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복지부동도 엽관도 안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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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공무원 인사제도가 강한 개혁의 바람을 맞고 있다.

1~3급의 채용.승진을 심사하는 대통령 직속 중앙인사위가 생기고 실.국장의 30%인 2백여 고위직에 전문가 등 외부인사도 채용될 수 있다는 '계약직 개방제' 가 실시된다는 것이다.

내년부터 시작되는 연봉제 (실.국장) 와 성과급제 (중.하위직) 까지 합치면 공직사회는 오랜 무풍 (無風) 의 시절을 보내고 상당한 변화에 직면하게 됐다.

복지부동.무사안일이란 지적을 받는 공직사회에 대해 국민은 강도높은 개혁을 주문하고 있다.

특히 경제위기 극복엔 고위직의 정책 결정.집행과 공직자의 선도적 분위기가 큰 영향을 미치므로 이는 더욱 시급한 과제다.

그래서 두가지 개혁조치는 명분과 원칙에서 설득력을 갖는다 하겠다.

중앙인사위는 현정권의 대선공약이어서 공약이행이란 측면도 있다.

하지만 두 제도는 잘못 운영되면 공직사회의 안정과 기반을 뒤흔드는 심각한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때문에 정권담당자들과 정부는 입안보다 시행이 중요하다는 인식을 다져야 한다.

중앙인사위의 성패는 공정성과 투명성에 달려 있다.

지금까지 장관들이 의뢰하는 공무원 인사심사는 행자부 (옛총무처) 인사과의 중앙승진심사위에서 맡아 왔는데 기구의 위상이 낮아 작업이 형식적으로 진행됐다는 지적이 있어 왔다.

새 위원회는 대통령 직속이고 위원장이 의뢰자와 동격인 장관급이어서 심사가 보다 엄정하게 진행될 수 있다.

그러나 이 점은 동전의 앞뒤와 같다.

5명의 위원이 있다고 하나 대통령 직속이므로 정권의 입김이 개입돼 공정성이 훼손된다면 개악 (改惡) 의 결과가 될 수 있다.

지금도 정부산하단체에는 정치적 낙하산인사가 문제되고 있는 판에 공무원에도 미국 정치의 엽관제 (獵官制.spoils system.정권획득세력이 관직을 독차지하는 것) 같은 것이 등장해 공직사회의 근간이 흔들릴까 걱정도 된다.

'계약직 개방제' 로 채용되는 외부인사들은 중앙인사위의 객관적인 심사를 거쳐 자리가 요구하는 전문성과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여기에도 정치적이거나 이권 (利權) 적인 입김이 스며들면 이 제도는 오히려 공직오염의 낙하산 통로가 될 것이다.

벌써부터 외부인사들이 과연 잘 적응할 지, 내부파와 외부파의 갈등은 얼마나 심할지, 그로 인해 직업관리제라는 관료제도의 뿌리가 상하지나 않을지 우려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이 대목에선 무엇보다 내부 공무원들의 자세가 관건이다.

이제 자동승진.평생안위의 '철밥통' 시절은 끝내야 한다.

공무원들도 자리를 놓고 외부전문가와의 경쟁을 회피하지 않겠다는 발상의 전환을 이뤄야 한다.

여건으로 볼 때 공부하고 노력한다면 오히려 내부 공무원들에게 기회가 훨씬 많을 것이다.

뉴질랜드같은 나라의 공직혁명 규모로 보면 두 제도는 겨우 개혁의 걸음마 정도에 불과하다.

사회의 다른 분야에 비해 공직사회가 보이는 개혁의 후진성에 공직자들은 부담과 책임을 느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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