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수가 썩고있다]중.무분별한 개발·낭비 현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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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온천.생수.농공용수 등 무분별한 지하수 개발.낭비로 인해 지하수가 빈혈에 걸려있다.

값진 지하수가 허드렛물로 낭비되거나 개발이익에 이용돼 무자비하게 난도질 당하고 있다.

이같은 지하수 낭비는 지하수 수위를 급격히 낮춰 지반침하 현상을 초래하고 삼투압 현상과 같이 지표의 침출물을 빨아들이는 등 오염을 부추겨 문제의 심각성을 더해주고 있다.

한국수자원공사 지하수부 최영진 부장은 "우리나라의 지하수 개발 가능량은 연 1백36억t 정도인데 지난해 이용량은 26억t으로 해마다 3억t이 증가하는 추세" 라며 "산술적으로 30년후엔 지하수도 고갈될 수 있다" 고 경고했다.

앞으로는 개발 못지 않게 낭비 요인을 철저히 차단하는 제도적인 뒷받침이 절실하다는 것.

◇ 온천 개발 = 속리산 국립공원을 안고 있는 충북괴산군송면. 지난 9월부터 연일 때아닌 '피켓 시위' 가 벌어지고 있다.

문제의 발단은 송면을 가로지르는 화양천 상류에 건설중인 B온천 개발 때문. 지난 13일 기획취재팀이 이곳 현장을 찾았을 때도 공사가 중단된 현장 앞에 30여명의 주민들이 외부 사람의 출입을 막고 있었다.

황폐하게 속살을 드러낸 3천여평의 공사장은 여기저기 발견되는 폐공들로 흉터 투성이였다.

주민대표 허상씨는 "발견된 것은 세개지만 적어도 7~8개의 시추공이 더 숨겨져 있을 것" 이라고 말했다.

공사장 부근에서 2백여m 계곡을 따라 올라가자 온천공이 나왔다.

대충 거적을 덮어 은폐해 놓은 취수정에선 온천수가 철철 흘러나오고 있었다.

공사계획대로라면 이 취수공을 통해 지하 7백m에서 뽑아올려지는 5천t의 물이 매일 낭비되고 있는 것이다.

자동차로 10분 거리의 경북상주시화북면 용화.문장대 온천개발지. 온천수의 낭비는 이곳도 마찬가지였다.

주민 반발로 공사가 중단된 채 방치돼 20도가 넘는 온천수가 매일 6천여t씩 방류되고 있었다.

청주환경연합 박창재 부장은 "지자체에서 제대로 지하수 환경영향 평가만 했어도 이처럼 무분별한 개발은 없었을 것" 이라며 "두 지역 모두 완공이 되면 인근 지역의 지하수 고갈과 지반 침하는 뻔한 일" 이라고 내다봤다.

온천수의 무자비한 개발로 급격히 수위가 낮아지고 있는 곳은 경남 창녕군에 있는 부곡온천. 70도가 넘는 국내 최고온 온천인 이곳엔 25개의 온천장이 밀집해 있다.

이러다 보니 지난 73년 70m였던 지하수위가 지난 20여년간 1백60m나 하강, 현재 2백30m로 내려가 있다.

특히 이곳은 냉수를 확보하지 못해 생활용수까지 온천수를 식혀서 쓰는 등 지하수 낭비로 인한 피해가 극에 달해 있다.

현재 온천이용 허가를 받아 운영중이거나 개발중인 온천은 총1백5개에 이르지만 제대로 된 환경영향평가를 받은 곳은 단 한곳도 없다.

◇ 먹는샘물 (생수) =질 좋은 지하수가 허드렛물로 낭비되는 대표적인 곳이 '광천수의 고향' 인 충북청원군북일면초정리. 먹는샘물 (생수) 업체의 과당 경쟁에다 마을 사람들까지 가담한 무차별 지하수 개발로 수질.수량이 최근 급격히 악화되고 있는 곳이다.

기획취재팀은 14일 오전 이곳을 찾아 10여곳의 상점을 둘러봤다.

안타깝게도 한 집도 빠짐없이 수도꼭지를 틀어놓고 광천수를 뽑아내고 있었다.

아무나 '공짜' 로 물을 퍼가도 개의치 않았다.

광천수임을 내세운 일종의 호객용인 셈. 한국자원연구소 성익환 박사는 "여의도만한 땅에 무려 2백80여개의 관정이 밀집해 너도 나도 광천수를 뽑아내고 있다" 며 "이 때문에 대수층이 완전히 파괴돼 수질까지 의심스럽다" 고 말했다.

최근들어서는 보존.관리에 앞장서야 할 청원군까지 광천수 개발에 가담, 이 물로 목욕까지 하는 대형 위락시설 '약수타운' 을 건설하고 있어 빈축을 사고 있다.

◇ 농.공업용수 = 농업용수를 개발하는 농어촌진흥공사가 마구잡이로 지하수개발에 앞장서 관련예산 따먹기에만 급급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농진공이 70년부터 뚫어 이용하고 있는 관정은 농업용수용만 1만6천7백여개. 용도 폐기된 폐공을 합치면 숫자는 2배 이상 불어난다.

해마다 1천여개 이상을 뚫은 셈. 전문가들은 "농진공이 확보된 예산을 소진하는데 열을 올리지 말고 뚫어놓은 관정을 제대로 관리했다면 지금 남아있는 관정의 30%만으로 충분하다" 고 지적한다.

가뭄때 관정을 뚫어놓고 방치했다가 다시 갈수기가 오면 새로운 관정을 시추한다는 것.

◇ 지하철.골프장 등 = 서울 지하철 역사에서는 매일 13만t의 지하수가 방출돼 이중 90% (11만t) 이상이 그대로 버려지고 있다.

이 정도면 서울 시민 1인당 10ℓ씩 공급이 가능한 양이다.

지하철공사 관계자는 "마땅한 활용방안을 마련치 못해 일부 역에서 청소용으로 사용할 뿐 그냥 버려지고 있다" 고 안타까워했다.

이처럼 버려진 지하수는 생활하수와 섞여 하수처리장으로 보내져 하수처리비의 상승요인도 되고 있다.

지하의 맑은 물과 생활하수가 섞여지다 보니 정화에 추가 비용이 발생하는 것이다.

전남의 A골프장. 3년전 골프장이 개발되고 나서는 부근 농지에 물이 말라 농민들이 농사를 포기하고 이주하는 등 때만 되면 '물을 돌려달라' 고 시위를 벌이는 단골 민원현장이다.

이곳뿐 아니라 경기도에 밀집한 골프장 부근도 모두 무리한 지하수 개발 때문에 지하수가 말라가고 있다.

환경영향평가를 받고 있지만 대부분 영세업체들이 맡고 있어 형식에 그치고 있다.

주변 환경에 미치는 영향이 제대로 파악되지 않고 있다.골프장은 스프링클러를 이용, 막대한 양의 지하수를 이용하지만 현재 사용료는 없고 하수처리비만 내고 있는 실정.

중앙일보 기획취재팀〓고종관.정재왈.김태진 기자

제보전화 02 - 751 - 5222~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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