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북’ 그후 … 워싱턴이 달라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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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전격 방북이 북핵 문제로 경색된 북·미 간 관계를 풀어낼 모멘텀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미 정부는 북한에 억류된 미국 여기자 2명의 석방이 목적이었고, 인도적 차원의 사적인 방문이었다고 거듭 주장했다. 그러나 클린턴 전 대통령이 미국으로 돌아온 지 채 1주일도 안 돼 고위 당국자들의 입에서 북·미 관계 개선 가능성을 점치는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다.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은 9일 (현지시간) CNN과의 인터뷰에서 남편인 클린턴 전 대통령의 방북과 관련해 “우리는 북한(의 미래)에 대해 아무런 계획을 가지고 있지 않다 (We have no designs on North Korea)”며 “이 같은 뜻을 (북측에) 전달하는 것이 중요한 일이었다”고 말했다. 클린턴 장관은 또 북한의 핵무기 수출 가능성을 우려한 뒤 “클린턴 전 대통령의 이번 방문은 북한이 미국과 긍정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음을 깨닫는 계기가 되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이번 주로 예상되는 오바마 대통령에 대한 보고 이전에 클린턴 전 대통령을 직접 만난 제임스 존스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김정일-클린턴’ 회동이 여기자 석방 이상의 의미가 있었음을 시사했다. 그는 휴일인 9일 CBS·NBC 등 주요 방송에 연거푸 출연해 “두 사람의 대화는 상호 존중하고 진심 어린 분위기에서 진행됐다”며 “북한은 미국과 새롭고 더 나은 관계를 원하고 있다는 점을 내비쳤다”고 공개했다. 존스 보좌관은 이어 “김 위원장은 북한 조직을 완전하게 통제하고 있으며, 매우 사리에 맞게(very reasoned) 발언했다”고 말했다. 워싱턴 외교가에선 4성 장군 출신으로 신중한 성격의 존스 보좌관이 대통령 보고 전에 공개적으로 이같이 발언한 것을 이례적으로 보고 있다. 특히 김정일 위원장에 대한 평가는 ‘예측과 통제가 불가능한 인물’로 묘사하던 부시 전 행정부 때와 크게 달라진 것이다.

클린턴-김정일 회동의 의미를 너무 확대 해석해선 안 된다는 시각도 없지 않다. 한국 외교부의 한 고위 관계자는 클린턴 방북과 관련해 “미국 측에서 계속 나오는 메시지는 정치적·외교적 의미가 없다는 것”이라며 “많은 사람이 변화의 소지가 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향후에도 영향을 줄 가능성이 적다고 본다”고 밝혔다.

그러나 오바마 행정부는 북한과의 협상 여지를 계속 열어놓고 있고, 워싱턴의 대북 분위기도 달라지고 있다. 미 국무부는 북핵 협상 진전을 위해 뉴욕 주재 북한대표부와의 대화 채널을 활용하는 한편 전미외교정책협의회·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등 민간차원(트랙 2)에서 북측 인사들을 초청해 접촉 기회를 넓히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또 지난주 하와이에서 진행된 한·미 6자회담 수석대표(위성락-성김) 회동에서 6자회담을 포함해 북핵 협상 재개에 따른 공동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고 워싱턴의 고위 외교소식통이 전했다.

워싱턴=김정욱 특파원, 서울=예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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