가 됐다.

가정이라는 울타리가 해체되며 노숙자가 늘어나고 생계형 범죄가 급증하는가 하면 대학을 졸업하고도 갈 곳 없어 방황하는 젊은이들이 수십만명을 헤아리고 있다.

중소 건설업체 사장이던 朴모 (51) 씨는 아내와 자녀들이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

지난해 초까지만 해도 도급순위 1백위 안에 들 정도로 탄탄했던 회사가 연말 자금난을 견디지 못하고 부도난 후 가족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집은 채권자에게 넘어갔고 생활전선에 뛰어든 부인 (48) 은 지난해 초 일자리를 구하러 나간 후 소식이 끊겼다.

대학을 졸업한 아들도 어디서 무슨 일을 하는지 행방을 알 수가 없다.

朴씨는 생활고를 견디다 못해 지난 5월부터 종묘공원에서 노숙하고 있다.

실업 태풍은 먼저 가정 해체를 몰고왔다.

지난 9월말 현재 실업자수는 정부 통계로만도 1백57만명. 지난해 11월 이후 하루평균 3천7백명씩 실직자가 생겨나고 있는 셈이다.

가계 부도로 지난해 전국에 1천여명이던 노숙자가 최근 서울시에만 2천5백여명으로 늘었고 연말까지는 3천3백명을 넘어설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중에는 여성과 가족 노숙도 상당수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여관.셋방을 전전하는 '잠재 노숙자' 를 합하면 전국적으로 5만여명의 '홈리스족' 들이 존재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현대경제연구원의 최근 설문조사에선 중산층에서 밀려났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전체의 20.4%에 달했다.

통계청이 9월 발표한 '도시근로자 소득조사' 에 따르면 하위 80%의 소득이 지난해 상반기보다 5.5~14% 줄었다.

반면 상위 20% 소득은 오히려 2.3%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서울서초구방배동 B초등학교 5학년3반 (42명) 은 학기초 2명이던 무료급식자가 최근 들어 6명으로 늘었다.

새로 무료급식자가 된 4명중 2명은 아버지가 실직했고, 1명은 경제난으로 어머니가 가출한 경우. 이들은 한달 3만원 내외의 점심값 (우유 포함) 을 못내 학교에서 무료급식을 해주고 있다.

보육원과 아동보호시설에는 버려진 아이들이 지난해에 비해 2배 이상 늘었고 생계비를 줄이기 위해 가족들과 떨어져 사는 'IMF형 이산가족' 도 생겨나고 있다.

실직과 경제난에 따른 이혼도 급증 추세. 서울가정법원에 따르면 올들어 9월까지 협의이혼 건수는 지난해 같은기간 7만5백75건보다 34.4% 늘어난 9만4천8백98건에 이른다.

생계 위협에 내몰린 극빈계층의 자포자기형 범죄도 잇따라 지난 7월 보상금을 타기 위해 아버지가 요구르트에 독극물을 넣어 아들을 살해한 사건에 이어 초등학생 아들의 손가락을 절단한 충격적인 사건도 일어났다.

대검에 따르면 올들어 9월말까지 살인.강도 등 5대 범죄가 지난해 같은기간보다 10% 늘었고, 이중 강도.절도는 각각 32.1%.26% 증가했다.

감봉과 실직으로 개인 신용불량자는 올들어 지난 8월말까지 2백만명에 달해 지난해 말보다 55만명 (38.7%) 이나 증가했다.

지난 한햇동안 4건이던 법원의 소비자 파산선고는 올 10월까지 무려 27배나 많은 1백8건에 달했다.

극심한 취업난으로 신풍속도 나타났다.

서울의 자동차 등록대수는 지난해말 이후 지속적인 감소세를 보여 올들어 지난달까지 모두 4만3천7백여대가 줄었다.

그러나 유지비가 적게 드는 8백㏄ 미만 경차는 9월 들어 한달새 1천6백90대가 늘었다.

한정식.횟집 등 고급음식점은 줄고 단체급식과 서민형 식당은 늘고 있다.

서울시의 경우 객석 면적 1백㎡ 이상 대형 음식점은 올 상반기중 1천6백8개가 문을 닫았고, 1백㎡ 이하 중.소형 음식점은 오히려 2천개 늘었다.

신동재.이무영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