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입양팝스타 조디 러셀 모국 방문…생모 이미 숨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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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당신이 없으면 이 세상 모든 것이 무의미해요. 공주같은 신발을 신고 원하는 건 뭐든지 얻을 수 있지만 어느 것도 나를 웃게 할 수는 없어요. " 지난 5일 충남부여군외산면 한 야산의 허름한 묘지앞. 하얀 옷차림의 숙녀가 눈물을 흘리며 묘지를 향해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언젠가는 어머니를 만나 부르겠다고 만든 노래. 그러나 노랫말은 독백처럼 흩어지고 말았다.

22년을 그려온 어머니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지난 76년 다섯살때 미국으로 입양됐던 李명희 (27.여) 씨. 이제는 조디 러셀. 그녀는 지난 5월 '저스트 인 타임' 이란 타이틀의 앨범을 발표하고 로스앤젤레스.시카고.뉴욕 등지에서 활동중인 가수다.

李씨는 정부와 경희대 부설 밝은사회운동국제클럽 (GCS) 이 역경을 딛고 지역사회에서 성공한 해외 입양아 29명을 초청해 벌인 '고국문화체험'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지난달 19일 한국에 왔다.

22년만에 처음 온 어머니의 나라. 어머니를 만나지 않고는 그대로 돌아갈 수 없었다.

공식 일정이 끝나갈 무렵 李씨는 입양전 찍은 흑백사진 한장과 입양을 알선한 한국사회봉사회가 작성한 영문서류철 하나에 의지해 생모를 찾아 나섰다.

그러나 수소문해 찾아간 어머니 孫순분씨는 묘지에 묻힌 상태였다.

지난해 겨울 충남부여군 한 양로원에서 68세의 나이로 숨졌던 것. 李씨는 묘지앞에 꽃다발과 자신의 데뷔 앨범에 사용한 사진 한장을 놓고 이별때처럼 서럽게 상봉의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교사였던 양부모에게 입양돼 노던일리노이대에서 작곡을 전공하고 94년부터 2년동안 명문 프로농구단 '시카고 불스' 의 치어리더를 거친 李씨. 그후 직접 KPC (Korean Princess in Christ) 란 음반회사를 차려 사장이 됐다.李씨의 첫 앨범은 교포들의 성원에 힘입어 시험 발매에서만 10여만장이 팔렸고 내년 2월에는 미 전역에 배포될 예정이다.

이 앨범에는 '당신이 없으면…' 으로 시작하는 사모곡 (思母曲) 'None of This' 도 실려 있다.

"칠순이 가까워졌을 어머니가 돌봐주는 사람 하나없이 지내고 있지는 않는지가 가장 걱정스러웠어요. 가족처럼 함께 지낸 분들이 있었다니 참 다행입니다. "

李씨는 혈육은 아니지만 어머니와 함께 살았던 사람들이 치매증세가 심해진 어머니를 지난해 5월 양로원에 보냈다는 사실을 양로원을 통해 알게 됐다.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저와 같은 처지에 있는 입양아나 고아들을 위해 자선공연을 할 생각입니다. " 6일 미국으로 떠난 李씨는 한국어를 배워 곧 돌아오겠다는 다짐을 잊지 않았다.

김성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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