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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장원의 알기 쉬운 의학 이야기]녹내장 치료제 썼더니, 속눈썹이 길어지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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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옛말에 ‘소 뒷걸음에 쥐 잡기’란 말이 있다. 기대하지 않았던 일로 큰 수확을 얻은 경우에 쓰이는 말이다. 우리가 복용하고 있는 약물 중에도 원래 기대했던 약의 주 효과가 아닌 부작용이나 부수적인 효과를 이용해 질병을 치료하는 것이 많이 있다.

최근 이와 같은 효과로 관심을 끄는 약물이 있다. 속눈썹을 길고 풍성하게 해 준다는 ‘라티쎄액’이다. 이 약은 지난달 14일 식품의약품안전청에서 승인을 받아 올 4분기부터 국내에서 시판될 예정이라고 한다. 미국에서는 이미 지난해 12월 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아 시판 중이다. 하루 한 번 마스카라 바르듯이 속눈썹 모근 위에 최소 8주 이상 바르면 효과를 본다고 한다. 위쪽 눈꺼풀의 속눈썹 모근에만 사용하도록 개발됐기 때문에 아래쪽 눈꺼풀에는 사용할 수 없다. 매일 1회씩 6개월 바르면 36%에서 속눈썹이 길어지는 효과가 있다는 보고가 있다. 치료를 중단해도 그 효과가 수개월은 지속된다고 한다.

재미있는 것은 라티쎄액이 사실 안압을 낮추는 녹내장 치료제 ‘루미간’과 실질적으로는 같은 약이라는 점이다. 이 점안액을 사용하던 환자들에게서 속눈썹이 길어지는 부작용이 자주 발견된다는 사실에 착안해 미용 목적으로 개발됐다. 약의 성분과 농도는 같지만 점안액 형태에서 바르는 약으로 변경해 시판하는 것이다.

부작용을 이용해 치료제로 개발된 다른 사례로 남성형 탈모 치료제인 ‘프로페시아’가 있다. 같은 성분의 ‘프로스카’란 약은 원래 전립선 비대증의 치료제로 먼저 개발되었다. 이 약제는 전립선에 작용하는 남성호르몬 성분을 억제하는 약물로 전립선의 크기를 줄여 준다. 그런데 이들 약물 사용자에게서 머리카락 숫자가 증가하는 부작용(?)이 보고되었고, 급기야 프로페시아란 탈모치료제로 이용되게 된 것이다.

또 다른 탈모 치료제인 ‘미녹시딜’이란 연고는, 원래 고혈압 치료제로 사용하던 약물이다. 역시 부작용으로 머리카락 수가 증가하는 것을 보고 연고제로 개발된 사례다.
잘 알려진 것처럼 발기부전 치료제인 ‘비아그라’는 혈관 확장제로서, 원래는 좁아져 있는 관상동맥(협심증)의 치료제로 개발됐던 약물이다. 그런데 협심증에 대한 치료로는 성공을 거두지 못한 반면 발기부전 치료제로 애용되고 있다.

아스피린은 원래 해열·진통·소염제로 너무나 잘 알려져 있는데, 부작용으로 지혈(止血)이 잘 안 되는 문제가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부작용을 이용해 동맥경화나 혈전을 예방·치료하는 데 사용하게 됐다. 심근경색이나 뇌경색이 발생한 경우는 물론이고 당뇨병처럼 심혈관이 막힐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경우에 아스피린을 하루에 100㎎ 정도 복용하면 혈관이 막힐 위험성을 줄여 준다.

전립선 비대증에 많이 사용하는 ‘카두라’ 등의 알파차단제 약물도 원래는 고혈압 치료제로 사용돼 오던 것이다. 그런데 이 약물을 복용하던 전립선 비대증 환자들이 소변 보기가 수월해지는 것이 발견되어 전립선 비대증 치료제로 개발됐다. 그 결과 많은 전립선 비대증 환자가 수술을 받지 않고도 증상이 개선되는 효과를 볼 수 있으니 아이러니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속눈썹 발모제인 라티쎄액은 부작용의 하나로, 영구적으로 홍채 색깔이 갈색으로 변화될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홍채는 일명 눈조리개로서, 눈동자 바깥 부분에 있으며 인종에 따라 색소가 다르다. 수축하고 이완하면서 동공이 축소되거나 확대되게 한다. 혹시 갈색 눈을 좋아하는 여성을 위해 이러한 부작용도 치료 효과로 개발되는 건 아닐까.

원장원 경희대 의대 교수 가정의학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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