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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테네로 돌아온 평화 제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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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대낮의 태양보다 더 뜨겁고 밝은 별이 하늘에 없는 것처럼 올림픽보다 더 위대한 경쟁은 없다." 기원전 5세기 그리스의 시인 핀다르가 올림픽의 정신을 찬양한 말이다. 고대 그리스인이 최초로 올림픽을 개최한 지 3000여년, 쿠베르탱 남작의 주도로 근대 올림픽이 아테네에서 부활한 지 3세기 만에 제28회 여름올림픽이 본래의 둥지로 돌아온다.

21세기 초 새로운 국제환경을 배경으로 개최되는 아테네 올림픽은 과연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일찍이 고대 그리스 펠로폰네소스 반도의 도시국가 간에 계속되는 전쟁에 염증을 느낀 도시국가 '엘리스'의 이피토스 왕은 텔파이에 위치한 아폴로 신전을 찾아가 전쟁을 종식시킬 수 있는 지혜를 구했다. 아폴로 신은 선의의 경쟁을 위한 운동경기와 승자를 축하하기 위한 문화축제를 4년마다 개최하도록 계시했고 이피토스 왕은 당시 적대국이었던 스파르타, 피사국의 국왕과 화평조약에 서명한 뒤 올림피아 지방에서 경기를 개최하며 운동경기 시작 전후 1주일을 포함한 한달 동안 일체의 전투행위를 중단키로 합의했다.

올림픽 휴전운동은 이렇게 태동했고 기원전 776년부터 기원후 393년까지 약 1200여년에 걸쳐 4년마다 올림픽이 개최됐다. 운동경기의 부산물로서 평화를 구하려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평화를 일궈내기 위해 운동경기와 문화축제를 창안했다는 데 고대 그리스인의 지혜와 평화에 대한 열망이 서려 있다.

국제사회는 고대 그리스인의 평화애호 정신을 현대적 의미로 승화하기 위해 1994년 겨울올림픽 이래 매번 올림픽 경기를 앞두고 유엔총회에서 휴전 결의를 채택하고 있다. 지구촌 곳곳에서 계속되는 크고 작은 분쟁을 올림픽 기간 동안만이라도 중단시켜 그 불씨를 살려나가자는 희망과 의지의 반영이다. 이러한 평화염원의 정신에 부합하게 남북한 선수단은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 이어 이번 아테네 올림픽 개.폐회식에서도 같은 유니폼을 입고 한반도기를 앞세우며 입장하기로 되어 있다.

IOC.그리스 정부.아테네 올림픽 조직위는 남북한 선수단의 동시입장이 바로 올림픽 평화정신의 21세기판 구현이며 이번 올림픽의 백미가 될 것이라고 극구 칭송하고 있다. 우리는 이런 기대에 부응해 한반도에 평화의 지평을 넓혀 나가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 또 남북한간 스포츠 분야에서의 교류와 협력을 통해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는 단일팀 구성을 목표로 진지한 협의가 이루어지길 바란다.

그러나 아테네 올림픽은 국제사회에 적지않은 도전을 던지고 있다. 냉전 이후 종식될 것으로 기대됐던 국제분쟁은 9.11 테러로 국경없는 전쟁으로 확산되고 있으며 지금 이 순간에도 크고 작은 분쟁이 계속되고 있다. 게다가 올림픽 현장에서의 테러 가능성 때문에 안전대책 마련이 운동경기 못지않게 초미의 관심사로 대두됐다. 이런 상황은 분명 올림픽을 통한 평화 창출이란 고대 그리스인의 이상과는 배치되는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한편 이번 올림픽에서는 역대 어느 올림픽 개최 도시에서도 경험하지 못한 '개최지 정신(spirit of place)'의 체험이 유난히 강조되고 있다. 아테네는 민주주의.인권.법의 지배 등 인류보편적 가치가 태동한 곳이다. 올림픽 성화는 역사상 최초로 아프리카와 남미 대륙을 포함한 5대륙 26개국 34개 도시에 제우스신과 그 부인 헤라신을 대동한 채 평화와 화해, 공존과 관용의 복음을 전파하고 그리스로 돌아왔다.

8일 앞으로 다가온 이번 올림픽의 성공적 개최에 국제사회의 공통된 이해가 걸려 있다. 국가간의 교류와 협력이 시대를 이끌어 가는 동력이 되고 있는 세계화시대의 새로운 위협에 공동 대처하고 전 인류의 축제의 장을 성공적으로 지켜 나감으로써 3000년 전 고대 그리스인이 그토록 갈망했던 평화와 단합이 우리에게도 한걸음 가까이 다가오기를 기대한다.

정해문 주그리스 한국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