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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일 전투 ]"김정운이 속도전 지휘"관측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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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6호 22면

150일 전투의 선전 포스터. [중앙포토]

북한 전역에는 요즘 ‘150일 전투’의 열풍이 거세다. 관영 매체에는 연일 공장·기업소와 협동농장 등 생산 현장의 노력 경쟁 소식이 등장한다. 지난 4월 20일 시작된 150일 전투는 이제 한 달여를 남겨놓고 그 절정을 향해 치닫고 있는 형국이다. 표면적으로 150일 전투는 생산 증대를 통한 내부 결속을 목표로 하고 있다. 특히 2012년 ‘강성대국 진입’을 목표로 제시한 북한 당국이 눈에 보이는 성과를 구체화하려는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북한의 논리대로라면 사상과 군사에서 강국을 이뤘으니 경제 분야 고지를 달성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150일 전투는 경제 문제 자체에만 초점이 맞춰진 게 아니라고 정부 당국자들과 북한 전문가들은 말한다. 북한에서 각종 노력 경쟁 운동이 벌어진 때는 북한 권력 내부에 중대한 국면이 조성되거나 체제 유지를 위한 필요성이 제기된 시점인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1970년대의 70일·100일 전투와 80년대 200일 전투가 대표적인 사례다.

무엇보다 전문가들은 북한 체제의 후계자 등장과 대규모 대중 동원 운동이 맥을 같이하는 측면에 주목한다. 각종 명분이 걸린 ‘전투’가 경제 발전과 후계 체제 구축이란 두 마리 토끼를 쫓기 위한 치밀한 계산에 따른 것이란 점에서다. 여기에는 대규모 대중 동원을 통한 경제 분야의 선택과 집중을 통해 단기간에 경제적 성과를 꾀하고 이를 후계자의 통치기반 확보에 활용한다는 전략이 깔려 있다.

이번의 경우도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후계자로 김정운이 지명됐다고 하는 시점과 맞물려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지난해 8월 건강 이상을 일으킨 김 위원장이 올봄 후계 체제의 구축을 서두르는 과정에서 150일 전투가 탄생하게 됐다는 것이다. 실제 대북 소식통들과 북한 사정에 밝은 비정부기구(NGO)들은 “김정운이 150일 전투를 사실상 지휘하고 있다”는 등의 정황을 전하고 있다. 이런 상황은 70년대 김일성의 후계자로 김정일이 지명되는 과정과 유사한 점이 많다.

김정일은 74년 2월 노동당 중앙위 5기8차 전원회의에서 후계자로 내정된 후 “사회주의 경제건설의 모든 분야에서 속도전을 벌이자”고 제안했다. 당시 그가 주창한 70일 전투의 성과를 바탕으로 김정일은 이듬해 2월 공화국 영웅 칭호를 받는 등 후계자로서의 위상을 갖추기 위한 작업을 착착 진행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따라서 이번에 펼쳐지는 150일 전투도 시간이 지나면서 성과가 나오면 후계자의 몫으로 돌릴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북한의 150일 전투 청사진이 계획대로 이행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74년 10월, 70일 전투 시작 당시 북한 언론들은 “대성공으로 끝나 11월, 12월의 공업 총생산액은 전년 같은 기간에 비해 148%, 152%가 증가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사회주의 국가와의 경제협력과 원조 등으로 상승기에 있던 70년대와 핵·미사일 문제 등으로 제재 국면에 처한 현재는 판이하다.

이런 현실적 한계를 절감한 때문인 듯 북한 당국도 150일 전투에 신중하게 접근하는 분위기가 감지된다는 게 정부 당국자들의 귀띔이다. 북한은 150일 전투를 내부적으로 사전에 치밀하게 준비하면서도 이를 외부에 즉각 공표하지 않았다. 보름이나 지난 5월 4일 노동신문을 통해 150일 전투를 처음 언급함으로써 공식화됐다. 관영 매체를 통한 분위기 띄우기 외에는 그 실체가 외부에 드러나지 않고 있는 점도 주목할 대목이다. 일각에서는 150일 전투의 성과가 미흡할 경우 경제 부문 책임자를 중심으로 대대적 숙청을 단행해 후계 체제 기반을 닦는 쪽으로 방향이 수정될 것이란 관측도 제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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