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주영회장 면담 의미]김정일,대북투자 보증 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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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북한 김정일 노동당총비서가 정주영 (鄭周永) 현대명예회장을 만난 것은 대북 투자를 직접 보장한다는 다짐으로 평가된다.

만남은 이밖에도 여러 가지 의미를 담고 있으며 적지않은 파장도 예상된다.

김정일 자신은 '남조선 기업인과의 첫 만남' 을 통해 북한 최고 지도자로서의 면모를 우리에게 본격적으로 과시하기 시작했다.

◇ 김정일의 변화 = 김정일은 김일성 (金日成) 사망 (94년 7월) 이후 외부인사와의 접촉을 꺼려왔다.

지난해 10월 노동당총비서 추대와 올 9월 국방위원장 재추대로 명실상부한 최고자리에 올랐지만 마찬가지였다.

오히려 김영남 (金永南) 을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자리에 앉혀 외부인사 접견을 도맡게 했다.

이런 김정일이 鄭명예회장과 현대의 대북 프로젝트를 논의했다는 것은 남북경협에 대한 북측의 관심을 확인케 한다.

무엇보다 김정일 자신이 '어떻게든 한번 만나야겠다' 는 결단을 내렸을 게 분명하다.

현대의 대북투자 구상을 외면하기에는 북한경제가 처한 현실이 너무 절박하다는 점이 가장 크게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최근 내각결정을 통해 김정일의 60회 생일을 맞는 2002년까지 새 경제계획을 추진키로 하는 등 '먹는 문제' 해결과 경제재건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부패한 외화벌이 종사자를 처형하는 등 남한자본 유입에 대비한 정지 (整地) 작업도 마쳤다.

핵.미사일 문제로 먹칠한 국제사회의 이미지 전환도 겨냥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우리 국민에게 부정적으로 비친 김정일의 면모를 바꾸기 위해 이번 면담의 극적 효과를 높였다는 관측도 있다.

◇ 포용정책 화답 = 우리 정부의 대북 포용.정경분리정책에 북한 당국이 일단 화답 (和答) 해온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현대의 대북 투자사업이 장기간에 걸쳐 대규모로 추진될 사안이란 점에서 남북관계에 미칠 파급 또한 만만치 않다.

실현 가능성은 차치하더라도 김정일이 유전개발 등 경협의 구체적 사안을 언급했다는 점은 현대의 대북 사업에 무게가 실릴 것임을 의미한다.

대북 투자에 관망자세를 취해온 삼성.대우.LG 등에도 자극이 될 것이 분명하다.

북한 당국도 김정일의 '교시 (敎示)' 가 떨어진 만큼 경협에 속도를 더할 수 있다.

아태평화위 등 개방파의 발목을 잡고 있는 군부쪽의 대남 (對南) 강경세력 입지도 약화될 것이기 때문이다.

◇ 전망 = 무엇보다 북한의 '남조선 당국 배제' 원칙 수정여부가 주목된다.

이번 성과가 본격적인 남북교류와 당국간 대화재개로 연결되기 위해선 북한 정책당국의 태도변화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현대와 다른 기업의 대북진출이 과당경쟁을 피하면서 순조로이 이뤄진다면 남북 서로에 보탬이 되는 협력사업이 가능하다.

북한은 경제재건의 토대를 마련할 수 있고 우리 기업들은 IMF 경제난을 벗어나는 또다른 출구를 모색할 수 있다.

그러나 현대의 대북사업 구상이 밀어붙이기식으로 이뤄지는데 대한 우려도 있다.

김정일 면담에 들떠 일사천리식의 사업성사를 기대하기보다 확실한 투자보장 등 '돌다리도 두들겨 건너는' 신중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영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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